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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버 브릿지] 제3권 · 제1장 · 연금 통장을 펼쳐 보이던 손, 한중 노인의 가계부를 읽다

기사입력 수정 기사번호 90201

저는 지난겨울, 서울 종로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칠순의 할머니를 오래 잊지 못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할머니는 낡은 통장을 꺼내 제 앞에 펼쳐 보이셨습니다. “이걸로 한 달을 살아. 병원 한 번 가면 반은 날아가”라는 말씀이 그날 취재 수첩의 첫 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통장 한 장에서 시작해, 한국과 중국 노인들의 가계부를 나란히 펼쳐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난 할머니의 수령액은 월 60만 원대 초반이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2025년 7월 기준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수령액은 약 67만 9,924원이었습니다. 가입 기간 20년 이상을 채운 ‘완전노령연금’ 수급자는 평균 112만 원을 받지만, 가입 기간 10~19년인 경우는 44만 2천 원에 그친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습니다. 같은 제도 안에서도 이렇게 편차가 크다는 걸, 저는 통장을 마주하고서야 실감했습니다.

문제는 이 돈으로 감당해야 할 실제 생활비입니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62만 3천 원이었고, 그중 식비가 전체의 약 52%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65세 이상 노인의 월평균 의료비 42만 9천 원이 더해집니다. 전체 국민 평균 의료비의 2.6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식비와 의료비만 합쳐도 월 120만 원을 훌쩍 넘는데, 연금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었습니다. 할머니가 통장을 보여주며 지으셨던 표정의 의미를, 저는 이 숫자들을 짚어가며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같은 취재로 찾아간 중국 산둥성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전혀 다른 통장을 마주했습니다. 여든을 앞둔 노인은 월 240위안, 우리 돈으로 4만 6천 원 남짓한 양로금 명세를 보여주며 “쌀 한 포대 값도 안 된다”고 웃으셨습니다. 같은 중국이라도 도시 기업 퇴직자는 월 3,250위안을, 공무원·사업단위 퇴직자는 6,000위안 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웃음이 체념에 가까웠다는 걸 짐작하게 됩니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 14배의 격차가 존재하는데, 그 마을 노인은 자신이 그 격차의 어느 쪽에 서 있는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 두 통장을 나란히 놓고서야, 숫자만으로는 노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39.7%)를 기록하면서도 노인 고용률 역시 OECD 최고 수준입니다. 일하는 노인 비율도, 가난한 노인 비율도 나란히 1위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 읽혔습니다. 반면 중국 농촌 노인은 70대, 80대에도 밭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양아방로(养儿防老)’라는 오래된 관념에 기대어 도시로 떠난 자녀의 송금을 기다립니다. 두 나라 모두 연금이라는 제도는 있지만, 그 제도가 실제 삶을 온전히 떠받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격차는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세대와 인구 구조가 만든 흐름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중국의 양로보험 기금은 2035년 고갈이 거론됩니다. 중국의 기본 양로금 인상률은 2016년 6.5%에서 2025년 2%까지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년 연장과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선택지가 양국 모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적했듯, 노인 빈곤을 소득만으로 판단하면 본질을 놓칩니다. 자산과 의료 접근성, 가족 부양 구조까지 함께 살펴야 비로소 실제 삶의 질이 보입니다.

저는 이 마을과 저 경로당을 오가며 한 가지 질문을 계속 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노후를 ‘연금 액수’로만 가늠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없던 것—오래된 아파트 한 채, 곁에 남은 이웃, 몸이 아플 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실제로는 더 큰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여러분 자신의 노후 가계부에는 지금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한 번쯤 펼쳐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 노인들의 가계부와 그 사이에 놓인 통계, 그리고 제가 직접 만난 이들의 목소리를 더 깊이 나누고 싶은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정보: 실버 브릿지 시리즈(전 5권) 제3권 「돈과 관계」 —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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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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