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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살아있다 – 백제 편] 제4화: 칠지도 – 1600년 전의 외교 문서

기사입력 기사번호 57964
百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4화: 칠지도 – 1600년 전의 외교 문서

일본 나라현의 한 신궁 깊숙한 창고 안, 길이 74.9cm의 쇠칼 하나가 1600여 년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칼날 양옆으로 뻗은 여섯 개의 가지, 그 표면에 금으로 상감된 61자의 글자가 지금도 한일 두 나라 역사학계를 뜨겁게 달군다.

바로 칠지도(七支刀)다. 백제가 만들어 왜(倭)에 건넨 이 칼 한 자루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문자로 남은 4세기 동아시아 외교의 육필 원본이다. 오늘날 정상회담 공동성명서 한 줄, 한 글자의 표현을 두고도 외교가 뒤흔들리는 것처럼, 1600년 전에도 글자 하나가 국가 간 위계를 결정지었다.

백제는 왜에게 칼을 ‘하사’한 것일까, 아니면 ‘헌상’한 것일까. 이 질문 하나에 두 나라의 근대 이후 역사 인식이 통째로 걸려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 시대의 풍경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년경)은 북으로는 고구려와 사활을 건 대결을 벌이는 동시에, 남으로는 가야·마한 세력권을 정리하며 국제적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369년 무렵 백제·왜 연합 세력은 가야 지역 여러 소국을 평정하고, 이어 서쪽으로 침미다례(忱彌多禮) 일대를 굴복시켰다고 전한다.

372년 정월, 근초고왕은 중국 남조의 동진(東晉)에 사신을 보내 ‘진동장군영낙랑태수’라는 책봉호를 받아냈다. 이는 백제가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 안에서 공인된 지위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학계는 바로 이 시기,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백제의 대외 전략 한 축으로 왜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칠지도가 제작·전달되었을 것으로 본다.

“…백번 단련한 쇠로 칠지도를 만드니 온갖 병란을 물리칠 만하여 마땅히 후왕(侯王)에게 줄 만하다… 선세 이래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왜왕 지(旨)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 출처: 칠지도 명문(七支刀 銘文),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소장 (앞면 34자·뒷면 27자, 학계 통용 판독문 기준)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강남에 자리한 동진(東晉)이 북방 5호16국과 대치하던 시기. 백제는 동진에 사신을 보내 책봉을 받아 국제적 정통성을 획득했다.

🗿 유럽/중동

로마제국은 발렌티니아누스 1세 치하로 동서 통치를 분담하던 시기. 게르만족의 압박이 본격화되며 국경 너머 부족장들에게 관복·인장을 하사해 위계를 표시하는 외교가 성행했다.

🌏 기타 지역

왜(倭)는 아직 통일 왕권 이전, 야마토 정권이 형성되던 단계로 백제로부터 선진 문물과 위신재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었다.

4세기 백제-왜 외교 항로도

百濟 근초고왕

高句麗

加耶·新羅

倭

칠지도 항로

東晉

[이미지: 백제를 중심으로 한 4세기 동아시아 외교망 – 대고구려 견제선과 대왜·대동진 외교선]

⚔️ 그날의 현장

“백번 두드려 단련한 쇳덩이가 대장간 화로 앞에서 서서히 여섯 개의 가지를 뻗어간다. 백제 왕실 공방의 장인은 마지막으로 금실을 새겨 넣으며 손끝을 떨었다 — 이 칼에 새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다 건너 왜왕에게 전할 백제의 위상을 결정할 것이었다.”

“완성된 칼은 비단에 싸여 사신단의 손에 들려 서해와 남해를 거쳐 왜로 향했다. 도착한 칼을 받아 든 왜의 지배자는 그 낯선 상감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을지언정, 백제가 건넨 이 신묘한 병기의 무게만큼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칠지도 명문 해석의 최대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연호 판독이다. 명문 앞부분의 흐릿한 두 글자를 ‘태화(泰和)’로 읽으면 동진의 연호(태화 4년=369년)와 맞아떨어져 근초고왕대 제작설이 힘을 얻는다. 반면 이 글자를 백제 전지왕의 독자 연호 ‘봉원(奉元)’으로 보는 견해는 제작 연대를 408년경으로 40년 가까이 늦춰 잡는다.

둘째는 ‘공공(供供)’ 또는 유사 표현을 둘러싼 하사설과 헌상설의 대립이다. 일본 학계 일부는 이 표현을 근거로 백제가 왜에 ‘헌상’했다고 해석해, 4~6세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방증으로 삼아왔다. 반면 한국 학계는 명문의 ‘후왕(侯王)’이라는 표현 자체가 백제가 왜의 지배자를 자국 책봉 질서 아래 두었다는 뜻이라며, 하사의 방향이 오히려 반대라고 반박한다.

2025년 나라국립박물관이 처음으로 칠지도를 X선 컴퓨터단층(CT) 촬영하면서 앞뒤 면이 겹쳐 보이던 글자들이 분리돼 ‘태(泰)’자 옆의 ‘화(和)’자, ‘백제(百濟)’의 ‘제(濟)’자가 한층 선명해졌다. 결정적 논쟁을 종식시키진 못했지만, 100년 넘게 이어진 판독 싸움에 새로운 물증이 더해진 셈이다.

시대

4세기 후반 (369~408년경, 학설 대립)

핵심 인물

백제 근초고왕·왕세자, 왜왕 지(旨)

핵심 유물

칠지도, 길이 74.9cm, 금상감 61자

영향

백제-왜 외교 관계의 최고 물증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연호를 ‘태화(369년)’로 읽고, 백제가 왜에게 ‘하사’했다는 해석. 백제 우위의 외교 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다.

대안적 견해

전지왕 연호 ‘봉원’설(408년 제작·409년 전달)을 근거로 제작 시기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홍성화 교수 등의 주장. 논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칠지도는 군사력이 아니라 정교하게 벼려진 물건 하나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규정하려 한 시도였다. 오늘날로 치면 국빈 방문 때 건네는 훈장이나 국보급 문화재 순회 전시와 닮았다 — 결국 소프트파워의 원형이다.

한류 콘텐츠와 K-culture가 오늘날 대외 관계에서 하는 역할을 떠올려 보면, 1600년 전 백제가 왜에 건넨 칼 한 자루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간의 뿌리 깊은 이견은, 문화 교류의 역사를 함부로 위계화할 때 얼마나 오래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구분 백제 시대 현재
정치/안보 고구려 견제를 위해 왜와 연합 전선 구축 동북아 역학관계 속 한미일 안보 협력
군사/외교 위신재(威信財) 하사로 상하 관계 표시 정상회담 국빈 선물·훈장 수여 외교
문화/정신 선진 문물 전수를 통한 영향력 확산 한류·K-culture를 통한 소프트파워

칠지도에서 한류까지 – 문화외교의 계보

칠지도 369년경, 위신재 외교

불교·한자 6세기, 왜에 문물 전수

도자기·서화 조선통신사 문화교류

K-Culture 21세기 한류

[이미지: 위신재 외교에서 한류까지 – 1600년을 잇는 한반도발 문화외교의 계보]

📚 더 깊이 알아보기

  • 2025년 나라국립박물관의 첫 X선 CT 촬영으로 명문 일부 글자가 새롭게 판독되었다
  • 칠지도는 평소 일반에 공개되지 않으며, 이소노카미 신궁의 비장 보물(神寶)로 관리된다
  • 195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고, 한국 학계는 명문 재해석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칼 한 자루에 새긴 61개의 글자가 1600년을 건너 오늘날까지 논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기록과 언어가 무기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칼은 녹슬지 않았고, 그 칼에 새긴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전 편

제3화: 근초고왕의 전성기 – 해상왕국의 시작

다음 편

제5화: 한성 함락 – 475년의 비극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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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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