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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김현수

집은 한 청년에게 꿈이 아닌, 결국 환상이 되었다

꿈의 문턱에서 멈춰 선 청년의 현실을 바라보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46302

도시의 새벽 공기는 언제나 조금 차갑다. 그 차가움은 피곤한 몸을 깨우는 용도라기보다, 삶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은 경고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버텨야 한다”는 속삭임. 출근길에 마주친 한 청년의 얼굴에서도 그 기색을 읽었다. 그는 커피를 손에 쥔 채 부동산 앱을 훑어보며 미세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 나 역시 그러했던 기억에 잠시 멈춰 섰다. 집을 가진다는 꿈—그 단단하고도 단순해 보이던 목표가 어느새 우리 세대에게는 실현 가능한 꿈이 아니라 허공 위의 그림 같은 환상이 되어버린 순간들이 있었다.

▲ [코리안투데이] 꿈의 문턱에서 멈춰 선 청년의 현실을 바라보다  © 김현수 기자

꿈이 지워지는 방식

부동산 가격은 잠잠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치솟고, 월급은 물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집은 삶의 기초가 아니라, “성공한 누군가만 가질 수 있는 보상”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는 방이 두 개이고, 햇빛이 잘 들어오고, 창문을 열면 나무 냄새가 나는 집을 꿈꿨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재무 계산표와 현실의 잣대 앞에 서면, 그 꿈은 슬그머니 크기를 줄인다. 방 두 개는 방 한 개로, 햇빛은 북향으로, 나무 냄새는 빌라 뒤편 공터로. 꿈은 그렇게 현실에 맞춰 형태를 바꾸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더 이상 변형할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꿈은 환상으로 밀려난다.

청년들이 무언가를 ‘꿈’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 계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는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익숙한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말은 반쯤만 옳고, 나머지 절반은 무책임하다.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격차가 아닌 구조적 불균형이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문제를 더 깊게 파묻는 셈이다.

희망의 크기를 다시 조정한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청년들에게 꿈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꿈이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만 걸려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집을 소유하는 것만이 삶의 완성은 아니다. 때로는 작은 방 한 칸에서도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임대의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장기 공공주택, 청년 맞춤형 주거정책—이 모든 것이 더 촘촘하게 보완된다면, 집을 갖지 못한 삶도 더 이상 ‘패배의 서사’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희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꿈은 시대와 함께 형태를 바꾸며,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러나 환상을 꿈으로 되돌리는 일은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책임이자 약속이다.

결론: 환상에서 꿈으로 돌아가는 길

새벽의 청년을 다시 떠올린다. 그는 아마 오늘도 앱을 열어 집값을 살펴보고, 잠시 한숨을 내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집을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환상처럼 멀어 보일지라도, 사회가 그 꿈의 거리를 가까워지게 만드는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다.

“집은 청년에게 꿈이어야 한다.”

그 문장이 다시 진실이 되는 날을, 나는 조용한 낙관으로 기다려본다.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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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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