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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작가, 내면의 안뜰에 피워낸 현대민화의 새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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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작가의 현대민화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삶의 경험과 기억, 한국적 정체성을 민화의 색과 상징에 담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확장한다. 2026년 작품 내면의 안뜰은 이러한 작업 세계를 응축해 보여준다. 작은 항아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생명은 작가가 살아온 시간인 동시에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가꾸어 온 뜰이다.

 [코리안투데이] 파리에서 한국의 민화까지,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이정희 작가의 여정  © 김현수 기자

작품 내면의 안뜰은 68×110cm 크기로 순지 위에 분채와 동양화 안료를 사용해 제작됐다. 화면의 중심에는 항아리와 그 안에서 자라난 매화,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등장한다. 각각의 소재는 단순한 정물이 아니다. 항아리는 생명을 품는 공간이고, 매화는 견디고 성장하는 시간이며, 책은 작가가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상징한다.

작가에게 뜰은 오래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그는 흙을 밟고 식물을 심으며 그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뜰을 마음속에 품어왔다. 가까이 두고 싶지만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공간이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뜰은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내면으로 옮겨갔다.

이정희 작가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내면의 안뜰에서 작은 항아리라는 형태로 시각화된다. 물리적으로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는 뿌리가 내리고 가지가 자라며 마침내 꽃이 핀다.

 [코리안투데이] 항아리에 피어난 마음의 정원, 이정희 작가가 그려낸 내면의 풍경  © 김현수 기자

특히 매화는 작품의 중요한 상징이다. 겨울의 추위를 지나 꽃을 피우는 매화의 모습에서 작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시간을 바라본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생명은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이 생명의 움직임을 사람의 내면과 연결한다.

한 권의 책에도 작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책은 지혜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온 이정희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상징한다. 경험과 선택, 지나온 시간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이 한 장씩 쌓여 지금의 자신을 형성했다는 의미다.

작가는 자신이 매 순간 선택한 것들을 가능한 한 사랑하려 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자리가 언제나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보낸 시간 역시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이런 태도는 작품 내면의 안뜰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정희 작가의 현대민화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에는 디자인을 공부한 경험도 자리한다. 형태와 색, 조형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면서도 회화에 대한 갈망을 품었던 그는 민화를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히 순지가 가진 부드럽고 순수한 물성과 안료를 여러 겹 쌓아가는 과정에 매료됐다.

 [코리안투데이] 전통 민화에서 오늘의 삶으로, 색과 상징에 담은 한국적 정체성  © 김현수 기자

순지 위에 안료가 쌓일 때 색은 단순히 화면을 채우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종이와 안료가 서로 스며들고 색과 색이 만나면서 미묘한 깊이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 느리고 섬세한 과정에서 민화 특유의 미감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그가 바라보는 민화에는 화려한 색채와 자유로운 조형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삶, 바람과 염원, 삶을 바라보았던 오래된 지혜가 함께 흐른다.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 안에 담긴 철학과 정신을 발견하면서 민화는 작가에게 전통회화의 한 장르를 넘어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언어가 됐다.

그렇다고 이정희 작가가 전통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에 담긴 정신과 감성을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경험을 더해 새로운 화면으로 옮기는 데 관심을 둔다. 익숙하지만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한국의 색과 선, 상징과 미감은 그의 작품에서 개인의 기억과 만나 현대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의 확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작가가 제공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스페인 말라가, 프랑스 파리와 낭트, 인도네시아 등에서 열린 여러 전시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파리의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에서 레지던시를 경험했다.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는 1965년 문을 연 파리의 국제 예술가 레지던시 기관으로, 현재 다양한 국적과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연구, 교류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코리안투데이] 내면의 안뜰에 뿌리내린 매화, 삶의 시간을 화폭에 담다  © 김현수 기자

작가는 대갈현대민화공모전 대상과 전국민화공모전 특선, 영월전국민화공모전 장려, 인천미술대전 특선, 강릉단오서화대전 특선 등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시소 개인전을 열었으며, 갤러리 자인의 Mom & Mom, 갤러리 다다프로젝트의 Mom of Mom, 갤러리 향원제의 보보 공감이야기 등 개인전과 초대전을 이어왔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책거리, 책에서 피어난 그림을 비롯해 프랑스 낭트와 파리,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에서 민화를 알리는 전시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모던민화 컬러링북 시리즈 1~7권이 있으며, 가회민화박물관에는 작품 감모여재도가 소장돼 있다고 작가는 밝혔다. 현재 대갈화사회원으로 활동하며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현대민화를 강의하고 있다.

이정희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순지 위에 한 겹씩 색을 쌓는 시간은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살피는 수행과 닮아 있다. 화면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평온한 자신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의 안뜰은 한 작품의 제목을 넘어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누구에게나 삶의 조건은 다르게 주어진다. 마음속에 바라던 모든 것을 현실에서 가질 수도 없다. 그러나 작가는 작은 항아리 안에서도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코리안투데이] 전통을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언어로, 민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리다  © 김현수 기자

이정희 작가의 현대민화에서 중요한 것은 뜰의 크기가 아니다. 무엇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어떤 시간으로 가꾸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내면의 안뜰 속 작은 항아리에서 피어난 매화처럼 삶의 공간이 작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는 자랄 수 있다.

전통의 색과 상징에서 출발해 개인의 기억과 삶의 태도로 향하는 이정희 작가의 현대민화는 그래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다. 전통을 기억하면서 오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다시 발견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자체에서 삶의 행복을 배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내면의 안뜰 역시 그렇게 가꾸어지고 있다. 항아리 안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듯, 그의 화면에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이어질 시간이 함께 자라고 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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