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더 이상 단순한 의견 차이로 나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딱딱하게 굳어진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
각 진영은 스스로가 옳을 뿐 아니라, 상대는 위험하고, 비도덕적이며, 대화조차 불가능한 존재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더 이상 정치적 이견이 아니다.
극단적 진영 논리, 그리고 그것은 이제 민주적 공존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위험 요소가 되었다.
![]() [코리안투데이] 의견의 차이를 넘어 ‘적’이 되어버린 사회 © 김현수 기자 |
문제의 핵심은 왜 갈등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갈등은 건강한 민주주의에서도 항상 존재한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토록 적대적인 극단 분열은,
신뢰와 대화, 국정 운영까지 파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멈추지 않는가.
증오는 생각보다 쉽다
![]() [코리안투데이] 증오는 생각보다 쉽고, 사고는 생각보다 어렵다 © 김현수 기자 |
극단적 진영 논리가 번성하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너무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깊은 분석도, 경청도, 의심도 필요 없다.
대신 훨씬 간단한 것이 주어진다.
바로 ‘악당’ 하나다.
정치가 절대적 선과 절대적 악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
사고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미묘한 차이는 사라지고,
사실조차 입장에 따라 바뀐다.
모든 사건은 자동으로
“우리 편” 대 “저쪽 편”
이 구도로 해석된다.
![]() [코리안투데이] 정치는 선악 대결이 되는 순간 망가진다 © 김현수 기자 |
이 구조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배신처럼 느껴지고,
타협은 항복으로 간주된다.
이때 증오는 이성의 실패가 아니라,
이성을 대신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
알고리즘은 진실이 아니라 분노를 보상한다
디지털 시대의 극단화는 감정의 문제를 넘어
수익의 문제가 되었다.
소셜미디어는 균형 잡힌 사고나 깊은 이해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오직 하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참여율, 체류 시간, 분노 반응.
차분한 설명은 천천히 퍼지고,
분노는 즉시 퍼진다.
극단적인 콘텐츠는
더 많은 댓글, 공유, 싸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동으로 상위에 노출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극단적 콘텐츠에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
그에 맞도록 ‘훈련당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묻지 않는다.
![]() [코리안투데이] 알고리즘은 진실이 아니라 분노를 선택한다 © 김현수 기자 |
이것이 사실인가?
이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오직 하나만 묻는다.
“사람을 자극하는가?”
그 결과 사회는 단순히 양극화된 것이 아니라,
설계된 시스템에 의해 끊임없이 급진화되고 있다.
극단 진영은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듣기 불편한 진실이다.
많은 극단 진영은 더 이상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승리, 상대 진영의 굴욕, 그리고 감정적 보상이다.
진짜 해결에는
타협이 필요하고,
부분적인 책임 인정이 필요하며,
불편한 대화와 공동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극단 논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극단 논리는 끝없는 갈등을 먹고 산다.
만약 문제가 실제로 해결된다면,
영구적인 분노가 유지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은 계속
재포장되고,
재활용되고,
증폭된다.
그렇게 극단 진영은
자신들이 반대한다고 말하던 ‘위기 그 자체에 중독’ 된다.
공포가 연료다
![]() [코리안투데이] 우리는 분노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당하고 있다 © 김현수 기자 |
극단적 진영 논리의 가장 깊은 동력은
결국 공포다.
경제적 몰락에 대한 두려움
문화적 소멸에 대한 불안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
의미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이 공포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대신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적 적에게 투사한다.
상대는 어느새
모든 불안의 상징이 된다.
공포가 정체성과 결합되는 순간,
타협은 더 이상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위험한 행위’가 된다.
정치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침묵하는 다수가 대가를 치른다
![]() [코리안투데이] 침묵하는 다수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 김현수 기자 |
극단의 목소리가 공론장을 장악하는 동안,
수많은 시민들은 조용히 침묵 속으로 후퇴한다.
그들은 지쳤다.
소리치는 것에 지쳤고
오해받는 것에 지쳤고
질문했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것에 지쳤다
그러나 이 침묵은
극단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든다.
중도적 목소리가 사라질수록
공론장은 점점 더 시끄럽고, 거칠고, 왜곡된다.
정치의 중심은 무너지고,
사회는 심판 없는 줄다리기처럼
양쪽이 끝없이 끌어당기다
결국 줄이 끊어질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 편이 이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환상
![]() [코리안투데이] ‘우리 편이 이기면 끝’이라는 가장 위험한 환상 © 김현수 기자 |
극단 진영 논리가 살아남는 이유는
그것이 달콤한 환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 쪽이 완전히 이기기만 하면
이 사회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를 보여왔다.
절대적 승리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지 않는다.
분노, 보복, 적대, 악순환만을 낳는다.
![]() ▲ [코리안투데이] ‘우리 편이 이기면 끝’이라는 가장 위험한 환상 © 김현수 기자 |
민주주의는 독재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서로를 정치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민주주의는 의식만 남은 껍데기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흐름을 멈출 수 있는가
극단은 극단으로 멈출 수 없다.
조롱과 탄압만으로도 멈추지 않는다.
이 흐름이 느려지는 순간은
오직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때뿐이다.
시민들이
편한 정보가 아니라 불편한 정보까지 선택할 때
정치 지도자들이
분노를 동원할 때보다
사회를 진정시킬 때 더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을 때
사람들이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국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할 때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다.
마지막 질문
극단 진영 논리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감정적으로 달콤하고
디지털 시스템에 의해 증폭되며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고
사회적으로 중독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은
두 진영이 서로를 미워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미워해야만 유지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
바로 그것이 가장 큰 위험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가장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 [코리안투데이] 극단을 멈추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민의 선택이다 © 김현수 기자 |
우리는 정말
통합과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 진영이 폐허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는가.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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