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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면규

‘범려’를 배우다

살며 생각하며

기사입력 기사번호 21435

▲ 송면규     ©

 ‘범려’는 춘추 전국시대 때 월나라 재상을 지낸 인물로 ‘문종’의 친구이며, 그와 함께 부국강병에 최선을 다해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상장군에 올랐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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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높은 명성을 얻은 뒤에는 월왕인 ‘구천’과 함께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벼슬을 내려놓고 조용히 월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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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월나라를 떠나면서 당시 공신인 ‘문종’에게 함께 떠날 것을 권유하면서 ‘토사구팽’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망설이던 ‘문종’은 결국 “구천이 내린 검으로 자결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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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름을 바꿔 살면서 재물을 모았다가 모두 흩어 백성에 나누어 준 다음 다시 ‘도’ 땅에가서 호를 바꾸고 장사를 해서 대부호가 되었는데 다시 백성들에게 나누에 주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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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는 시기와 시세를 잘 파악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한 인물의 대명사로 꼽힌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모두 변화하는 것처럼 시세의 흥망성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으며, 때를 기다려 행동해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교훈을 안겨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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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는 경제사상 면에서도 자연의 순환에 주목하여 “귀한 것이 극에 이르면 도리어 천한 것으로 바뀐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가진 재물을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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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서 모든 것을 얻은 진정한 자유인”으로 불리는 ‘범려’를 지금의 소위 ‘윤핵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느 국회의원처럼 대통령과 친분과시하다 망신 당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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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을 마치면 주인이 사냥개를 잡아 먹듯이 권력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같이 도모했던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면 조용히 물러나는 게 “최고의 처세”라는 점을 ‘범려’는 후세에 알려주고 있다. 쉽지 않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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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범려’가 아닐까 생각되며, 아직도 대통령 공신이라 생각하고 용산 근처에 서성이면서 완장 기다리는 사람있다면 “범려의 처세”를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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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저장성 주지에 조성되어 있는 범려의 사당인 ‘범려사’가 가장 유명하며, 산둥과 허난 등지에도 있음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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