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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26일 – 물레방아 소리 멎던 날, 스물다섯 문사 나도향 눈감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5909
오프닝

1926년 8월 26일 목요일.
처서(處暑)를 사흘 보낸 경성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돌기 시작하던 이날, 조선 문단에는 그보다 더 시린 소식이 전해졌다.

스물다섯 살 소설가 나도향이 오랜 병상 끝에 눈을 감았다. 「벙어리 삼룡이」와 「물레방아」로 조선 문학에 새 물길을 낸 젊은 작가의 죽음은, 여름 끝자락을 유난히 무겁게 만들었다.

이날 경성의 구체적인 기상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처서를 갓 지난 절기상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한낮은 아직 무더운, 늦여름과 초가을이 뒤섞인 날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 그날의 경성

문사(文士)의 죽음

본명 나경손(羅慶孫), 필명 나도향(羅稻香). 1902년 3월 30일 경성 청파동에서 태어난 그가 이날 세상을 떠났다. 향년 25세(만 24세).

1922년 동인지 《백조》 창간호에 소설 「젊은이의 시절」을 내놓으며 문단에 나섰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해 열아홉 소년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를 잇달아 써내며 조선 근대문학의 촉망받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일본 도쿄 유학길에서 걸린 감기가 폐결핵으로 깊어졌고, 병을 안은 채 고국으로 돌아와 병석에서 앓다가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등 후대 문학사 기록 종합

조간신문 1면

이날 자 각 신문 1면 머리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주 초 동아일보 8월 22일자 칼럼 「횡설수설」의 한 대목이 말썽이 되어, 집필자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겨진 사건이 여전히 조선 언론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출처: 동아일보사 사사(社史)·독립운동사 자료

🏛️ 총독부 관보

이날 관보에 실린 구체적 법령·고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 기록된 저항

그해 6월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으로 잡혀간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여름 내내 경성지방법원 미결감에 갇혀 있었다. 거사를 준비하다 붙잡힌 권오설을 비롯한 130여 명, 국장 행렬 앞에서 만세를 부르다 현장에서 붙잡힌 학생들의 재판은 가을을 앞두고 있었다.
출처: 우리역사넷·독립유공자 공적조서

💰 신문 광고로 본 물가

이날 신문 광고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 물가 정보 없음.

🗾 경성과 한반도

나도향의 부음은 경성 문단만의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청파동에서 나고 자란 경성 토박이였지만, 「뽕」과 「물레방아」의 무대는 가난한 소작농과 여성들의 삶이었다. 그의 소설이 그려낸 궁핍한 농촌 풍경은 경성 바깥의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한편 6·10만세운동의 불씨는 이미 경성을 넘어 각지로 번진 뒤였다. 평양과 대구를 비롯한 지방 도시의 학생들도 그해 봄 이후 크고 작은 움직임을 이어갔고, 만주와 상해의 한인 사회에서도 국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술렁임이 일었다.

조선어로 글을 쓴다는 것, 조선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버팀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젊은 작가의 죽음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 동아시아 삼국

🇨🇳 중국 – 북벌의 진군

국민혁명군이 지난 8월 22일 후난성 웨양(악양)을 손에 넣으며 후난 전역을 장악했다. 우페이푸의 대군이 버티는 후베이 우한을 향해 북상을 이어갔다.

🇯🇵 일본 – 병상의 천황

다이쇼 천황은 5월 한때 병세가 호전돼 거동이 가능했으나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하야마 별저에서 요양 중이었다. 황태자 히로히토가 1921년부터 섭정을 맡고 있었다.

🇷🇺 소련/만주

장쭤린 군벌이 만주 세력을 유지한 가운데, 간도·연변 일대 한인 독립운동 기지의 이날 구체적 동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 그날의 세계

🇺🇸 미국 – 해협을 건넌 여인

대서양 건너 뉴욕은 온통 한 여성 수영선수 이야기로 들썩였다. 스무 살 거트루드 에덜리가 지난 8월 6일 영국해협 34㎞를 14시간 31분 만에 헤엄쳐 건너 여성 최초 기록을 세운 데다, 남자 기록보다도 빨랐다. 다음 날인 8월 27일 뉴욕 귀환 환영 행렬을 앞두고 도시 전체가 준비로 분주했다.

🌐 유럽·기타 지역

이날 유럽·인도·중동 정세에 관한 구체적 보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 경성 24시 – 일상의 기록

🌅 아침 풍경

청파동 나도향의 집에는 이른 아침부터 문단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후일의 회고가 전한다. 보신각 종소리는 여느 날처럼 경성의 아침을 열었다.

☀️ 낮의 도시

종로와 남대문 상점가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신문사·잡지사 편집실에서는 부고 기사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구체적 지면은 확인되지 않는다.

🌙 밤의 경성

명동과 종로의 카페·요릿집은 밤이 깊도록 불을 밝혔고, 조선극장과 단성사에서는 변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노동의 하루

경성 인근 방직공장과 부두 노동자들의 이날 임금·노동시간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시기 조선인 노동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여러 조사에서 거듭 지적되던 문제였다.

🔄 100년의 거울

구분 1926년 2025년
작가의 삶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 병을 얻어도 제대로 요양하기 어려웠다 창작지원금과 저작권 제도로 작가의 최소한의 생계 안전망이 마련돼 있다
노동시간 방직·부두 노동자의 하루 12시간 안팎 장시간 노동이 일반적이었다 주 52시간제 등 법정 노동시간 규제가 자리 잡았다
의료 접근성 결핵 등 전염병 치료 시설과 약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건강보험 기반의 결핵 조기진단·치료 체계가 갖춰져 있다

💡 역사의 교훈

나도향이 스물다섯에 세상을 등진 것은 재능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를 살릴 의료와 사회안전망이 그 시대엔 없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몸도 마음도 지킬 방도가 마땅치 않은 채로 시대를 견뎌야 했다. 백 년 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건강보험과 노동시간 규제는, 그렇게 일찍 스러진 목숨들 위에서 조금씩 쌓아 올려진 것이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이 시간, 10시 10분
1926년 8월 27일을 만납니다.

“뉴욕에서는 거트루드 에덜리를 맞는 대대적인 환영 행렬이 예정돼 있습니다. 경성은 나도향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여느 때처럼 하루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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