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취재차 들른 한 요양병원 병실에서 저는 한 어르신의 손을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시던 그분은 결국 그 병실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자녀들은 죄스러운 얼굴로 제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모시고 싶었는데, 막상 닥치니 겁이 났어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는 오늘 그 겁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한국과 중국이 그 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 챕터를 쓰며 가장 먼저 붙든 숫자는 이것이었습니다. 한국 노인의 80.3%가 “마지막은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자택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14.7%에 불과하다는 것. 건강보험연구원의 장기요양 노인 코호트 추적조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더 선명해집니다.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자택 선호율은 67.3%에서 59.0%로 떨어지고, 병원 선호율은 44.3%에서 52.7%로 역전됩니다. 통증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사망 후 행정 절차의 복잡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택에서 숨을 거두면 변사 처리로 경찰 신고를 거쳐야 한다는 현실적인 벽. 제가 만난 그 자녀들이 느꼈던 겁은, 결국 이 촘촘한 현실의 이름이었습니다.

취재를 이어가며 저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현장으로도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낙엽귀근(落叶归根,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이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고향에서,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겨온 문화입니다. 그러나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그 이상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자녀가 먼 도시로 떠나고 노부모만 남는 ‘공소노인(空巢老人)’이 급증하면서, 낙엽은 돌아갈 뿌리를 자주 잃습니다. 상하이에서 재택 안녕요호(安宁疗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251곳까지 늘어난 것은, 그 잃어버린 뿌리를 어떻게든 다시 이어보려는 안간힘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숫자로 다시 두 나라를 나란히 놓아보면, 격차는 더 뚜렷해집니다. 한국은 호스피스 전문기관 188개소를 운영하며 이용률 33%를 기록하고 있고, 정부는 2024~2028년 종합계획으로 이를 360개소, 이용률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인구 100만 명당 완화의료 병상은 약 30병상으로, 아시아에서는 앞선 축에 속합니다. 반면 14억 인구의 중국은 2017년 5개 도시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을 7년 만에 185개 시·구, 기관 4,000곳 이상으로 확대했지만, 인구 100만 명당 병상은 5병상에 못 미치고 실제 서비스를 받는 말기 환자는 전체의 7%도 되지 않습니다. 속도는 중국이 빠르고, 촘촘함은 한국이 앞서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이 챕터에서 정말로 붙잡고 싶었던 것은 병상 수나 이용률 같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 뒤에 있는 효(孝)라는 단어였습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하라(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는 공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두 나라의 임종돌봄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전통이 현대에 와서는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을 ‘불효’로 여기는 시선 때문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나서야 본인이 직접 의사를 밝힌 자기결정 비율이 50.8%를 겨우 넘겼습니다. 중국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병명조차 알리지 않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고, 환자 대신 가족이 치료 방침을 정하는 일이 당연시됩니다. 효도가 때로는 본인의 뜻을 가리는 그림자가 되는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의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동양의 효 문화는 좋은 죽음을 위한 깊은 자산이지만, 현대 의료 시스템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시 2024년 보고서에서 “안녕요호의 중국 본토화를 위해서는 효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필수적”이라고 썼습니다. 끝까지 치료받게 하는 것만이 효도가 아니라,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효도라는 인식이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병실에서 만난 그 자녀들에게도 필요했던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이런 인식의 여지였는지도 모릅니다.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두 나라가 마주한 것은 결국 같은 질문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300만 건이 쌓이고, 안녕요호 시범 도시가 185곳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금기로 묻어두던 사회가 조금씩 그 문을 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도가 자라는 속도와 마음이 자라는 속도는 다릅니다. 인구 2억 9천만 명이 넘는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들도, 인구 100만 명당 30병상을 가진 한국의 노인들도, 여전히 ‘어떻게 잘 떠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나란히 서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어떤 이별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저는 취재를 마치며 제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모님께, 혹은 스스로에게 마지막을 어떻게 맞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어쩌면 잘 떠나는 법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임종돌봄의 현주소와 통계,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위아북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