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2] 선평문의 투신
2월 · 주인 없는 칼 | 약 3분 읽기

이각(李傕)의 네 길의 군이 장안의 네 문을 두드리던 새벽, 장안의 선평문(宣平門) 누 위에서 한 그림자가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가후의 한 마디 뒤에 이각과 곽사·장제·번조가 모사의 계책을 더 받아들였다. 이각이 임곡구(任谷口)에 본진을 지키며 매일 여포를 유인하여 싸우게 하였다. 뒤에서는 곽사가 여포의 후미를 끊고 물러나는 수법을 썼다. 옛 팽월(彭越)이 초(楚) 나라의 뒤를 괴롭히던 그 수법이었다. 북을 울리면 진군, 징을 치면 철군. 여포의 화극이 한 자락을 쫓으면 그 자락은 이미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 박자가 며칠을 되풀이되었다. 여포가 싸우고자 하여도 싸우지 못하고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두지 못하였다.
그 사이, 장제와 번조 두 길의 군이 장안의 뒷문 쪽을 곧장 노렸다. 여포에게 “장제·번조의 두 군이 이미 장안으로 돌진 중이다. 경성이 위급하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여포가 급히 군을 거두어 장안 쪽으로 돌아섰다. 다만 그 돌아섬의 뒤에 이각과 곽사의 군이 크게 뒤쫓아 왔다.
장안 성 아래에 이르렀을 때, 적의 병사가 구름처럼 몰리고 비처럼 쌓여 성지(城池)를 둘러싸고 있었다. 군사들 가운데 여포의 폭하고 려한 성정을 두려워하는 자가 많아 적에게 항복하여 넘어가는 자가 늘어났다. 여포의 마음이 오늘 새벽 처음으로 무거워졌다.
며칠이 더 지난 새벽, 장안 성 안에 숨어 있던 동탁의 옛 여당 이몽(李蒙)·왕방(王方) 두 사람이 먼저 적의 내응이 되어 성문 하나를 가만히 열어 주었다. 네 길로 달려 오던 이각·곽사·장제·번조의 군사가 일제히 밀려들어 장안 성 안쪽의 사방 거리에 쏟아져 들어왔다. 성 안의 불길이 동문과 남문과 서문과 북문의 네 방향에서 한꺼번에 하늘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여포가 좌충우돌하였으나 길을 열어 놓지 못하였다. 백여 명의 기병만을 데리고 청쇄문(靑瑣門) 바깥쪽으로 빠져나왔다. 청쇄문 위의 누각에 왕윤이 헌제를 모시고 서 있었다. 여포가 말 위에서 크게 외쳤다. “사세가 급합니다. 사도. 말에 오르시어 저와 함께 관 바깥으로 나가십시다. 계책을 따로 도모해 봅시다.”

왕윤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일찍이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을 평생의 뜻으로 삼았거늘, 오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내 한 몸을 아껴 이 자리를 버리고 도망하겠소. 봉선은 속히 관 바깥으로 나가시오. 천자를 모시고 변방의 제후들과 계책을 다시 세우시오. 이 왕윤은 이 자리에 남겠소. 내가 남음으로써, 천하 대신의 자리가 적의 칼 아래에서 꺾이지 아니함을 보이고자 하오.”
여포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만 시간이 없었다. 말 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달렸다. 그의 뒤쪽에서 장안의 네 불길이 하늘을 더 크게 태우고 있었다.
청쇄문의 누각에서 왕윤이 헌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신(臣)이 불충하여 사직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사옵니다. 폐하의 용체(龍體)만은 이각에게 청하여 지켜 주시옵소서. 이 신의 한 몸은 이 자리에서 사직의 끝에 먼저 놓겠사옵니다.” 헌제가 크게 울었다.
왕윤이 선평문의 누각 위로 걸어 올라갔다. 누각의 난간 위에서 서쪽을 향해 깊게 절하였다. “황제 폐하. 신(臣)이 먼저 가옵니다.” 그의 한 몸이 난간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누각 아래의 돌길 위에 먼지가 가볍게 일었다.
오늘 새벽 장안의 선평문 난간 위에서 한 사도의 투신이 큰 사직의 끝을 먼저 받치고 있었다. 이각·곽사의 군이 장안의 가운데로 쏟아져 들어왔으되, 선평문의 돌길 위에 놓인 한 몸의 무게가 그 쏟아짐의 앞쪽에 한 결로 조용히 놓여 있었다.
Book 2의 열두 번째 새벽이 장안의 선평문 돌길 위에서 조용히 열렸다. 宣平投(선평투, 선평문의 투신)의 세 글자가, 사직의 끝을 먼저 한 몸으로 받친 자세의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Day 41의 賈詡言의 한 마디가 오늘 새벽 장안의 네 불길과 한 사도의 투신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

“✒️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사직의 끝을 먼저 한 몸으로 받치는 새벽이 있지요. 살 길을 열어 주는 친구의 한 마디 앞에서, 한 몸의 무게를 누각의 난간 위로 먼저 옮기는 자리이옵니다. 오늘 새벽 당신의 자리에도, 살 길을 열어 주는 한 마디 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자세가 혹시 있으신지요. 그 한 걸음의 한 결을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34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