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임 옻칠 작가가 한국의 오랜 옻칠 전통을 현대 회화의 언어로 풀어 파리 관객과 만난다. 최 작가는 2026년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파리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리는 ART SHOPPING PARIS에 참여한다. 이번 파리행에는 K-Art에 대한 애정과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꾸준히 지원해 온 갤러리미쉘 권보경 관장과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ART SHOPPING 공식 홈페이지는 2026년 가을 행사가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린다고 안내하고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300여 출품자가 참여하며 50개 국적의 작가와 갤러리가 회화, 조각, 사진, 스트리트 아트,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현대미술을 소개한다.
![]() [코리안투데이]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 최여임 작가가 말하는 옻칠의 현재 © 김현수 기자 |
최 작가는 이번 전시 참여의 출발점으로 갤러리미쉘 권보경 관장과의 인연을 꼽았다. 권 관장은 갤러리미쉘 대표이자 관장으로 활동하며 파리 ART SHOPPING을 비롯한 국제 전시를 통해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 왔다. 2025년에도 ART SHOPPING PARIS 현장에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한 활동이 보도된 바 있다.
최 작가는 “K-Art에 큰 자부심을 가진 권보경 관장님과의 만남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과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이 만나는 아트시장이 주는 매력, 새로운 무대에 대한 도전이 컸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옻칠화를 선보인다는 점도 특별하다. 최 작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과 문화의 상징적 공간과 맞닿은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한국의 옻칠을 현대 회화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옻칠은 긴 시간을 품은 전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옻칠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천연도료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옻칠 문화가 이어져 왔음을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최여임 옻칠 작가에게 옻은 단순히 오래된 전통 재료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아성찰의 매체이며 작업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수행의 과정이다.
그가 옻칠을 설명하며 꺼낸 말은 “덕분에”다.
자연 덕분에, 재료 덕분에, 시간 덕분에 작품이 완성된다는 감사의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옻은 작가가 의도한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그대로 진행되는 재료가 아니다. 온도와 습도가 발색에 영향을 미치고 작업 이후에도 후발색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 [코리안투데이] 미셸 권보경 관장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파리 도전, K-Art의 가능성을 넓히다 ©김현수 기자 |
최 작가는 작품의 의도와 진행에는 사람이 관여하지만 마지막 완성의 영역에서는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그때 작품을 자신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대상으로 보는 대신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게 된다.
“시간은 정직하게 적용됩니다. 작업의 시간을 견디는 과정은 결국 나라는 주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는 최 작가가 전통을 해석하는 방식과도 이어진다. 그는 재료와 작업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도 함께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단지 과거의 기법을 그대로 반복한다고 해서 전통을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충분히 사유할 때 변화가 가능하며,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이번 파리 전시에서 선보이는 주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출발했다. 110×40cm 목판 위에 옻칠, 토분, 삼베, 한지, 자개를 사용한 작품이다. 작가노트에는 <오나먼트 ornament>와 <판> 등에서도 목판과 옻칠, 자개 등의 재료를 활용해 작업해 온 과정이 기록돼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무한한 가능성, 함께 어울렸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작가에게는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한때의 정서이기도 하다.
![]() [코리안투데이]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만나는 한국 옻칠, 평화와 인간 존엄을 말하다 ©김현수 기자 |
파리 전시에서는 그 개인적인 기억이 평화라는 보다 넓은 메시지로 이어진다. 최 작가는 전쟁과 난민, 이념과 사회적 갈등을 가까이에서 경험해 온 유럽의 현실을 떠올리며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평화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 <오너먼트>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국의 주렴 이미지로 풀어낸 작업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결합하면서 동서양의 이미지를 나누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다.
작가의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천지인의 개념도 이 같은 시선에서 출발한다. 핵심은 생명본위다. 하늘과 자연, 인간을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되고 융합되는 하나의 관계로 바라본다.
작업에 사용하는 자개와 난각, 금분, 은분, 토분에도 정해진 역할은 없다.
“각자의 몫이 있을 뿐입니다. 그 자리에 필요한 만큼 쓰이고 마지막에 서로 어우러지는 조화가 작품을 완성합니다.”
사람을 나타내는 문양 역시 모두 다르다. 반복해서 문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똑같은 형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 경험은 어느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각각의 인간은 독립된 존재이며 그 자체로 존엄성을 가진다는 철학이다. 서로 다른 문양이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하나의 작품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마당과 광장도 최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공간이다. 작가노트에서 마당은 사람들이 함께 웃고 나누던 열린 공간이며, 현대에 이르러 광장으로 확장되는 공동체의 장소로 설명된다.
최 작가는 마당의 공동체에서 출발한 공간이 광장이라는 문화와 성장의 상징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건강하게 변화하면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도 작품에 담고자 한다.
옻칠 작업은 빠른 시대와 정반대의 속도를 가진다. 여러 번 칠하고 기다리며 다시 연마해야 한다. 작가가 서두른다고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최 작가에게 옻칠의 시간은 단순한 제작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작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감정을 다스리며 스스로를 객관화한다.
![]() [코리안투데이] 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 최여임 작가가 말하는 옻칠의 현재 ©김현수 기자 |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시간을 쌓는 작업의 의미를 묻자 최 작가는 일상의 비유로 답했다.
“레토르트 식품과 집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짧게 덧붙였다.
“사람이 합니다.”
기술의 발전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해야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도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만들어가는 과정의 의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 작가는 “변화는 과정이고 지켜야 하는 것은 결과”라고 말한다. 전통 역시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사유와 변화를 거친 뒤에도 남아 있는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색채에서도 이러한 절제는 나타난다. 옻칠은 다양한 색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최 작가는 단색화에 가까운 화면을 통해 옻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거나 자개와 난각 같은 재료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려 한다.
옻칠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깊어지고 맑아지며 투명감이 더해진다.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색이 주는 안정감과 깊이가 관객에게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검은색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최 작가에게 검정은 단순한 조형적 색채가 아니라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인 색이다.
한국 관객과 프랑스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옻칠이라는 재료가 비교적 익숙하지만 해외 관객에게는 보다 새로운 물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옻칠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다.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자연이라는 근원에서는 누구나 내적인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최여임 옻칠 작가가 세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은 가치 역시 사람과 자연의 융합에 놓여 있다.
작업의 변화도 계속되고 있다. 칠 작업의 출발이 공예였던 만큼 초기에는 공예적 성격이 강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회화적인 접근은 점차 넓어졌다.
반대로 화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덜어내고 비우려 한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끝까지 남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이다.
파리 역시 하나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는다. 몇 작품을 선보인 뒤 성공이나 실패를 확인하기보다 유럽이라는 새로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남는지를 살피고 싶다고 했다. 그 경험을 다시 새로운 작품에 접목하는 것이 다음 과정이다.
![]() [코리안투데이] 느린 옻칠의 시간으로 사람과 자연을 잇다, 파리에서 전하는 Be happy © 김현수 기자 |
관객이 작품 앞에서 어떤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느냐는 물음에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질문을 잊었으면 합니다. 무념무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도,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도 없이 잠시 작품과 함께 머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그리고 파리의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는 더 짧았다.
“Be happy.”
미셸 권보경 관장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새로운 도전, 수천 년을 이어온 옻칠이라는 재료, 아이들의 순수함과 평화에 대한 바람이 파리에서 하나의 화면으로 만난다.
빠른 시대에 느리게 쌓인 시간으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최여임 옻칠 작가가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향하고 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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