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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에서 서기관까지 38년, 승진 아닌 견딤을 기록한 최희선 자전 에세이

이름이 불리지 않은 날에도 다시 출근한 38년의 기록

기사입력 기사번호 53773

“왜 아직도 승진을 못 했어요.” 서른여덟 해 공직생활 동안 최희선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그는 이 질문에 성과가 아니라 견딤으로 답해왔다. 신간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는 인사발령 방송에서 이름이 끝내 불리지 않던 날에도, 다음 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출근한 한 지방공무원의 기록이다. 승진 서사가 아니라 근속 서사를 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흔한 공직 성공담과 결이 다르다.

최근 몇 년 국내 출판 시장에는 정년을 앞둔 세대의 자전 에세이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다만 대부분 조직 내 성공 사례나 특정 분야 전문성을 앞세우는 구성이 많고, 승진에서 여러 차례 미끄러진 경험을 그대로 남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책은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기술서기관으로 정년퇴직하기까지 38년 가운데, 9급에서 8급까지 9년, 7급에서 6급까지 14년이 걸린 지연의 시간을 축소하지 않고 기록했다. 공직 조직의 인사 체계를 승진자 중심이 아니라 승진하지 못한 사람의 시선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행정 현장의 이면을 보여주는 자료로도 읽힌다. 해외에서도 은퇴 세대가 조직 생활의 부침을 있는 그대로 남기는 회고록이 꾸준히 출간되는데, 성취보다 지속을 주제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리안투데이] 신간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표지 © 코리안투데이 편집국

저자 최희선은 1987년 스물두 살에 광주군 남종면사무소에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하남시에서 보건, 위생, 복지, 회계, 감염병 대응 업무를 두루 맡았고 기술서기관으로 정년퇴직했다. 민원창구에서 주민을 상대했고, 산길과 논길을 걸으며 보건 업무를 처리했다. 만삭의 몸으로 야간 단속을 다녔고,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어린 딸이 보건소 한쪽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잠들곤 했다. 코로나19 대응 최일선에도 섰다. 집에서는 부모를 모셨고, 직장에서는 맡은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려 애썼다. 정년을 앞두고는 유방암 진단과 치료를 받으며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누군가는 승진으로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견딤으로 시간을 기억한다”고 돌아본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 12부로 구성됐다. 1부는 2012년 봄 승진 누락과 그 이후 홀로 자전거를 달리며 삭인 시간을 다룬다. 2부는 1987년 신규 공무원 시절, 기생충 관리와 새마을 새벽 업무 같은 초년 실무를 기록했다. 3부는 육아와 공직을 함께 견딘 시간이고, 4부는 결혼 이후 시가와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담았다. 5부는 하남시 행정 현장의 실무를, 6부는 7급에서 6급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은 누명과 감사를 서술한다. 7부는 곁을 지켜준 동료와 선배들과의 관계를, 8부는 보건과 복지 업무를 잇는 희망복지팀장 시절을 다룬다. 9부는 코로나19 대응 현장의 기록이고, 10부는 14년 만의 6급 승진부터 사무관, 서기관 승진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11부는 암 진단 이후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을, 12부는 주변인이 보낸 편지를 묶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승진이나 평가가 더뎠던 이들, 정년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정리하려는 공직자, 자신의 속도를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하는 독자에게 맞는 구성이다. 화려한 성취담보다 반복되는 하루를 견딘 기록에서 위안을 찾는 독자층을 겨냥했다. A5 판형 전자책으로 제작돼 출퇴근길이나 짧은 휴식 시간에도 부담 없이 펼쳐볼 수 있다.

2026년 6월 30일 정년퇴직 직후 쓴 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빨리 가는 것이 좋은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남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실패한 삶도 아니라는 것을.” 이어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썼다. 책을 쓰며 지난 삶을 다시 걸어본 소회도 남겼다. “힘들었던 기억보다 고마운 사람들이 더 많이 떠올랐고, 상처보다 따뜻한 손길이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이 문장들은 38년 근속 기록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압축한다. 독자가 이 책에서 확인할 대목은 승진 시점이 아니라, 이름이 불리지 않은 날에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 태도다. 12부에 실린 주변인의 편지가 그 태도에 어떤 응답을 남겼는지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는 최희선 저, 정가 1만 원, 전자책(EPUB3, PDF) 형식으로 WIA Book이 2026년 7월 30일 출간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https://wiabook.com/?post_type=download&p=446659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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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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