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얼마 전 협회 상담실에서 한 회원분이 들려준 이야기로 오늘 칼럼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분은 지방에 계신 어머니와 매일 저녁 전화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명절,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더라는 겁니다. 화면 속 어머니 얼굴은 또렷했고 화질도 좋았는데, 오히려 목소리만 듣던 예전 전화보다 어머니가 “거기 계신다”는 느낌이 덜했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화질은 분명히 더 좋아졌는데, 왜 마음은 오히려 멀어졌을까.
이번 주 강의를 준비하며 VR(가상현실) 치유 기술을 다루다가, 그 통화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거기 있다”는 느낌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 — 이게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핵심입니다.
화질은 몰입, 마음은 임장감
VR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둘을 구분해서 부릅니다. 하나는 몰입(Immersion), 다른 하나는 임장감(Presence)입니다. 처음 들으면 같은 말처럼 느껴지지만,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몰입은 기계의 스펙입니다. 화면이 눈앞에 얼마나 넓게 펼쳐지는지, 픽셀이 얼마나 촘촘한지, 고개를 돌렸을 때 화면이 얼마나 지체 없이 따라오는지 — 이런 것들은 전부 숫자로 잴 수 있습니다. 영상통화로 치면 화질과 음질, 딱 그만큼입니다.
반면 임장감은 마음이 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 공간 안에 정말 있다”고 몸이 먼저 믿어버리는 상태입니다. 목소리만 듣던 전화에서 어머니가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처럼, 기술적으로는 덜 정교한데도 마음은 오히려 그 자리에 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화질이 좋아도 마음이 그 자리에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왜 이 구분이 중요할까요.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에서는 이미 200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VR을 노출 훈련 도구로 상시 활용하고 있고, 관련 연구들에서 성공률이 66~90%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보험사는 지난해 만성 통증을 겪는 400만 명 넘는 가입자에게 미국 식품의약국이 디지털치료제로 승인한 VR 프로그램 ‘RelieVRx’를 보험 급여로 제공하기로 했고요. 영국에서는 조현병으로 사회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가상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가상의 버스를 타보는 훈련 프로그램 ‘gameChangeVR’이 국가 보건서비스의 승인을 받아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열린 국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한 스타트업이 스트레스 호르몬 측정과 VR을 결합한 접근법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내외 흐름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질 좋은 헤드셋을 쓰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상의 절벽 앞에 섰을 때 다리가 후들거려야 하고, 가상의 버스 정류장에 섰을 때 진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긴장돼야 합니다. 그 순간이 와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일 자리가 생깁니다.
몸이 믿어야 마음이 따라간다
제가 KIHA에서 회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주 느끼는 것도 비슷합니다. 좋은 프로그램, 좋은 장비를 갖췄다고 해서 자동으로 마음이 열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자리에서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이 먼저 서야, 그다음에야 변화가 시작되는 걸 종종 봅니다. VR 헤드셋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야각과 해상도는 임장감이 자라날 토양을 만들어 줄 뿐, 그 토양에서 실제로 무언가 자라게 하는 것은 다른 몫입니다. 가상의 공간 안에서 두려움과 마주하고, 그 두려움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과정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 어머니 세대는 전화 목소리 하나로도 자식이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화질 좋은 화면과 정교한 헤드셋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거기 있다”는 그 느낌을 어떻게 만들어낼지는 여전히 배우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더 좋은 도구를 주었지만, 그 도구로 무엇을 짓는가는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 “거기 있다”는 감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두려움 앞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 헤드셋 너머의 실제 이야기들을 좀 더 들여다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32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