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19일, 목요일. 경성은 늦더위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연락선에서 남녀 두 사람이 사라진 지 오늘로 열엿새째. 바다는 아직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고, 신문은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물음을 실었다. 다만 오늘은 결이 조금 달랐다 — 그 바다에서 사라진 여인의 노랫소리가, 이제 곧 축음기 가게 진열장에 걸린다는 소식이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그날의 경성
지난 4일 새벽, 부산으로 향하던 연락선 위에서 조선 첫 소프라노로 불리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사라졌다. 승선 명부엔 가명이 적혀 있었고, 배는 뱃머리를 돌려 몇 번이고 그 바다를 훑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선실에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정작 본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돌아 그 진위는 여전히 엇갈린다. 그날 이후 조선일보는 “청춘 남녀의 정사라는 것, 그중에도 바다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이 새로운 방식”이라 적으며 이 사건을 조선 첫 정사(情死) 사건으로 대서특필했다. 열엿새가 지난 오늘, 신문가에 새로 나돈 이야기는 결이 달랐다. 두 사람이 사라지기 며칠 전, 윤심덕은 오사카 닛토축음기에서 스물여섯 곡을 취입했는데, 그중 한 곡이 ‘사의 찬미’였다.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곡조에 그가 직접 노랫말을 얹은 이 음반이 이달 하순 축음기상에 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다에 잠긴 사람의 목소리가 가게 진열장으로 먼저 돌아오는 셈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같은 날 경성운동장에서는 다른 열기가 있었다. 동아일보가 마련한 배재·중앙·휘문·경신 네 학교의 야구연맹전이 이어지며, 교복 입은 학생들을 응원하러 나온 이들로 관중석이 채워졌다. 한쪽에서는 사라진 이의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다른 쪽에서는 공을 쫓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울렸다. 지방 신문들도 현해탄 소식을 그대로 옮겨 실었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끊는 일이 옳은가를 두고 편지와 논설이 오갔다. 몇몇 극단은 벌써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궁리를 한다는 말도 돌았다. 확인된 사실보다 소문이 앞서 걷는 열엿새였다.

그날의 세계
뉴욕에서는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가 고비를 넘겼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15일 복통으로 쓰러져 맹장과 위궤양 수술을 받은 그를 두고 의사들은 이제 위험한 고비는 지났다고 밝혔다. 훗날 이 말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중국에서는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군벌을 몰아내겠다며 후난을 넘어 북으로 밀고 올라가는 중이라는 전보가 이어졌다. 도쿄 쪽 소식통은 왕실의 근심스런 분위기를 조심스레 전할 뿐, 자세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성 24시
이른 아침, 신문 배달 소년들이 골목을 뛰며 오늘자 신문을 돌렸다. 한낮에는 축음기 상점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음반 이야기를 나눴다. 경성운동장에서는 해가 기울도록 야구공 부딪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저물녘엔 관중들이 삼삼오오 거리로 흩어졌다. 밤이 되자 다방과 카페 구석에서는 여전히 그 두 사람 이야기가 낮은 목소리로 오갔다. 누군가는 정말 죽었을까 물었고, 누군가는 대답 대신 술잔만 비웠다.

100년의 거울
1926년의 조선 사람들은 축음기 가게 앞에 줄을 서야 겨우 노래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노래 스물여섯 곡을 담는 데도 바다 건너 오사카까지 가야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손안의 화면 하나로 음원이 몇 초 만에 흘러나온다. 그때는 바다에 빠진 사람을 찾는 데도 등불과 사람의 눈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위성과 수중드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노래는 남고 사람은 사라지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만이 100년의 거울 속에서 변하지 않았다.
| 1926년 | 2025년 |
|---|---|
| 음반 취입 위해 오사카까지 도항 | 스트리밍으로 즉시 발매·재생 |
| 등불과 사람 눈으로 실종자 수색 | 위성·드론·수중 음파탐지로 수색 |
| 학교 대항 야구, 신문이 유일한 중계 | 전국 생중계와 온라인 응원 |

내일, 1926년 8월 20일 금요일에도 현해탄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노래는 곧 가게에 걸리고, 시신은 여전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요.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110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