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8일 – 〈아리랑〉 개봉 이레째, 총독부 새 청사 낙성식 뒤의 경성

기사입력 기사번호 59539
🕙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8일 금요일 · 오전판 · 10시 10분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 10시 10분의 경성

1926년 10월 8일 금요일, 가을 아침나절의 경성입니다. 이날 하루의 날씨는 당일 기상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습니다. 대신 확인된 날짜들을 짚어 봅니다. 일주일 전인 10월 1일,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에서는 낙성식이 있었고, 같은 날 종로 단성사에서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막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그 이레째 되는 날입니다.

그날의 경성

이 글은 C타입, 곧 큰 사건 하나보다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는 기사입니다. 10월 8일 당일자 신문 원문은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짜가 확인되는 사실만 엮습니다.

먼저 새 청사입니다. 총독부는 1926년 1월 4일 남산 아래 왜성대에서 경복궁 안 새 청사로 옮겨 업무를 시작했고, 10월 1일 낙성식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을 앉히느라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고, 흥례문과 회랑, 금천과 영제교는 헐렸습니다. 궁궐 앞마당에 식민 통치의 관청이 들어선 것입니다. 당시 총독은 사이토 마코토였습니다.

다음은 극장입니다. 〈아리랑〉은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해 한국 영화사 첫 대흥행으로 꼽힙니다. 소리 없는 흑백 영화였지만 전국 극장은 물론 극장 없는 산간 마을까지 돌며 상영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일 관객 수나 표 값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성과 한반도

이 가을, 조선은 여전히 6월의 기억 속에 있었습니다. 순종의 장례일인 6월 10일에 학생들이 만세를 불렀고, 일제는 이선호를 비롯한 학생 열한 명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내렸습니다. 판결 날짜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골 사정도 팍팍했습니다. 1926년 한 해 동안 소작쟁의는 726건, 노동쟁의는 160건이 있었다고 집계됩니다. 이것은 연간 합계이고 10월 8일 하루의 숫자가 아닙니다. 그해 1월 3일에는 전남 자은도에서 소작인 천여 명이 무장 경찰 이백여 명과 맞붙어 스무 명가량이 붙잡혔습니다.

한글을 기리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는 이 해 11월 4일, 음력 9월 29일에 식도원에서 첫 기념식 ‘가갸날’을 엽니다. 오늘로부터 한 달쯤 뒤의 일입니다.

그날의 세계

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한창이었습니다. 우창 성안에 남은 군대가 한 달 넘게 버티던 포위전이 막바지였고, 이틀 뒤인 10월 10일 우창이 떨어집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0월 7일 무솔리니 체제의 파시스트 대평의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는 10월 5일 불가코프의 〈투르빈가의 나날들〉이 첫선을 보였고, 미국에서는 10월 3일 찰스 코글린 신부가 디트로이트 라디오에서 주간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월드 시리즈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야구사에 남을 활약을 펼쳤습니다.

경성 24시 – 금요일의 여성과 가정

금요일 로테이션은 여성과 가정, 종교 생활입니다. 하지만 이날 여성이나 가정, 종교에 관한 구체적인 기사는 찾지 못했습니다. 상상으로 채우지 않고 확인된 배경만 적습니다.

연구자들은 1920년대 극장에서 서양 영화를 본 조선 사람들이 배우의 옷차림과 연애 풍속을 따라 하며 새 생활 양식을 익혔다고 설명합니다. 종로의 단성사, 우미관, 조선극장은 조선 사람 영화관 세 곳으로 겨루었고, 충무로 쪽에는 일본 사람 극장이 몰려 있었습니다. 아침나절 일터와 학교로 나선 사람들, 저물녘 극장 앞에 늘어선 줄은 그 시대의 자연스러운 그림이지만, 10월 8일의 구체적인 장면은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2026년
영화 보기 단성사 같은 극장에서 소리 없는 흑백 영화 극장과 손바닥 화면 어디서나
한글 기념 첫 ‘가갸날’ 준비(11월 4일) 10월 9일 한글날, 해마다
궁궐 앞 총독부 청사가 광화문 뒤를 가림 청사는 헐리고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음

금요일의 비교 항목은 여성과 가정이지만, 이날 숫자로 견줄 자료가 없어 문화생활로 바꿨습니다. 백 년 사이 말글과 궁궐 앞은 되찾았고, 영화는 우리 손에서 만들어 세계로 나갑니다. 그 시작에 〈아리랑〉이 있었습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10월 9일 토요일, 한글이 세상에 나온 날로 기념하는 날짜와 같습니다. 이 해에는 아직 그 기념일이 없었지만요.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해제(총독부 청사), 〈아리랑〉 개봉 관련 보도(경향신문·매일신문 등), 한글날 기원 관련 보도(국립국어원·국가기록원), 6·10만세운동 관련 자료, 소작·노동쟁의 통계 소개 자료, 세계 사건은 Wikipedia ‘October 1926’. 10월 8일자 당일 신문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음. 🕙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 이 기사 인증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 스트림 코드 보기

움직이는 코드(스트림) 한 장에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담겨 있습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147초 비추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Stream.mp4 도 여기서 받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코리안투데이 101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