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토리에게 목욕탕은 낯선 소리로 가득한 미지의 공간이다. 물소리, 수건 소리, 신발 끄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 아이는 겁부터 낸다. 그림책 <토리의 목욕탕 소리여행>은 보청기를 낀 아이가 이 소리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아빠와 맞잡은 손 한 번이라는 게 이 책의 전언이다.
장애 이해를 다룬 그림책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초기에는 장애의 정의나 보조기기 사용법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요즘 작품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일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쪽으로 흐름이 옮겨갔다. <토리의 목욕탕 소리여행> 역시 보청기를 소재로 삼되 훈육이나 교육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목욕탕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모험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청각장애나 난청을 가진 아이뿐 아니라, 낯선 상황 앞에서 얼어붙는 아이라면 누구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구조다. 소리를 다루는 그림책이 흔히 시각적 은유에 기대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소리 그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 사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청각장애나 보청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착용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꾸준히 출간되며 아동 청각재활 교육 자료로도 쓰여왔다. 국내에서는 이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창작 그림책이 아직 많지 않다. <토리의 목욕탕 소리여행>은 보청기 임상 현장에서 나온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이 흐름에 국내 사례 하나를 보탠다.
저자 지승주는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에서 18년간 아이들의 단어인지능력(WRS) 재활을 지켜봐 왔다. 보청기를 새로 낀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은 정보 전달의 어려움이 아니라 낯선 소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반복해 확인했다. 목욕탕이라는 배경은 그 관찰에서 나왔다. 물소리, 드라이기 소리, 신발 끄는 소리처럼 일상 어디에나 있는 소음을 소재로 삼아, 보청기 착용 초기 아이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상황을 그대로 옮겼다.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읽을 때 써먹을 장치도 있다. 아빠 네오가 토리에게 건네는 ‘최고야’ 손짓은 말없이도 아이를 안심시키는 신호로, 청각 재활 상담 현장에서 부모 교육 자료로 응용될 여지가 있다. 그림책 한 권이 곧바로 상담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소리 앞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은 가정에서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실천법이다.
저자 지승주는 필명 TOTOJI로 활동하며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를 18년째 운영해온 인물이다. 위아 언론인협회장과 코리안투데이 종로·중구·송파지부장을 겸하고 있으며,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 이사와 위아 평생교육원 전문교수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인공지능융합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소리의 선물>, <마법같은 순간들>, <신중년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쉬운 AI가이드> 등 여러 권을 펴냈다. <소리의 재발견> 시리즈에서는 보청기 적응과 생애주기별 청각케어를 다뤘다. 종로센터에서 난청인의 단어인지능력(WRS) 향상을 위한 재활 연구를 이어가는 임상 현장 경험이 이번 그림책의 바탕이 됐다.
구성은 ‘작가소개’와 ‘등장인물소개’에 이어 ‘만남: 비밀 신호의 탄생’, ‘모험: 목욕탕의 신비한 소리’, ‘도전: 폭포수 소리를 넘어서’, ‘성장: 루루와 다시 듣는 세상’, ‘행복: 바나나우유와 내일의 기억’ 다섯 장으로 이어지고, ‘작가의 말’과 판권지로 마무리된다. 등장인물은 토리, 아빠 네오, 그리고 보청기 속에 산다는 설정의 소리 요정 루루 세 축이다. 루루는 기계 장치인 보청기를 친근한 동반자로 바꿔놓는 장치로 기능한다. 아빠가 건네는 ‘최고야’ 손짓 신호는 루루가 없는 순간에도 토리가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매개로 등장한다.
원고 중 ‘아빠, 물소리가 이렇게 찰방찰방 예쁜 소리였어?’라는 토리의 말은 이 책이 겨냥하는 지점을 압축한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소리가 아이의 언어로 다시 이름 붙여지는 순간이다. 주 독자층은 보청기를 처음 접하는 유아와 그 부모지만, 낯선 경험 앞에서 망설이는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장애 유무와 무관하게 곁에 둘 만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눈을 맞추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삽화와 대사가 짜여 있어,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가정 독서 모임이나 청각 재활 상담 현장에서도 함께 펼쳐볼 만하다.
미리보기에 실린 초반 장면에서 토리는 아빠, 루루와 함께 처음 목욕탕 문을 연다. 윙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루루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토리 자신의 두려움과 겹쳐진다. 수채화 톤의 삽화는 소리를 시각적 리듬으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헹굼 소리 장면과 목욕 후 마시는 바나나우유 장면이 두려움과 보상의 대비축을 이룬다. 목욕을 마친 뒤 다시 루루를 귀에 꽂은 토리가 드라이기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를 더 또렷하게 만나는 장면은, 이 책이 그리는 성장이 한 번의 극복이 아니라 반복되는 적응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다음 권에서 루루와 토리가 목욕탕 밖 어떤 소리를 만나게 될지가 이 시리즈의 관전 포인트다. <토리의 목욕탕 소리여행>은 지승주·JIAN이 함께 만들었고 정가 1만5000원, 전자책(EPUB3·PDF) 형식으로 2026년 7월 13일 출간됐다. 구매는 WIA Book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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