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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일 – 잡지 『개벽』, 총독부 검열 서른일곱 번 끝에 통권 72호로 문을 닫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4177
오전판

🕙

1926년 8월 1일 일요일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시 10분, 경성

일요일 아침, 경성 거리는 여느 때처럼 조용히 깨어났다. 하지만 이날 조선 사람들이 가장 아끼던 잡지 하나가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6년 동안 조선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다니던 『개벽』이 통권 72호를 끝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요일이었지만, 그 뒤에는 총독부의 오랜 압박이 있었다.

그날의 경성

천도교 청년회가 1920년 6월 세상에 내놓은 『개벽』은 매호 7천 부에서 9천 부를 찍어, 그 시절 가장 널리 읽히던 종합잡지였다. 창간호부터 총독부의 눈총을 받았다. 표지에 그려 넣은 호랑이 그림과 「금쌀악 옥가루」라는 글이 문제 삼아져 첫 호부터 거둬들여졌고, 결국 문제된 부분을 들어낸 뒤에야 겨우 다시 찍어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자료에 따르면, 『개벽』은 6년 동안 서른일곱 차례가 넘게 책을 거둬들이거나 팔지 못하게 막혔고, 정간도 한 차례, 벌금도 한 차례 물었다. 그리고 1926년 8월 1일, 72호를 끝으로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그 호에 실린 사회주의 관련 글이었지만, 두 달 전 6·10만세운동을 통해 천도교와 사회주의 세력이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 더 큰 배경으로 꼽힌다.

경성과 한반도

『개벽』의 폐간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4월 25일 순종이 세상을 뜨고, 6월 10일 그 상여가 경성 거리를 지나던 날 학생 2만 4천여 명이 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뿌렸다. 총독부는 크게 놀라 경계를 한층 세게 했다. 그해 4월에는 경무국 아래 도서과를 새로 두어, 책과 잡지를 미리 들여다보는 체계를 갖추었다. 『개벽』의 폐간은 이 새로운 검열 체계가 처음으로 거둔 큰 성과였던 셈이다.

『개벽』과 함께 어린이 잡지를 이끌던 방정환 역시 6·10만세운동과 얽혀 예비검속을 당했고, 해마다 열리던 어린이날 행사도 순종의 국장으로 인해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한편 6·10만세운동으로 붙잡힌 학생 열한 명은 아직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들의 첫 공판은 석 달 뒤인 11월 2일에야 열리게 된다.

그날의 세계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에 한창이었다. 8월 들어 후난성 전체가 국민당 손에 들어왔고, 군대는 우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상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도부 교체로 어수선한 가운데, 안창호가 내세운 민족유일당운동으로 흩어진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독재자 프리모 데 리베라를 향해 단검이 날아드는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빗나갔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가톨릭 신자 4백여 명이 성당에 들어가 정부군과 총격을 주고받았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바투르 화산은 이튿날부터 큰 폭발을 시작해 마을을 뒤덮을 참이었다.

경성 24시

일요일 아침, 종로 쪽 서점과 신문 판매대에는 여느 날처럼 사람들이 오갔다. 교회와 성당에는 예배를 보러 나온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개벽사 사무실 쪽은 사정이 달랐다. 6년을 지켜온 잡지가 더는 나오지 못한다는 소식에 편집진과 필자들의 낯빛이 어두웠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날의 구체적인 표정까지는 신문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 일요일은 그 주간 내내 이어진 무거운 분위기의 끝자락이기도 했다. 순종의 국장을 계기로 되살아난 만세 시위의 열기, 뒤이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 그리고 새로 생긴 도서과의 검열까지, 그 여름 조선 사람들은 말과 글의 자유가 한 뼘씩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조선 2026년 대한민국
출판물 관리 총독부 도서과의 사전 검열, 발매금지·압수 헌법 제21조, 사전검열 금지 원칙
대표 잡지 운명 『개벽』 37회 압수 끝에 강제 폐간 다양한 매체가 자유롭게 창간·폐간 결정
비판적 글쓰기 사회주의·독립 관련 언급 시 즉각 압수 표현의 자유로 폭넓게 보장

백 년 전 조선 사람들은 잡지 한 권을 지키기 위해 서른일곱 번의 압수를 견뎌야 했다. 지금 우리가 별다른 고민 없이 누리는 ‘펴내고 읽을 자유’는, 그렇게 누군가 지켜내려 애쓴 자리 위에 서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개벽』은 문을 닫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려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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