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역사가 이웃 나라의 국책 연구 프로젝트 이름으로 지워질 수 있을까. 2002년,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동북 3성 정부와 손잡고 시작한 “동북변강 역사와 현상 계열 연구공정”—줄여서 ‘동북공정’은
표면적으로는 학술 연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 실체는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한 만주 지역의 고대사를 통째로 중국사의 일부로
재편입하려는 국가 차원의 역사 정책이었다.
705년 동안 존속하며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수나라·당나라의 대군을 두 차례나 물리친 나라를 어떻게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부를 수
있을까. 광개토왕릉비를 세운 나라의 역사가 왜 21세기에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을까.
◆ 시대의 풍경
동북공정의 씨앗은 2000년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정에서 뿌려졌다.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중심이 되어 준비 작업을 거친 뒤
2001년 10월 정식 승인을 받았고, 2002년 2월 베이징에서 제1차 전문가위원회가 열리면서 공식 출범했다. 표면적 명분은
‘변경 지역의 안정’이었지만, 실제 연구 과제 목록에는 고조선·고구려·발해사를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의 역사로 규정하는
작업이 핵심으로 포함돼 있었다.
파장은 2004년 절정에 달했다. 그해 7월 1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 일대의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와 북한 평양·남포 일대의 “고구려 고분군”이 사실상 동시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 학계와 여론은 중국이 이 국제 무대를 고구려사 편입의 명분으로 활용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달여 뒤인
8월 24일, 한중 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고 학술 교류로 풀어간다는 내용의 ‘5개항 구두양해’에
합의하며 외교적 봉합에 나섰다.
“왕은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토벌하여 그 나라의 왕성을 함락시켰다… 백제왕이 곤핍하여 남녀 포로 일천 명과
세포 일천 필을 바치고 왕에게 항복하여 이제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2001년 WTO 가입 직후 ‘중화민족 대가정’ 이데올로기 강화, 소수민족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국가사로 통합하려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학술 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던 시기였다.
🗿 유럽/중동
비슷한 시기 발칸반도·캅카스에서는 옛 유고슬라비아·소련 해체 이후 각 민족이
자국 고대사를 재정립하며 국경을 둘러싼 역사·정체성 분쟁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었다.
🌏 일본
2001년 후소샤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한일 관계를 뒤흔든 직후였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역사 교과서·역사 정책’이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공통된 국면이었다.
[이미지: 동북공정 사건 전개 타임라인 (2002~2006년)]
⚔️ 그날의 현장
“2004년 7월, 쑤저우의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 한국 대표단이 회의 결과를 전달받는 순간, 통역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고구려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오르는 건 경사였지만, 등재 명칭과 설명문에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표현이 스며들 가능성을
두고 회의장 밖 복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한 달,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는 외교 채널에서는 밤늦게까지 문안 조율이 이어졌다. 8월 24일 새벽, 마침내 5개항의
문구가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실무자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역사는 봉합됐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는 ‘고구려는 중국 영토 안에 세워진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으며, 멸망 후 유민 대부분이 중국에 흡수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곧바로 학계의 정면 반박에 부딪혔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부터 668년까지 705년간 독자적인 왕호와
연호를 쓰고, 독립적인 관제·군사 체계를 운영했으며, 수나라의 100만 대군을 살수에서 궤멸시키고 당 태종의 친정군을
안시성에서 물리친 나라였다. 같은 기간 중국 대륙에서는 왕조가 수십 차례 교체됐다는 점에서, 705년을 존속한 나라를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역사학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잇따랐다.
고고학적 증거도 동북공정의 논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국내성과 환도산성, 광개토왕릉비, 장군총 등 지안 일대의 유적은
독자적인 도성 체계와 왕릉 축조 기술을 보여주며, 고구려 벽화고분에 담긴 생활상·복식·신앙 체계는 중원 왕조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독자적 문화권의 존재를 증언한다. 무엇보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한국 측 사서는 물론, 중국 정사인 《구당서》·《신당서》
역시 고구려를 ‘해동성국’ 발해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국가로 서술해왔다.
정치적으로 동북공정은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 시 발생할 수 있는 영토·주권 문제에 대비한 중국의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정부는 2004년 교육부 산하에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시켰고, 2006년 9월 28일에는
이를 흡수·확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을 공식 출범시켰다. 역사 왜곡에 상설 대응기구로 맞선 것이다.
착수 시점
2002년 2월
주관 기관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핵심 쟁점
고구려·발해의 지방정권설
한국의 대응
동북아역사재단(2006년) 설립
🔍 학계의 시각
중국 측 논리
고구려는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발흥했고, 다수 유민이
당에 편입됐으므로 중국 역대 왕조사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현재 영토 기준’ 논리를 편다.
국내외 반박 견해
역사는 당대의 정치적 실체와 정체성으로 판단해야 하며,
현재 국경으로 과거 국가의 소속을 소급 규정하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국제 사학계의 다수 견해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동북공정은 2007년을 기점으로 공식 프로젝트로서는 일단락됐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지만, 그 이후로도 논쟁은 형태를 바꿔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소수민족 대표가 등장하며 다시 불거진 ‘한복 공정’ 논란, 김치의
기원을 중국의 파오차이(泡菜)에서 찾으려는 시도 등은 역사 서사가 문화 콘텐츠·소프트파워 경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동북공정이 던진 질문은 하나다. 역사 주권은 국력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사료를 정밀하게 읽고, 고고학적
근거를 축적하고, 국제 학계와 꾸준히 소통하는 ‘학문의 힘’이야말로 21세기형 역사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이다.
| 구분 | 고구려 시대 | 현재 |
|---|---|---|
| 정치/안보 | 수·당 제국의 침공을 실제 전쟁으로 막아낸 국경 방어 | 역사 서술을 둘러싼 외교전과 국제 여론전 |
| 대응 주체 | 국왕·귀족이 주도하는 국가 총력전 | 동북아역사재단 등 정부·학계·민간의 공동 대응 |
| 문화/정신 | 독자적 천하관과 상무정신 | 한류·K-컬처를 통한 문화 주권과 소프트파워 경쟁 |
[이미지: 동북공정에서 문화공정으로, 확장되는 역사 전쟁의 전선]
📚 더 깊이 알아보기
- 지안 국내성·환도산성 일대의 최신 발굴 성과와 왕릉급 고분 편년 연구
- 2004년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오간 한·중·유네스코 3자 협의 비화
- 동북아역사재단 발간 고구려·발해사 관련 국·영문 학술 자료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역사는 승자의 기록도, 강대국의 전유물도 아니다. 사료와 유적이 말하는 진실을 끝까지 붙잡는 것, 그것이 역사 주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광개토왕이 비석에 새긴 것은 정복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후대가 잊지 말아야 할, 스스로 지켜야 할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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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광개토왕릉비 – 1500년 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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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고구려 유적 답사 – 현장에서 만나는 역사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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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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