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이루어졌다.
교실 앞에서였고, 교사의 입회 아래에서였다.
가해 학생은 고개를 숙였고, 피해 학생은 조용히 “네”라고 답했다.
![]() [코리안투데이] 아직 지나가지 못한 마음의 시간 © 신성자 기자 |
모든 절차는 매뉴얼대로 진행되었다.
어른들은 그 장면을 ‘마무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도 아이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과 받았잖아.”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사과는 들었지만, 마음은 아직 안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사과는 ‘말’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몸에 남아 있었다.
웃음소리가 들리면 다시 긴장했고,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사과는 관계를 정리하는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상처는 관계 이전에, 안전감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지금 이 공간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반복된 경험이다.
회복탄력성은 용서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관계와 환경이 함께 만들어 주는 힘이다.
그 힘이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는 종종 너무 빠른 결론이 된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말한다.
“괜찮아요.”
그 말은 어른들을 안심시키는 문장처럼 들린다.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이 곧 괜찮아졌다는 뜻은 아닐지 모른다.
말은 앞서 나가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 못한 마음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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