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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9화: 선덕여왕,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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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편

제9화: 선덕여왕,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

“여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1,400여 년 전, 한 반란군이 내건 구호는 오늘의 ‘유리천장’이라는 말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632년, 신라는 왕위에 오를 성골 남자가 끊기자 진평왕의 맏딸 덕만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제27대 선덕여왕, 신라 최초의 여왕입니다. 당시 당 태종은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공공연히 깔보았고, 백제와 고구려는 틈만 나면 국경을 흔들었습니다. 안팎으로 “여왕이라 약하다”는 낙인이 찍힌 채 시작한 치세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왕의 15년(632~647) 동안 신라에는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이 세워졌고, 훗날 삼국통일을 이끌 김춘추와 김유신이 정치 무대에 올랐습니다. 약점으로 시작한 통치가 어떻게 도약의 발판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 우리 사회에 무엇을 묻고 있을까요?

◆ 시대의 풍경

7세기 전반 동아시아는 격변의 한복판이었습니다. 618년 수나라를 대신해 당나라가 들어섰고, 태종(재위 626~649)은 주변 정복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물고 물리는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신라는 642년 백제에 대야성(지금의 경남 합천)을 빼앗기는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선덕여왕은 두 갈래 길을 택했습니다. 안으로는 불교의 권위와 과학·문화 사업으로 왕실의 정통성을 다지고, 밖으로는 당나라와의 외교를 강화했습니다. 643년에는 당에서 돌아온 승려 자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룡사 9층탑 건립에 착수했고, 탑은 645년 완성되었습니다. 같은 해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신라도 군사를 보내 힘을 보탰습니다. 643년 당 태종은 신라에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이웃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며 왕실 친척을 보내 왕을 삼게 하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합니다.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은 정치를 잘할 수 없다고 하여 군사를 일으켰다(以女主不能善理 擧兵).” (취지 요약)

– 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16년(647)조 (원문 취지를 풀어 옮김)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 태종의 시대. 율령 체제를 정비하고 대외 팽창에 나섰으며, 645년 고구려 원정에 나섰습니다. 여성 황제 측천무후의 즉위(690년)는 선덕여왕보다 반세기 넘게 뒤의 일입니다.

🗿 유럽/중동

비잔틴 제국은 헤라클리우스(재위 610~641) 아래 페르시아와 사투를 벌이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에 패해 시리아를 잃었습니다. 사산 페르시아도 급속히 무너져 갔습니다.

🌏 기타 지역

일본에서는 스이코 여제(592~628)에 이어 고교쿠 여제(642~645)가 즉위했고, 645년 다이카 개신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여성 군주는 신라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덕여왕 15년의 연표 (632~647) 632 첫 여왕 즉위 634경 분황사 창건 642~643 대야성 함락 자장 귀국·탑 건의 645 황룡사 9층탑 완공 647 비담의 난·여왕 승하

첨성대

황룡사 9층탑(추정 복원)

[이미지: 선덕여왕 재위 15년의 주요 사건과 상징 건축물 (632~647년)]

⚔️ 그날의 현장

“647년 정월, 서라벌의 밤하늘에 큰 별 하나가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의 군사들은 환호했다. ‘여왕이 패할 징조’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번졌다.”

“김유신은 허수아비에 불붙인 연을 하늘로 띄워 올리게 했다.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이 돌자 군사들의 사기가 되살아났다. 반란은 열흘 남짓 만에 진압되었다.”

※ 별과 연 일화는 《삼국사기》 김유신전 기록에 바탕한 재구성이며, 장면 묘사는 서술용 연출입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선덕여왕은 어떻게 흔들리는 왕권을 지켰을까요? 첫째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왕은 김유신, 김춘추 같은 신진 세력을 중용했습니다. 둘째는 ‘하늘’이었습니다. 천문 현상을 읽는 일은 곧 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일이었고,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첨성대는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높이 약 9미터, 화강암 27단으로 쌓은 이 건축물은 현존하는 동아시아 고대 천문 관련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흔히 소개됩니다(국보 제31호).

셋째는 ‘신앙’이었습니다. 황룡사 9층탑은 인접한 아홉 나라의 침략을 막으려는 염원을 담았다고 《삼국유사》는 전합니다. 이 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맡아 지었다고 하며, 높이는 70~80미터로 추정됩니다. 1238년 몽골 침입 때 불타 사라졌지만, 1976년부터 진행된 황룡사터 발굴이 그 거대한 규모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또 《삼국유사》는 ‘지기삼사(知幾三事)’라 하여 여왕이 모란 그림에서 향기 없음을 알아챈 일, 한겨울 영묘사 옥문지의 개구리 떼를 보고 백제 복병을 간파한 일,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한 일을 전합니다. 이는 사실이라기보다 여왕의 통찰력을 신성화한 설화로 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성골 남자 왕족이 사라진 것이 즉위의 배경이었습니다. 이는 골품제라는 신분 질서가 만든 예외였지, 오늘날 의미의 성평등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왕은 안팎의 압박 속에서 당나라와는 관계를 유지하고 귀족의 반발은 인재 등용으로 달랬습니다. 이 균형 감각이 다음 진덕여왕 대와 김춘추의 시대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시대

7세기 전반 (632~647년)

핵심 인물

선덕여왕, 김춘추, 김유신, 자장

핵심 사건

첨성대·분황사 건립, 황룡사 9층탑 완공(645), 비담의 난(647)

영향

대당 외교 기반 마련, 삼국통일 주역 부상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천문 관측 시설이라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왕은 위기를 외교·불교·인재 등용으로 돌파한 유능한 군주로 평가됩니다.

대안적 견해

출입이 불편하고 정상부가 좁아 관측대로 부적합하다며, 제단·상징 건축물·신전 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건립 연대 또한 《삼국유사》의 “선덕여왕 때” 기록에 의존하고 있어 정밀한 확정은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비담이 외친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는 단순한 옛 구호가 아닙니다. 능력이 아닌 성별을 이유로 리더의 자격을 의심하는 시선은, 오늘날 여성이 조직의 최고 자리에 오를 때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 같은 구조입니다. 선덕여왕은 그 시선에 말로 맞서기보다 성과로 답했습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투자입니다. 하늘을 읽는 일, 거대한 탑을 짓는 일에 국가의 역량을 모은 것은 오늘의 우주·반도체·R&D 투자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장기 투자의 용기라는 점을 신라의 첫 여왕은 보여줍니다.

구분 신라 시대 현재
정치/리더십 성골 남자 부재로 여왕 즉위, “여주불능선리” 반란 여성 CEO·정치인에 대한 유리천장과 편견 논쟁
외교/안보 당나라와 연합, 백제·고구려의 압박 대응 한미동맹과 다자 외교를 통한 안보 전략
과학/문화 첨성대·황룡사 9층탑, 불교 건축 기술 우주항공·반도체 R&D, K-컬처 투자

선덕여왕의 세 기둥 → 오늘의 세 과제 인재 등용 (김춘추·김유신) 하늘을 읽는 과학 (첨성대) 정신의 구심 (황룡사탑) 능력 중심의 리더십 과학기술 장기 투자 문화로 모으는 공동체

[이미지: 선덕여왕의 통치 방식과 오늘의 과제]

📚 더 깊이 알아보기

  •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분황사 모전석탑, 황룡사터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등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선덕여왕릉은 경주 낭산에 있으며, 여왕이 말한 ‘도리천’은 훗날 문무왕이 이 아래 사천왕사를 세우면서 뜻이 풀렸다고 전합니다.
  • 참고 자료: 《삼국사기》 신라본기, 《삼국유사》 기이편 ‘선덕왕 지기삼사’·탑상편 ‘황룡사 9층탑’.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선덕여왕은 “여왕이라서 안 된다”는 편견 속에서 시작해 “이 사람이라서 해냈다”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자격은 성별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으로 증명된다는 것, 그것이 15년의 치세가 남긴 가장 오래된 교훈입니다.

“첨성대는 지금도 밤마다 별을 올려다본다. 신라 정신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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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화랑도 – 신라의 청년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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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편 (총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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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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