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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29일 –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한 국치 16주년, 그 시각 양쯔강엔 포성이 울렸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6178

1926년 8월 29일 일요일 · 경성(京城)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한 국치 16주년

처서가 지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경성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누구도 달력에 표시할 수 없는 날이었다. 열여섯 해 전 바로 오늘, 나라 이름을 빼앗아간 문서 하나가 공포됐다. 그 날짜를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엔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날의 경성

1926년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정확히 16년째 되는 날이었다. 총독부 치하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기념하거나 추모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날 신문 지면이 실제로 이 날짜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 무렵 경성의 신문들은 다른 근심에 잠겨 있었다. 일주일 전인 8월 22일자 조선일보 칼럼 「횡설수설」이 문제가 되어, 필자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참이었다. 9월 8일로 공판이 잡혀 있었고, 검찰은 최원순에게 징역 8개월, 김철중에게 금고 6개월을 구형할 예정이었다. 사흘 전인 8월 26일에는 「벙어리 삼룡이」「물레방아」「뽕」을 남긴 젊은 소설가 나도향이 스물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문단은 아직 그 죽음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지난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만세를 부르다 붙잡힌 학생들의 사건은 6월 25일 이미 기소되었으나, 실제 공판은 아직 열리지 않고 예심만 이어지고 있었다.

경성과 한반도

이 무렵 총독부는 지난 5월 고등경찰과에서 도서과를 따로 떼어내 검열을 한층 촘촘히 다지던 참이었다. 조선일보 필화사건은 그 그물이 실제로 작동한 첫 사례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국경 너머 신의주에서는 8월 23일, 신민부와 연결된 인물에 대한 판결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내려졌다는 사실만 전해질 뿐, 그 내막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 해 전 을축년 대홍수로 온 나라가 물에 잠겼던 기억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광주군에는 그 홍수를 기리는 비석이 두 달 전 막 세워졌다. 국권도, 목소리도, 심지어 지난여름의 상처마저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날, 저 멀리 중국 양쯔강에서는 총성 대신 급류가 사람을 삼켰다. 쓰촨의 군벌 양썬의 병사들을 실어 나르던 영국 기선 완류호가 갑자기 방향을 크게 틀었고, 그 뱃길에 휩쓸린 중국 병사들의 목선이 뒤집혔다. 이 사고는 열흘 뒤 영국과 중국 군벌 사이의 포격전으로 번지는 완셴 사건의 발단이 됐다. 후난성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 전선을 넓혀 우페이푸의 군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가 뭉친 연합반대파가 여름 내내 성명과 전단을 돌리며 스탈린과 정면으로 맞서던 중이었다. 그리고 엿새 전인 8월 23일, 뉴욕에서는 은막의 연인 루돌프 발렌티노가 서른한 살 나이로 숨을 거두어 조문 인파가 도시를 뒤덮었다는 소식이 경성 극장가에도 전해졌다. 다만 그 무렵 경성의 극장들은 발렌티노를 애도할 겨를도 없이, 총독부의 영화 검열 수수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경성 24시

일요일 아침, 성당과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골목마다 이어졌다. 낮이 되자 신문 가판대 앞에는 필화사건 소식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섰다. 극장 앞에는 발렌티노의 부고를 알리는 짤막한 벽보가 붙었지만, 그 옆에는 검열 도장이 찍힌 상영 안내문도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해거름이 되자 종로 거리엔 저녁 찬거리를 사는 사람들과, 나도향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걷는 문청들의 모습이 뒤섞였다. 밤이 깊어지며 등불이 하나둘 켜졌지만, 열여섯 해 전 오늘 있었던 일을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은 끝내 없었다.

100년의 거울

비교 항목 1926년 2025년
국가의 이름 지도에서 지워진 나라 주권을 지닌 대한민국
신문의 목소리 도서과의 검열 도장 자유로운 보도와 비평
세계 소식을 접하는 방법 며칠 늦게 도착하는 활자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화면
기념할 수 있는 날 입 밖에 낼 수 없던 8월 29일 누구나 기억하고 말할 수 있는 역사

백 년 전 이날,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날짜조차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이 글을 자유롭게 쓰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걸어왔는지를 보여준다.

내일, 1926년 8월 30일 월요일. 경성은 또 하루를 시작한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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