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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는 사진 한 장, 김문희 『빛이 머문 자리』가 독자에게 남긴 여백

기사입력 기사번호 60841

사진 한 장 앞에서 멈추는 시간을 책 한 권으로 묶었다. 김문희의 사진 에세이 『빛이 머문 자리』(부제 ‘내 안의 바람과 함께 살아내기’)는 장면을 해석해 주지 않는다. 사진과 짧은 글을 나란히 놓고 독자가 자기 기억을 겹쳐 볼 자리를 비워 둔다. WIA Book이 2026년 10월 26일 전자책으로 펴냈다.

지금은 누구나 하루에 수십 장씩 사진을 찍는 시대다. 그러나 한 장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다. 사진집이 작품 감상에서 일상의 기록과 마음 돌봄으로 무게를 옮겨 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사진 에세이는 그 사이에서 자란 장르다. 사진이 장면을 보여 주고, 글이 그 장면 앞의 호흡을 잡아 준다. 『빛이 머문 자리』는 이 흐름 위에 있으면서도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삶이 연약한 순간에도 저마다의 모양을 지닌다는 것, 그 모양을 바꾸려 하기보다 곁에 머물러 보자는 것이 책의 중심 문장이다.

설명하지 않는 사진 한 장, 김문희 『빛이 머문 자리』가 독자에게 남긴 여백

[코리안투데이] 신간 《빛이 머문 자리》 표지 © 코리안투데이 편집국

저자 김문희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소재는 멀리 있지 않다. 나무의 뿌리, 물 위에 비친 그림자, 빛을 붙잡은 거미줄, 사람들의 거친 손이다. 저자는 일상에서 마주친 이 장면들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진을 하나의 뜻으로 설명하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쪽을 택했다. 한 장면 앞에 잠시 멈추는 시간이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는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짜였다. 작가의 말에 이어 ‘바람 속의 나’, ‘내 이름으로 살아가기’, ‘흔들림 끝의 고요’, ‘일상의 작은 빛’, ‘관계의 거리’, ‘손에 담긴 삶’ 순서로 이어진다. 흐름은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앞의 장들은 나 자신과 이름, 흔들리는 마음을 다룬다. 뒤의 장들은 하루의 빛에서 출발해 타인과의 거리, 손으로 닿는 삶으로 시선을 넓힌다. 본문은 200쪽 분량이다. 가장 긴 장은 ‘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35쪽에서 82쪽까지 이어진다.

미리보기에 실린 글은 이 책의 결을 잘 보여 준다. 109쪽에는 거미줄이 나온다. ‘얼핏 위태롭고 엉킨 것처럼 보여도 가느다란 실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문장이 사진 옆에 놓인다. 이어서 ‘한 올이 끊어진 자리에 다른 올이 걸려 있는 거미줄’을 말하고, 견딘다는 것이 ‘혼자 단단해지는 일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52쪽의 글은 반대편에 선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감정’을 인정하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 부른다. 혼자 있음과 이어짐을 같은 책 안에서 함께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구체적이다. 85쪽에서 저자는 ‘오늘 하루도 참 애썼다’고 적고, 전신주가 늘어선 시골길에 노을이 번지는 장면을 붙인다. 늘 같은 길이 노을 속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 된다는 문장이다. 145쪽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거리’에서는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문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다’고 쓴다. 필요한 것은 기다려 주는 거리와 서두르지 않는 말이다. 마지막 쪽에서는 손끝으로 적은 말이 먼 곳의 누군가에게 닿는다고 말하며, 책 속 장면들도 그런 마음으로 독자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맺는다.

이 책은 사진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열려 있다.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가 길었던 사람은 ‘일상의 작은 빛’ 장에서 쉬어 갈 수 있다.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를 고민하는 사람은 ‘관계의 거리’에서 멈출 수 있다. 전자책이라 한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거나 마음에 닿은 문장으로 돌아가는 일도 쉽다. 독자는 순서와 속도를 스스로 정한다. 읽을 때는 사진을 먼저 보고 글을 나중에 읽거나, 그 반대로 읽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같은 장면이 다른 얼굴로 보인다.

읽을 때 눈여겨볼 대목은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사물이 장마다 어떻게 다른 뜻을 얻는지, 특히 거미줄이 109쪽의 ‘이어짐’에서 책 전체의 ‘연약함’으로 번지는 과정이다. 둘째, 글이 어디서 끝나고 여백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다. 셋째, 여섯 번째 장에서 ‘손’이라는 소재가 앞선 장의 바람과 빛을 어떻게 받아 내는지다. 『빛이 머문 자리』는 김문희가 쓰고 찍었고, 정가는 12,000원이며, 도서 형식은 전자책이다. 구매와 미리보기는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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