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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살아있다 – 백제 편] 제14화: 바다를 건넌 못과 기와 – 아스카를 세운 백제 장인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682
百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14화: 바다를 건넌 못과 기와 – 아스카를 세운 백제 장인들

지금 일본 나라(奈良)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호류지(法隆寺)의 배흘림기둥 앞에서 카메라를 든다. 그런데 그 기둥을 처음 깎은 손이 백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588년, 백제는 사신과 승려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절을 지을 목수, 기와를 굽는 장인, 탑 꼭대기 상륜부를 만드는 기술자까지 한 팀을 통째로 바다 건너로 보냈다. 오늘날로 치면 건설사와 설계사무소를 통째로 수출한 셈이다.

“K-건설”이 해외 플랜트를 수주하고 “K-컬처”가 세계를 돌기 1,400여 년 전, 백제는 이미 기술로 국경을 넘고 있었다. 그 기술은 지금도 일본 나라의 땅 위에 서 있다.

◆ 시대의 풍경

6세기 말, 일본 열도는 불교 수용을 둘러싸고 소가씨(蘇我氏)와 모노노베씨(物部氏)가 격돌하던 격변기였다. 소가씨가 승리한 뒤, 실권자 소가노 우마코는 일본 최초의 본격 불교 사찰을 짓기로 하고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에게 도움을 청했다.

588년, 위덕왕은 승려와 함께 사찰 건축에 필요한 전문 기술자 집단을 통째로 파견했다. 절을 짓는 목수(사공), 탑 꼭대기 장식을 만드는 노반박사, 기와를 굽는 와박사, 벽화를 그리는 화공까지 – 오늘날로 치면 설계·시공·마감의 전 공정 전문가가 한 팀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 절이 훗날 아스카데라(飛鳥寺, 당시 이름 호코지·법흥사)다.

“백제국이 은솔(恩率)을 보내어 불사리를 바치고, 아울러 승 혜총·영근 등과 노반박사 장덕 백매순, 와박사 마나문노·양귀문·능귀문·석마제미, 화공 백가를 보내왔다.”

– 출처: 《일본서기(日本書紀)》 스이코기, 588년(위덕왕 35년) 기사

※ 백제 자체 사서인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이 파견 사실이 상세히 남아있지 않다. 일본 측 정사인 《일본서기》가 이 사건의 1차 기록이며, 국내 학계도 이를 근거 사료로 인용한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남북조 시대가 끝나고 589년 수(隋)나라가 중국을 재통일. 대운하 건설과 함께 동아시아 전역에 건축·기술 표준이 빠르게 퍼지던 시기.

🗿 유럽/중동

비잔틴 제국은 537년 완공된 콘스탄티노플 하기아 소피아의 거대한 돔 기술을 자랑하던 시절. 서로마는 이미 사라졌고,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가 서유럽 교회를 정비하고 있었다.

🌏 일본

쇼토쿠 태자(574~622)가 정치를 이끌며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던 아스카 시대 초입. 자체 사찰 건축 경험이 전무해 전적으로 백제 기술에 의존했다.

588년, 기술이 건넌 바닷길 백제 사비성 아스카 아스카데라 · 호류지 ▪ 노반박사 장덕 백매순 (탑 상륜부) ▪ 와박사 마나문노 외 3인 (기와) ▪ 화공 백가 (벽화) · 사공 2인 (목조)

[이미지: 588년 백제 사비성에서 아스카로 파견된 사찰 건축 기술자단]

⚔️ 그날의 현장

“아스카 벌판에 세워진 나무 비계 위로, 백제 장인 백매순이 아직 온기가 남은 청동 상륜을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밑에서는 와박사들이 흙가마에서 막 구워낸 연화문 수막새를 하나씩 나르고, 일본인 인부들은 그 문양을 처음 보는 눈으로 흘끔거린다.”

“‘이 못은 백제식이라 흔들려도 빠지지 않는다.’ 사공이 자신 있게 말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소가노 우마코의 눈빛이 깊어진다. 나라의 운명을 건 절이, 바다 건너온 손끝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아스카데라는 588년 착공해 약 8년 만인 596년 무렵 큰 골격을 마쳤고, 609년경 최종 완성됐다. 탑 하나를 세 개의 금당이 둘러싼 ‘1탑3금당식’ 배치는 이후 일본 사찰 건축의 원형이 됐다. 5년 뒤인 593년에는 쇼토쿠 태자의 발원으로 오사카에 시텐노지(四天王寺)가 세워지는데, 이 절 역시 백제 장인 유중광(柳重光)의 손으로 완성됐다. 시텐노지의 중문-오층탑-금당이 남북 일직선으로 늘어선 가람 배치는 백제 사비 시대 도읍(부여) 군수리 절터와 거의 동일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술이 한 번의 파견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중광의 후손들은 대대로 사찰 건축을 가업으로 이어 ‘곤고구미(金剛組)’라는 회사를 세웠고, 578년(혹은 시텐노지 착공 시점) 창업을 표방한 이 회사는 2006년 경영난으로 다른 건설사에 흡수될 때까지 무려 1,400여 년간 존속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남았다. 백제 장인의 손끝이 만든 회사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버틴 기업이라는 사실은, 기술 이전이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호류지(法隆寺)는 조금 뒤인 607년,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가 요메이 천황의 유언을 받들어 세운 절이다. 이 건물은 670년 벼락으로 전소됐다가 8세기 초 다시 지어졌는데, 재건 시점은 공교롭게도 660년 백제 멸망 이후 대거 도래한 백제 유민 기술자들이 일본 각지에 정착해 활동하던 때와 겹친다. 호류지 특유의 배흘림기둥(엔타시스)과 정교한 공포(첨차) 구조가 백제·고구려 계통 목조 기법과 맥을 같이한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온다.

시대

6세기 말~7세기 초

핵심 인물

위덕왕, 노반박사 백매순, 시텐노지 장인 유중광

핵심 사건

아스카데라·시텐노지 건립, 호류지 재건

영향

아스카 문화 형성, 일본 사찰 건축의 원형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일본서기》 기록대로 백제 기술자들이 설계·시공·기와·상륜 제작까지 사찰 조영의 전 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했으며, 아스카 문화의 물리적 토대 자체가 백제 이전 기술이라는 데 한일 학계 모두 대체로 동의한다.

대안적 견해

일부 일본 학자는 기술 이전 이후 곧 도래계 2·3세 및 일본인 장인 집단이 기술을 체화해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보며, 시텐노지 유중광의 구체적 행적은 후대 곤고구미 창업설화 과정에서 다소 윤색됐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1,400여 년 전 백제가 수출한 것은 완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노하우’였다. 노반박사, 와박사라는 이름 자체가 국가가 기술을 표준화하고 공인해 파견하는 시스템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건설사가 해외 플랜트를 짓고, 방산 기업이 기술 이전 조건으로 수출 계약을 맺고, K-콘텐츠가 포맷 자체를 수출하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곤고구미가 1,400년을 버틴 비결은 화려한 기술 자체가 아니라 ‘가업으로 전승된 기본기’였다. 오늘날 한국의 반도체·조선·K-팝 산업이 세대를 넘어 경쟁력을 지키려면 무엇을 대물림해야 하는가 – 백제 장인들의 이야기는 그 질문을 1,400년 앞서 던지고 있다.

구분 백제 시대 현재
기술 수출 국가가 공인한 박사(전문가) 제도로 장인단 파견 건설·플랜트·방산 기술이전 수출 계약
문화 확산 불교 건축양식이 아스카 문화의 표준이 됨 K-팝·K-드라마가 세계 대중문화 표준에 영향
계승의 힘 가업 전승으로 1,400년 존속한 곤고구미 세대를 넘는 기술 경쟁력 유지의 과제

588년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기술 수출 588년 노반·와박사 파견 607~670년 호류지 건립·재건 2006년 곤고구미, 1,400년 만에 흡수합병 2026년 K-건설·K-컬처 기술 수출

[이미지: 백제의 기술 수출에서 오늘날 한국의 기술·문화 수출로 이어지는 흐름]

📚 더 깊이 알아보기

  • 아스카데라 발굴 조사에서 나온 연화문 수막새는 부여 지역 백제 기와와 문양이 거의 일치해, 와박사 파견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한다.
  • 곤고구미는 2006년 경영난으로 다카마쓰 건설의 자회사가 됐지만, 사명과 사찰·문화재 복원 전문성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 호류지는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으며, 목조건축 연구자들은 이곳의 공포 구조를 백제·고구려계 기법의 살아있는 표본으로 본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나라를 넘는 것은 군대만이 아니다. 사람의 손끝에 밴 기술은 국경도, 1,400년의 시간도 넘어선다. 백제의 노반박사와 와박사가 남긴 것은 무너지지 않는 절 하나가 아니라, 기술로 세계와 연결되는 법 그 자체였다.

“지금 나라(奈良)의 흙 속에는, 여전히 백제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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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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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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