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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5일 – 국세조사원, 경성 골목을 누비다…스위스에선 로카르노 평화회담 개막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5일 - 국세조사원, 경성 골목을 누비다…스위스에선 로카르노 평화회담 개막

기사입력 기사번호 5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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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오전 10시 10분
1925년 10월 5일 월요일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5년 10월 5일 월요일, 경성 거리에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다. 나흘 전 밤 열두 시를 기해 실시된 첫 국세조사, 그 뒷정리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조사표를 든 사람들이 골목골목을 오갔다. 같은 날 저 멀리 스위스 로카르노에서는 유럽 각국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성은 그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한 채, 여느 월요일처럼 하루를 열었다.

그날의 경성

지난 10월 1일 자정을 기해 조선총독부는 처음으로 간이국세조사를 실시했다. 원래는 1920년에 치르려 했으나 삼일운동 여파로 미뤄졌던 조사였다. 닷새가 지난 이날도 경성 곳곳에서는 조사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빠뜨린 조사표를 챙기고 있었다. 총독부는 이번 조사로 조선 전체 인구를 처음으로 촘촘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간도에서는 지난 6월 맺어진 미쓰야협정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었다.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붙잡으면 일본 영사관에 넘기고 상금을 주기로 한 이 비밀 약정 때문에, 만주 곳곳에서 항일 인사들이 잇달아 끌려갔다. 용정을 비롯한 간도 한인 사회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경성 시내에서는 여름 을축년 대홍수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채였다. 조선수해이재자구제회를 통한 모금과 구호가 가을에도 이어졌고, 신문사들도 앞장서 이재민을 도왔다.

※ 이날 경성의 물가와 날씨에 관한 확인된 기록은 찾지 못했다. 다만 10월 초순, 조선은 늦더위가 물러가고 찬 기운이 스며드는 초가을 문턱에 서 있었다.

경성과 한반도

상해에서는 임시정부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지난 7월 7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제가 사라지고 국무령제가 들어섰다. 9월 24일에는 이상룡이 초대 국무령으로 뽑혔다. 하지만 내각을 구성할 인재를 모으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한인 사회에 전해졌다. 서간도에서 오래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그였지만, 파벌 다툼이 심한 임시정부를 추스르기엔 벅찼다.

국내에서는 국세조사를 계기로 조선 인구의 실제 규모가 처음 드러날 참이었다. 총독부는 이 통계를 식민 통치와 자원 동원의 기초 자료로 삼으려 했다. 반면 조선인 사회 일각에서는 이 조사가 결국 세금과 노무 동원을 위한 밑작업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같은 시기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맹휴학이 부쩍 늘어, 이해 한 해에만 마흔여덟 건에 이르렀다.

그날의 세계

이날 스위스 로카르노에서는 유럽 각국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독일의 슈트레제만, 프랑스의 브리앙, 영국의 오스틴 체임벌린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뒤 흔들리던 유럽의 국경 문제를 풀어보려 했다. 이 회담은 열엿새 동안 이어지며, 훗날 로카르노 조약으로 맺어진다. 세 사람은 이 공로로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중국에서는 절강 지역 군벌 쑨촨팡이 봉천파에 맞서 군사를 일으킬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상해를 둘러싼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긴박해졌다. 세계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평화를 모색하는 나라와, 여전히 총성이 끊이지 않는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경성 24시

아침나절, 조사원 한 사람이 조사표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종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무보수로 나선 이 일에는 관청 직원과 마을 유지들이 동원되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식구 수와 나이, 하는 일을 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집도 있었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도 있었다.

한낮이 되자 거리에는 신문팔이 소년들의 목소리가 퍼졌다. 조사가 얼추 끝나간다는 소식과 함께, 먼 유럽 소식도 함께 실려 나왔다. 해거름 무렵 조사원은 하루치 조사표를 정리해 관청에 넘겼다. 다리는 뻐근했지만, 처음으로 조선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보는 일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100년의 거울

100년 전 그날, 조선의 인구는 처음으로 숫자로 셈해지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행정자료만으로 인구를 실시간에 가깝게 파악한다. 조사원이 일일이 집집을 찾아다니던 수고는 이제 옛일이 되었다.

항목 1925년 2025년
조사 방식 조사원 방문, 손으로 기록 행정등록자료, 온라인 등록
조사 인력 무보수 동원 인력 통계청 상시 인력
발표 총인구 약 1,952만 명(공식 집계) 약 5천만 명대

내일 10월 6일에도 경성 골목마다 조사원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로카르노에서는 회담이 계속된다. 100년 전 오늘, 내일 아침 10시 10분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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