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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23일 – 목포 제유공은 여덟 달째 파업 중, 총독부 새 청사는 완공을 여드레 앞두고 있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439
한가위가 지나고 이틀, 경성 거리엔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바람이 불었다. 광화문 앞 총독부 새 청사는 완공을 여드레 앞두고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었고, 저 멀리 목포에서는 제유공장 노동자들이 여덟 달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선어 신문들은 이 두 소식을 나란히 실었다.

그날의 경성 — 목포에서 들려온 여덟 달째 소식

목포 제유직공조합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선 건 그해 1월 15일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 일하던 것을 열 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것, 그리고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 요구는 단순했지만 싸움은 길어졌다. 170여 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결사대’라는 작은 모임에서 자라나 ‘행상대’를 꾸렸고, 목포 안팎의 사회단체들이 하나둘 손을 보탰다.
9월 23일이면 이 싸움도 여덟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회사 쪽은 어르고 달랬고, 경찰은 사람을 풀어 지도부를 잡아갔다. 붙잡히는 사람이 늘수록 대열은 흔들렸고, 떠나는 조합원도 하나둘 생겼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 — 1920년대 노동운동 가운데 보기 드물게 오래 버틴 싸움이라고, 훗날 역사는 이 파업을 그렇게 기록한다.
경성 법정 쪽 소식도 잠잠하지 않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는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심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국에서 백여 명이 붙잡혀 들어간 사건이라, 법정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 이날 자 신문 지면의 정확한 배치와 문구는 원문 확인이 더 필요하다. 위 내용은 매일노동뉴스 노동사 연재, 목포문화원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 2차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경성과 한반도 — 완공을 여드레 앞둔 신청사

1916년에 삽을 뜬 총독부 새 청사는 어느덧 10년째 공사였다. 이미 그해 1월부터 건물 안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지만, 조선 통치 시작을 기리는 날인 10월 1일에 맞춰 낙성식을 치르기로 정해져 있었다. 9월 23일, 그러니 딱 여드레가 남은 셈이었다.
공사장엔 여전히 인부들이 드나들었다.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안팎을 두른 4층짜리 건물, 가운데 우뚝 선 50미터 탑. 이 건물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조선 곳곳에서는 목포처럼 밥벌이를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한쪽에서는 통치의 상징이 세워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열 시간 노동을 얻어내려는 싸움이 이어졌다.

그날의 세계 — 필라델피아와 우한

바다 건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이날 밤 세스퀴센테니얼 경기장에 13만 2천 명이 모여들었다. 3년 만에 링에 오른 헤비웨이트 챔피언 잭 뎀프시가 도전자 진 터니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주었다 — 사람들은 이를 두고 ’10년 만의 대반전’이라 불렀다.
중국 쪽 소식도 예사롭지 않았다. 국민혁명군은 9월 초 한커우와 한양을 손에 넣으며 북벌에 속도를 냈지만, 9월 21일 쑨촨팡의 증원군이 난징 쪽에서 들어오면서 진격이 주춤해졌다. 우한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다.

경성 24시 — 벽돌을 나르는 손, 공장을 지키는 손

새벽녘, 경성의 노동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공사장 인부들은 아침부터 신청사 마무리 작업에 매달렸고, 낮에는 벽돌과 석재를 나르는 손이 쉴 틈 없이 오갔다. 하루살이로 일을 얻는 인부들에게 이 공사의 끝은 곧 일자리의 끝이기도 했다.
해거름이 되면 이들은 골목을 지나 셋집으로 돌아갔다. 목포에서 온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 열 시간 노동을 얻어내려 여덟 달을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는, 멀지만 낯설지 않았다.

100년의 거울 — 열두 시간과 여덟 시간 사이

비교 항목 1926년 조선 2026년 한국
하루 노동시간 12시간 → 10시간 요구(목포 제유공) 주 52시간제(법정)
노동자 조직 결사대 → 행상대(자생적 소모임) 산별노조·전국조직
임금 요구 수단 파업·연대 호소 단체교섭·노동위원회

백 년 전 목포의 노동자들이 밤낮으로 지켜낸 것은 ‘하루 열 시간’이라는, 지금 보면 당연한 숫자였다. 그 여덟 달의 싸움이 완전히 이기지 못하고 끝났다 해도, 다음 세대가 딛고 설 자리 하나를 남겼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이면 신청사 낙성식이 이레 앞으로 다가온다. 목포의 싸움도, 경성 법정의 심리도 계속될 것이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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