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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A 삼국지 365

[Day 5] 이름 없는 공적

1월 · 별이 모이다 | 약 3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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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이름 없는 공적

1월 · 별이 모이다 | 약 3분 읽기

삼국지 365 · Day 5 · Book 1 「별이 모이다」

삼국지 365 Day 5 헤더 일러스트

복숭아밭 세 잔의 결의 뒤, 스무 날이 지나 있었다. 그 사이에 세 사람의 손에 세 자루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유비의 손에 쌍고검(雙股劍). 양쪽으로 대칭을 이룬 가느다란 두 자루의 칼로, 한쪽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한쪽이 먼저 일어서도록 만들어진, 둘이면서 하나인 검이었다.

관우의 손에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무게 팔십이 근. 또 하나의 이름은 냉염거(冷艷鋸), 차갑고 고운 톱이라 하였다. 한 번 휘두르면 휘둘린 자리에 흰 빛 한 줄만 남는 종류의 칼이었다. 관우가 받아 들고 한 마디도 꺼내지 아니한 채, 자기 수염의 끝을 칼등에 살짝 스쳤다. 칼이 먼저 인사를 받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장비의 손에 장팔사모(丈八蛇矛). 자루 한 장 여덟 자. 끝이 뱀의 혀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휘두를 때 바람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지나가는 소리가, 이상하게 장비의 목소리의 결과 닮아 있었다.

오백의 병력이 모였다. 마을 장정 삼백에, 다른 고을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백이 더해진 수였다. 이들을 이끌고 세 사람이 유주(幽州)의 교위(校尉) 추정(鄒靖)을 찾아갔고, 추정이 세 사람을 탁군(涿郡) 태수 유언(劉焉)에게 인도하였다. 유언이 유비의 먼 황실 계보를 듣고 기쁘게 그를 조카로 거두었다. 다만 공식 관직은 아직 내리지 아니하였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황건의 무리를 이끄는 한 장수가 오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탁군으로 쳐들어왔다. 이름은 정원지(程遠志). 유언이 추정과 더불어 세 사람을 내보냈다. 오만 대 오백. 그러나 세 사람의 걸음은 한 번도 느려지지 아니하였다.

대흥산(大興山) 아래에서 두 진영이 마주 섰다. 유비가 말을 가장 앞으로 몰아 나아갔고, 왼쪽에 관우, 오른쪽에 장비가 따랐다. 유비의 채찍이 올라갔다. “나라를 등진 역적들아. 어찌 일찍 항복하지 아니하느냐.”

정원지의 낯이 붉어졌고, 옆의 부장 등무(鄧茂)를 앞으로 내보냈다. 장비의 장팔사모가 바로 앞으로 나갔다. 한 번의 찌름이었다. 등무의 가슴 한가운데에 창끝이 닿는 소리가 오만의 병사 앞에서 단 한 번 짧고 단단하게 울렸다. 등무가 말 아래로 떨어졌다.

정원지가 칼을 들고 말을 달려 장비 쪽으로 왔다. 바로 그 순간,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달이 천천히 기울 듯 한 번만 휘둘렸다. 흰 빛 한 줄이 공기를 가로로 베었다. 정원지의 몸이 두 조각이 되어 말 아래로 떨어졌다. 단 두 번의 무기 소리였다. 장비의 창이 한 번, 관우의 칼이 한 번.

삼국지 365 Day 5 중간 일러스트

황건의 무리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유비가 추격하였으나, 적의 두건을 벗기라는 지시만 두 번 되풀이하였다. 살해하지 아니하고 두건만 벗기라고. 두건을 벗고 이마가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적이 아니라 농부의 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이 지시의 결이, 자비의 이름이 아니라 평생 이 세 사람이 품어 갈 백성의 결의 씨앗이었다.

저녁이 왔다. 관아 앞에 횃불이 밝게 걸렸고, 태수 유언이 친히 유비의 손을 잡고 크게 기뻐하며 병사들에게 상을 내렸다. 다만 그 자축의 한가운데 공기 안쪽에서, 세 사람은 자리 한쪽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유비의 손에 술잔이 들려 있었으되, 아직 절반이 남아 있었다. 관우는 수염의 끝을 쓸어내리기만 하였고, 장비는 이상하게 오늘 저녁 내내 조용하였다.

그날 저녁이 끝날 때까지, 세 사람의 이름은 관아의 서류에 한 번도 오르지 아니하였다. 다만 한 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탁군 태수 유언(劉焉), 황건의 무리를 크게 꺾다.” 서류의 아래쪽 서명 자리에도 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밤이 깊어, 장비가 잔을 아래로 내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꺼냈다.

“형님. 우리 이름이 오늘 저 종이 위에 한 번도 쓰이지 못하였소.”

유비가 한참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그 긴 침묵의 안쪽에서, 그는 자기 소매 끝에 묻어 있던 붉은 실밥 하나를 천천히 떼어 가슴 쪽 옷주머니 안에 조용히 넣었다. 오늘 하루의 한 장을 안쪽에 접어 두는 자세였다.

“…이름이 한 번도 오르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우야 — 한 번 더 싸워야 한다는 뜻일 것이네.”

관우가 처음으로 한 마디를 보탰다.

“형님. 우리의 이름은, 어쩌면 —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쪽에서 먼저 읽히는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의 오백은, 오늘 하루의 오만보다 먼저 — 서로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오. 오늘의 서류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오늘 오백의 기억은 — 쉽게 사라지지 아니하지요.”

Book 1의 다섯 번째 저녁이 탁군 관아의 마당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無名功(무명공, 이름이 오르지 아니한 공) 세 글자가, 관아 서류 바깥쪽 자리에 조용히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복숭아밭 맹세(Day 4)의 뒤쪽에, 이름이 오르지 아니한 공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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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65 Day 5 마무리 일러스트

📌 알아두기 — 정사(正史) vs 연의(演義)

🟢 정사 『삼국지』 촉서 선주전(先主傳)은 황건(黃巾)의 난이 일어나자 유비(劉備)가 무리를 이끌고 유주(幽州) 교위 추정(鄒靖)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고, 탁군(涿郡) 태수 유언(劉焉)이 그를 받아들였음을 간결히 기록한다. 🟢 세 사람의 무기 — 쌍고검·청룡언월도·장팔사모의 이름은 연의에서 극화되었고, 정사 『삼국지』 관우전은 관우가 긴 도(刀)를 잘 썼음을 간결히 기록한다. 🟡 배송지(裴松之) 주의 파편에도 대흥산 전투의 구체나 정원지·등무의 이름은 전하지 아니한다. 🟠 대흥산 아래 오만 대 오백의 전투, 정원지(程遠志)와 등무(鄧茂)의 구체 이름과 처단 장면은 전부 『삼국지연의』 1회의 각색이다. 🟠 관아 서류에 세 사람의 이름이 한 번도 오르지 아니한 구도 또한 연의의 각색에 가까우며, 본편은 이 각색을 「이름 없는 공」의 자세로 다시 배치하였다. 🔴 본편의 “無名功(무명공)” 3자 창작과, 붉은 실밥을 가슴 쪽 옷주머니 안에 조용히 넣는 자세의 거울 해석은 본편의 재구성이다. 한자 창작의 계보가 오늘 다섯 번째 자리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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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큰 공이 이루어진 저녁에도, 관아의 서류 위에는 한 번도 그 사람의 이름이 오르지 아니하는 자리가 있지요. 이름이 종이 위에서 먼저 읽히지 아니하는 공은, 사람의 마음 쪽에서 더 오래 읽히는 종류의 공이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하루 끝에도, 관아의 서류에 오르지 아니한 공의 자리가 혹시 있으신지요. 그 오르지 아니함의 결을 한 번 더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그 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서기 169년 여름,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도나우 강변 전투의 저녁, 한 군단의 병사들이 게르만(Germani)의 무리를 꺾은 뒤, 공의 기록이 황제의 이름으로만 남았다고 전해집니다. 병사들의 이름은 공식 문서에 한 번도 오르지 아니하였다지요. 라틴어 구절 “sine nomine virtus(이름 없는 공)”이 그 여름 기록의 모서리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동쪽 끝의 탁군 관아 앞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한 번도 서류 위에 오르지 아니하던 그 저녁, 서쪽 끝의 한 군단 병사들의 이름도 같은 방식의 자리에서 오르지 아니하고 있었지요.

📅 내일 Day 6: 작은 고을의 작은 관직

“이름이 관아의 서류에 오르지 아니한 저녁의 뒤, 유언이 유비에게 작은 고을의 작은 관직을 내렸다. 안희현(安喜縣) 위(尉)의 자리였다.” — 연삼흠 박사

평역 — 연삼흠 평역가 · Sam H. Yeon, Ph.D. · 延三欽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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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삼흠 평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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