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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정숙

[디지털치유론] 데이터가 불공정하면 AI도 불공정해집니다 — 디지털 자가돌봄의 조건

기사입력 기사번호 53853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오늘은 조금 낯선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얼마 전 KIHA 정기 세미나에서 한 회원분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제 수면 앱이 저더러 오늘 밤엔 이 호흡 연습을 해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도무지 알려주지 않아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나요?” 저는 그 질문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손에 쥐고 사는 그 작은 화면 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그 자리에서 저는 몇 해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의 한 의료 시스템에서 널리 쓰이던 알고리즘이, 같은 건강 상태라도 흑인 이용자를 백인 이용자보다 덜 위험하다고 판단해왔다는 연구였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알고리즘이 ‘건강 위험도’를 가늠하는 대리 지표로 의료비 지출을 사용했는데, 역사적으로 의료 접근이 어려웠던 이들은 애초에 병원을 덜 찾았을 뿐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신뢰가 없어서 못 간 것이 ‘건강하다’는 판단으로 둔갑한 셈입니다.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에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AI는 데이터만큼만 공정합니다. 데이터에 사회적 불평등이 반영되어 있으면, AI도 그 불평등을 학습하고 재생산합니다.

세미나장이 조용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흔히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기술은 결국 사람이 모아온 데이터로 빚어집니다. 저는 그날 회원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통합치유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자가 돌봄 방식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면, 정작 다른 삶의 결을 가진 분들은 그 기준 밖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20대 여성 데이터로만 다듬어진 도구가 60대 남성에게는 겉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회원분들도 각자의 경험을 하나둘 꺼내 놓으셨습니다.

디지털치유론

그렇다면 디지털 도구는 일상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설명해주는 도구’와 ‘그냥 시키는 도구’의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가령 어떤 앱이 그냥 “오늘의 추천: 이완 호흡 연습”이라고만 알려준다면 이용자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어젯밤 심박수가 평소보다 높았고, 취침 전 일기에 긴장이라는 표현이 자주 보였다”는 이유가 함께 오면, 사람들은 그 제안을 스스로 판단해 받아들이거나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바로 자기 돌봄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디지털치유론 보조 이미지

이 지점에서 통합치유의 관점이 필요해집니다. 통합치유는 어느 한 도구나 방법에 전적으로 기대는 접근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돌봄을 나란히 두고 자신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디지털 도구도 그 갈래 중 하나일 뿐, 이유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블랙박스 문제: 딥러닝 모델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개인정보보호 규정은 자동화된 판단에 대해 ‘설명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고 책은 덧붙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KIHA에서 만난 한 어르신 회원분을 떠올렸습니다. 그분은 처음엔 스마트 워치가 알려주는 수치들을 그대로 믿고 따르셨는데, 어느 날 “이 숫자가 왜 나온 건지 알아야 내 마음이 놓이지, 그냥 따르기만 하면 오히려 불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설명받을 권리’라는 게 법률 용어를 넘어, 마음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디지털치유론

제 책에는 인간과 AI가 함께 판단을 나누는 단계도 정리해 두었는데, 그중 이런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AI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되 대체하지 않습니다. 최종 결정은 이용자와 전문가에게 있습니다.

저는 이 원칙이야말로 통합치유가 오래 지켜온 태도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KIHA에서 활동하며 만난 여러 회원분들이 공통적으로 원한 것은 ‘대신 결정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생각할 재료를 건네주는 도구’였습니다. 어느 워크숍에서 한 회원분은 몇 달간 수면 기록 앱을 써오다가, 앱이 주는 정보를 참고하되 최종적으로는 저녁 산책과 일기 쓰기라는 자신만의 방식을 스스로 골라내셨습니다. 도구가 이유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고, 그분은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보며 저는 디지털 격차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합니다. 설명이 친절한 도구와 그렇지 않은 도구 사이에서,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더 쉽게 소외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K-치유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자가 돌봄 문화가 자라나고 있는데, 저는 이 흐름이 기술을 무조건 앞세우기보다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로 함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공정함과 설명 가능성은 결국 세대와 배경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도구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쓰고 계신 디지털 도구가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신가요. 혹시 그냥 알림이 뜨는 대로 따라가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오늘부터라도 하나의 알림, 하나의 추천 앞에서 “왜 이런 제안이 온 걸까” 잠깐 멈춰 물어보는 습관을 함께 시작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작은 물음표 하나가 자기 돌봄의 주도권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 Chapter 13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알고리즘 편향의 여러 유형부터 설명가능한 AI, 그리고 각국의 규제 흐름까지 함께 정리해두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digital-therapeutics-leve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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