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 오전판 · 오전 10시 10분
1926년 10월 25일 월요일 · 경성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 10시 10분의 시간
1926년 10월 25일 월요일, 경성입니다. 절기로는 상강을 막 지난 가을 끝자락이지만, 이날의 날씨를 적은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어땠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이날 지면 원문도 이번 조사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앞뒤 시기 기록으로 이 월요일의 바탕을 짚어 봅니다. 총독부 새 청사 낙성식이 열린 지 스무나흘, 〈아리랑〉이 단성사에 걸린 지 스무닷새째 되는 날입니다. 월요일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날이니, 오늘은 영화 한 편을 만든 사람 나운규를 따라가 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53954.jpg)
그날의 경성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새 청사 낙성식을 크게 치렀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청사는 10여 년 공사 끝에 1925년 12월 완공되었고, 1926년 1월 업무를 시작했으며, 10월 1일 낙성식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복궁 정문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고 흥례문과 회랑, 금천과 영제교는 허물렸습니다. 공사비는 자료마다 달라 7백만 엔, 670여만 엔으로 갈립니다.
같은 날 단성사에서는 나운규가 쓰고, 감독하고, 직접 주연한 무성영화 〈아리랑〉이 처음 상영되었습니다. 여러 자료가 한국 영화사 첫 대흥행으로 꼽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10월 16일 무렵에도 단성사는 〈아리랑〉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합니다.
나운규는 1902년에 태어나 1937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서른다섯 해를 산 사람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새 청사 낙성식과 같은 날 걸렸다는 사실이 이 가을 경성의 얼굴입니다. 다만 10월 25일 당일의 관객 수와 상영 형편은 확인 안 됨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62958.jpg)
경성과 한반도
법정에서는 6월 10일 순종 인산일 만세운동의 뒷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뒤 전국에서 공산당원 150명가량이 붙잡혀 갔고, 이 일은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불렸습니다. 9월 하순에도, 10월 중순에도 경성 법정에는 공산당 사건과 6·10 사건 재판이 이어졌습니다. 10월 25일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 안 됨입니다.
신문 시장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해 11월에는 중외일보가 창간되어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함께 민간지 3파전이 짜입니다. 곧 새 신문이 나올 무렵, 월요일 아침의 경성은 이렇게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66728.jpg)
그날의 세계
이틀 앞선 10월 23일, 소련에서는 중앙위원회와 중앙통제위원회 합동 총회가 트로츠키와 카메네프를 직책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해 5월 지노비예프와 함께 ‘통합 반대파’를 만든 이들입니다. 스탈린의 권력이 굳어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남쪽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한창이었습니다. 11월 초 미국 외교 전문은 한커우가 남쪽 군대에 완전히 점령되어 조용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소식은 만주와 상하이의 조선 사람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날 조선 신문이 이 소식을 어떻게 실었는지는 확인 안 됨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6358.jpg)
경성 24시
월요일 아침나절, 광화문 앞길에는 새 청사로 출근하는 관리들이 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랬을 것’은 기록이 아닙니다. 이 글은 확인된 것만 적습니다.
확인된 것은 이렇습니다. 도시 한쪽에는 옮겨 세운 광화문과 큰 석조 청사가 있었고, 다른 쪽 종로의 단성사에서는 사람들이 〈아리랑〉을 보고 울었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한쪽은 권력의 건물을, 다른 쪽은 사람들의 노래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날의 물가와 임금은 확인된 수치가 없어 적지 않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78522.jpg)
100년의 거울
| 항목 | 1926년 | 2026년 |
|---|---|---|
| 한 사람의 일 | 나운규, 한 사람이 쓰고 찍고 연기한 〈아리랑〉 | 개봉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림 |
| 극장 | 단성사에서 첫 대흥행 | 단성사 영화역사관으로 재개관 |
| 광화문 일대 | 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며 광화문이 동쪽으로 이전 | 청사는 1990년대 철거됨(철거 논의 기록 있음) |
| 임금·물가 | 당일 수치 확인 안 됨 | 비교하지 않음 |
한 사람이 만든 노래 한 곡이 백 년을 건너 오늘도 불립니다. 큰 건물은 사라졌고, 노래는 남았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25일 – 총독부 낙성식 24일 뒤 월요일의 경성, 〈아리랑〉의 나운규와 이어지는 공산당·6·10 사건 재판](https://smilestory.thekoreantoday.com/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2523479104.jpg)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10월 26일 화요일입니다. 화요일에는 법정과 문화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청사 자료, 단성사·〈아리랑〉 관련 기사, 코리안투데이 1926년 9~10월 연재, 소련 정치국 구성 연표. 10월 25일자 신문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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