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면 회사마다 시상식이 열리고, 온 나라가 캐럴과 술잔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2천 년 전 만주 벌판의 한 나라도 똑같이 12월에 모여 먹고 마시고 춤추며 한 해를 결산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는 한국사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축제 기록 중 하나다. ‘북(鼓)을 두드리며 하늘을 맞이한다(迎)’는 이름처럼, 이 행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춤추며 감옥의 죄수까지 풀어주던 대동(大同)의 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같은 시기 고구려의 동맹(東盟)이나 동예의 무천(舞天)은 모두 추수가 끝난 10월에 열렸다. 왜 유독 부여만 한겨울인 12월에 하늘을 향해 북을 울렸을까. 이 사소해 보이는 시차 하나가 부여라는 나라의 기원과 성격을 푸는 열쇠가 된다.
◆ 시대의 풍경
부여는 기원전 2~3세기 무렵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넓은 평야를 근거지로 성장해, 494년 왕족 잔왕(殘王)이 고구려 문자명왕에게 항복할 때까지 700년 가까이 존속한 나라다. 오늘날 우리가 부여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3세기 위(魏)나라 사람 진수(陳壽)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덕분이다. 이 기록은 중국 조정에 파견된 사신과 상인들의 견문을 토대로 부여·고구려·동옥저·동예·삼한 등 한반도와 만주의 여러 나라 풍속을 상세히 남겼다.
동이전은 부여의 영고를 이렇게 전한다. 부여 사람들은 은(殷)나라의 역법으로 정월, 즉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으로는 음력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때가 되면 온 나라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며칠 밤낮을 내리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췄으며, 이 기간에는 형벌과 옥살이를 멈추고 죄수를 풀어주었다. 학계는 이 시점을 두고 부여가 원래 수렵과 목축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고, 사냥감이 가장 풍성하고 한 해 사냥을 결산하는 시점이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그 전통이 제천행사의 시기로 남은 것이라 본다.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데, 나라 사람이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 이때에는 형벌과 옥사를 멈추고 죄수를 풀어준다.”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부여의 풍속을 기록한 《삼국지》가 편찬되던 3세기 중국은 위·촉·오가 대립하던 삼국시대였다. 위나라 사신들이 만주의 부여를 오가며 남긴 기록이 오늘날 우리가 영고를 아는 유일한 통로다.
🗿 유럽/중동
지구 반대편 로마 제국에서는 매년 12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축제가 열렸다. 신분 질서가 잠시 뒤집혀 노예가 주인의 시중을 받는, 부여의 대동 축제와 놀랍도록 닮은 겨울 축제였다.
🌏 기타 지역
같은 시기 열도의 야요이·고훈 시대 일본에서도 마을 단위의 수확 제의가 행해졌고, 224년 건국한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도 조로아스터교 태양신에게 바치는 겨울 축제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지: 영고 축제의 밤 — 모닥불과 북(鼓), 춤추는 사람들 (은력 정월, 음력 12월경)]
⚔️ 그날의 현장
“쑹화강 벌판에 어둠이 내리자 모닥불이 하나둘 피어오른다. 왕성 앞 넓은 마당에는 사출도(四出道)를 다스리는 마가·우가·저가·구가의 무리가 저마다의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들었다. 흰옷을 차려입은 백성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돈다.”
“옥리(獄吏)가 큰 소리로 죄수의 이름을 부르고 쇠사슬을 풀어준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술잔을 나눈다. 북소리가 커질수록 춤은 격렬해지고, 하늘을 향해 올리는 감사의 노래가 밤새 끊이지 않는다. 이날만큼은 노비도, 죄인도, 왕도 같은 불빛 아래 있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영고는 단순한 잔치가 아니었다. 죄수를 풀어주는 대사면(大赦免)을 국가 행사에 못박아 두었다는 사실은, 부여가 이미 형벌 제도와 옥사를 갖춘 체계적인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형벌을 잠시 멈추는 행위를 통해 왕과 가(加)들이 백성에게 관용을 베풀고 공동체의 결속을 재확인하는 정치적 장치이기도 했다.
동이전은 영고 외에도 부여의 독특한 법속을 함께 전한다. 사람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殉葬)의 풍습이 있었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는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가 있어 과부와 그 자녀, 재산이 가문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전쟁을 앞두고는 소를 잡아 그 발굽의 갈라진 모양을 보고 승패를 점치는 우제점법(牛蹄占法)을 행했으며, 평소에는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白衣)를 숭상하는 풍습이 이미 이 시기부터 뚜렷했다.
이 모든 풍습을 하나로 꿰는 열쇠가 영고다. 순장으로 죽음 이후의 질서를 다졌던 부여인들에게, 살아있는 자들이 모여 죽음과 형벌을 잠시 유예하고 하늘 앞에 하나가 되는 의식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안전판이었다. 왕권이 사출도로 분권화된 나라였기에, 오히려 온 나라가 함께 모이는 영고 같은 행사가 국가적 결속을 다지는 데 더욱 중요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힘을 얻는다.
시기
은력 정월(음력 12월경)
핵심 사료
《삼국지》 위서 동이전
주요 절차
국중대회·가무·죄수 사면
함께 전하는 풍습
순장·형사취수제·우제점법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이 모두 추수가 끝난 10월에 열린 것과 달리 부여의 영고만 한겨울에 열린 것은, 부여가 벼농사 중심의 정착 농경 사회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 수렵·목축 전통을 강하게 유지했던 흔적이라고 본다.
대안적 견해
일부 연구자는 은력(殷曆) 정월이라는 표현 자체가 실제 계절이 아니라 중국식 역법 환산의 결과일 뿐이라며, 수렵사회설만으로 단정하기보다 부여의 농경·목축 복합경제 구조 안에서 시기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여전히 한자리에 모인다. 회사는 시상식과 종무식을 열어 한 해의 성과를 나누고, 가족과 친구들은 송년회 자리에서 지난 시간을 결산한다. 국가는 광복절이나 성탄절 즈음 특별사면을 단행해 죄를 지은 이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준다. 2천 년 전 부여인들이 영고에서 하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조직문화 전문가들은 연말 시상식과 회식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구성원 간 결속을 다지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심리적 리셋 장치라고 말한다. 계급과 부서를 넘어 함께 먹고 마시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화의 뿌리가, 어쩌면 사출도로 나뉘어 있던 부여를 매년 겨울 하나로 묶어준 영고의 북소리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모른다.
| 구분 | 부여·삼한 시대 | 현재 |
|---|---|---|
| 국가 행사 | 영고 – 온 나라가 모여 한 해를 결산하는 대동 축제 | 연말 시상식·종무식·송년회 |
| 사법/관용 | 영고 기간 형벌 중단·죄수 석방 | 국경일 특별사면 |
| 공동체 문화 | 계층·지역을 넘어선 대동단결의 밤 | 조직 결속을 위한 회식·워크숍 문화 |
[이미지: 부여의 영고에서 오늘날 연말 결산 문화로 이어지는 상상의 시간선]
📚 더 깊이 알아보기
- 쑹화강 유역의 부여 관련 고대 무덤 유적에서는 다인 매장 흔적이 확인되어 순장 풍습을 뒷받침하는 정황 자료로 다뤄진다.
- 《후한서》 동이열전에도 부여의 풍속이 일부 겹쳐 실려 있어,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교차 검증하는 자료로 함께 읽힌다.
- 우제점법은 이후 삼한과 삼국의 여러 점복 풍습으로도 이어지며, 국가적 결정 이전에 신의(神意)를 묻는 전통의 원형으로 꼽힌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사출도로 나뉘어 있던 부여를, 매년 한겨울 하나로 묶어준 것은 군대도 법령도 아닌 함께 두드린 북소리와 나눠 마신 술잔이었다. 결속은 늘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함께 모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겨울 밤, 북소리는 그쳤지만 하늘을 맞이하던 마음은 오늘의 송년회 건배사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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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부여·삼한 편 (총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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