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은으로 사는 충의
1월 · 별이 모이다 | 약 3분 읽기

여포의 적토가 동탁의 품 안쪽으로 건너온 다음 날 아침, 동탁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조정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둘러보았다. 칼 한 자루의 날만으로는 조정의 모든 자리가 한 번에 잡히지 아니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칼의 뒤쪽에 은(銀)과 금(金)의 다른 결이 나란히 놓여야 조정의 자리 전체가 값으로 환산된다는 것을, 동탁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자리에 사도(司徒) 왕윤(王允)이 있었다. 동탁이 왕윤의 자리를 올려 주었다. 태위(太尉)의 자리가 왕윤의 어깨 위에 얹혔다. 왕윤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러나 수염의 끝이 조용히 떨렸다. 받아 두되 마음으로는 받지 아니한 자리였다. 수염의 안쪽에 작은 한숨이 다시 묻혔다.
두 번째 자리에 문사(文士) 채옹(蔡邕)이 있었다. 채옹은 오래전 조정에서 쫓겨나, 고향의 초막에서 글을 쓰며 살던 사람이었다. 동탁이 수레를 보내어 채옹을 불렀다. 사흘 안에 채옹의 자리가 시중(侍中)까지 올라갔다. 받지 아니하면 족멸의 위협이 뒤따랐다. 받았다. 수레의 바퀴가 낙양의 거리 위에서 돌아가는 동안, 채옹의 손 안쪽에 붓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세 번째 자리에 주비(周毖)와 오경(伍瓊)이 있었다. 두 사람이 사대부(士大夫)의 이름을 모아 동탁에게 천거하였다. “주공. 이 사대부의 이름들을 지방의 태수로 보내시어 그들의 입을 값으로 열어 두시옵소서. 각 지방 태수의 자리가 주공의 은(銀)으로 묶이면, 조정 가운데에 들어올 반발의 소리가 반절은 줄어들 것이옵니다.”
동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소(袁紹)를 발해(勃海) 태수로, 한복(韓馥)을 기주(冀州) 목사로, 유대(劉岱)를 연주(兗州) 자사로, 공주(孔伷)를 예주(豫州) 자사로, 장자(張咨)를 남양(南陽) 태수로, 장막(張邈)을 진류(陳留) 태수로 보냈다. 모두 사대부의 이름값이 있는 자리였고, 모두 동탁의 은의 무게가 목 뒤쪽에 걸린 자리였다.

조정 가운데에 새로운 풍속이 자라기 시작했다. 관직이 내려오는 자리에 그 관직의 값이 같이 적혀 내려오는 풍속이었다. 관직의 이름이 값과 같이 놓여 있었고, 관직의 값이 관직의 이름보다 더 크게 읽히고 있었다. 십상시 시대의 매관매직이 어두운 구석에서 이루어졌다면, 오늘 동탁의 매관매직은 조정 한가운데의 밝은 자리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밤, 사도 왕윤의 작은 집 사랑채에 다섯 사람의 늙은 대신이 조용히 모였다. 한 잔의 술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한 마디의 큰 말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다만 다섯 사람이 한 번씩 서로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바라봄의 자리 안쪽에, 오늘 조정에 값으로 묶이지 아니한 다섯 사람의 이름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왕윤이 수염의 끝을 쓸어내렸다. 한 마디를 낮게 꺼냈다.
“여러분. 오늘 조정 가운데에 은(銀)으로 사는 충의(忠義)가 공공연히 놓이고 있습니다. 값으로 사들여진 충의는, 다른 값 앞에서 다시 팔려 갈 종류의 충의이옵니다. 다만 한 가지 — 값으로 사들여지지 아니한 충의가 이 다섯 사람의 얼굴 안쪽에 아직 남아 있사옵니다. 이 다섯의 얼굴을 잊지 맙시다. 내일 아침의 자리에서, 우리 다섯의 발자국이 각기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더라도 — 오늘 밤의 얼굴만은 서로 잊지 맙시다.”
다섯 사람이 한 번씩 고개를 깊게 숙였다. 사랑채의 등잔불이 조용히 흔들렸다. 價忠(가충, 값으로 사들여진 충)의 두 글자가 오늘 조정 가운데에 심어지는 동안, 作夜不賣(작야불매, 오늘 밤에 팔리지 아니한 자리)의 작은 씨가 이 사랑채 한가운데에 조용히 심어지고 있었다.
Book 1의 열네 번째 밤이 낙양 조정의 가운데와 왕윤의 작은 사랑채, 두 자리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價忠의 두 글자가, 관직의 이름 옆쪽에 값이 같이 적혀 내려오는 풍속의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Day 13의 적토의 값(赤兎價)의 결이, 오늘 한 결 더 나아가 조정 전체의 값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 확장의 바깥쪽에, 값으로 사들여지지 아니한 다섯 사람의 얼굴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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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두기 — 정사(正史) vs 연의(演義)
🟢 정사 『후한서』 동탁전과 왕윤전(王允傳)은 동탁(董卓)이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자리를 태위(太尉)로 올렸고, 고향에서 유배되어 있던 문사 채옹(蔡邕)을 사흘 안에 시중(侍中)까지 승진시켰음을 분명히 기록한다. 🟢 주비(周毖)와 오경(伍瓊)이 사대부의 이름을 모아 원소(袁紹)를 발해 태수로, 한복(韓馥)을 기주 목사로, 유대(劉岱)를 연주 자사로, 공주(孔伷)를 예주 자사로, 장자(張咨)를 남양 태수로, 장막(張邈)을 진류 태수로 보낸 일의 구체도 후한서 동탁전의 기록이다. 🟡 배송지(裴松之) 주의 파편 어디에도 왕윤의 작은 사랑채 다섯 사람의 밤의 구체 장면은 전하지 아니한다. 🟠 『삼국지연의』 4회는 동탁의 은과 금의 매관매직을 극화하되, 사대부 분산 배치의 정사의 구체를 압축하여 보여 준다. 본편은 이 각색의 틀을 그대로 따르되, 왕윤의 사랑채에 다섯 사람의 자리를 추가하였다. 🔴 본편의 “價忠(가충)”의 2자 창작과 “作夜不賣(작야불매)”의 4자 보조 창작, 그리고 값으로 사들여진 충의가 다른 값 앞에서 다시 팔릴 종류라는 거울 해석은 본편의 재구성이다. 한자 창작의 계보가 오늘 열네 번째 자리에 도달하였다.
“✒️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관직의 이름 옆에 값이 같이 적혀 내려오는 자리가 있지요. 값으로 사들여진 충의는, 다른 값 앞에서 다시 팔려 갈 종류의 충의이옵니다. 다만 그 풍속의 바깥쪽에, 값으로 사들여지지 아니한 다섯 사람의 얼굴이 조용히 남는 저녁이 있사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자리에도, 값으로 환산되지 아니하는 얼굴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남김의 결을 한 번 더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그 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서기 190년 봄, 로마의 코모두스의 근위대장 클레안데르(Cleander)의 집무실 한가운데에서, 한 해의 집정관(consul)의 자리 스물다섯이 한꺼번에 값으로 팔렸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의 이름 옆에 금(aurum)의 무게가 같이 적혀 내려오는 풍속이 그 봄의 로마에 공공연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지요. 라틴어 구절 “venalis fides(팔리는 충의)”가 그 봄 집무실 기록의 모서리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동쪽 끝 낙양의 조정 가운데에 價忠의 두 글자가 심어지던 그 밤, 서쪽 끝 집무실의 가운데에도 같은 방식의 풍속이 자리잡고 있었지요.
📅 내일 Day 15: 두 번 아버지를 바꾼 자
“여포의 허리에 적토의 고삐가 묶인 뒤의 저녁, 조정의 사람들이 여포를 조용히 한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번씩, 아비를 두 번 바꾼 사람.” — 연삼흠 박사
평역 — 연삼흠 평역가 · Sam H. Yeon, Ph.D. · 延三欽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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