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7] 강동의 여섯 군
2월 · 주인 없는 칼 | 약 3분 읽기

신정(神亭)의 일합이 강동의 하늘 아래에 놓인 다음 날 아침, 손책의 도포가 여섯 군(六郡)의 문 앞을 차례로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강동의 여섯 군은 단양(丹陽)·오군(吳郡)·회계(會稽)·예장(豫章)·여강(廬江)·구강(九江)이었다. 군마다 한 장수의 이름 아래에 놓여 있었다. 단양에는 유요(劉繇), 오군에는 엄백호(嚴白虎), 회계에는 왕랑(王朗), 예장에는 화흠(華歆), 여강에는 유훈(劉勳), 구강에는 원술(袁術)의 그림자가 덮여 있었다.
손책이 먼저 단양의 유요를 공(攻)하였다. 우저(牛渚)의 창고를 열어 병기와 곡식을 취하였다. 유요가 남으로 달아나 예장으로 옮겨 갔다. 단양의 문 위에 손책의 이름이 처음으로 걸렸다.
다음으로 오군의 엄백호를 공하였다. 엄백호가 몸집은 크나 지략이 없어, 손책의 칼 아래에 쉽게 무릎을 꿇었다. 엄백호의 동생 엄여(嚴輿)가 말을 달려 화친(和親)을 청하러 나왔다. 엄여의 말 위에서 한 칼이 번쩍였다. 손책의 손이 한 순간에 그 칼을 되받아, 엄여의 목이 말 아래에 떨어졌다. 엄백호가 그 소식을 듣고 성을 버리고 여항(餘杭) 쪽으로 달아났다. 오군의 문 위에 손책의 이름이 두 번째로 걸렸다.
회계의 왕랑이 성문 앞에 진을 쳤다. 왕랑의 막하 우번(虞翻)이 낮은 간(諫)을 올렸다. “주공. 손책의 세(勢)가 이미 커지고 있사옵니다. 싸우지 마시고 항(降)하시옵소서.” 왕랑이 듣지 아니하였다. 두 군이 들판 위에서 맞붙었다. 며칠의 싸움 뒤에 왕랑의 군이 무너지고, 왕랑이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우번이 손책의 앞에 스스로 나와 귀부(歸附)하였다. 회계의 문 위에 손책의 이름이 세 번째로 걸렸다.

예장의 화흠은 칼을 들지 아니하였다. 손책의 군이 예장의 문 앞에 다다르자, 화흠이 문을 열고 스스로 나와 인(印)을 바쳤다. 예장의 문 위에 손책의 이름이 네 번째로 걸렸다. 손책이 화흠을 극진히 대(待)하였다. 화흠의 학(學)과 덕(德)이 강동 조정의 기둥이 되었다.
그 사이 여강의 유훈과 구강의 원술은 손책을 시기(猜)하며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손책이 두 군을 먼 뒤로 밀어 두었다. 이 두 군은 훗날 한 칼 아래에 함께 놓일 것이었다.
손책이 오군의 성루 위에 올라 강동의 하늘 쪽을 바라보았다. 주유가 곁에 섰다. 장소와 장굉이 뒤에 섰다. 태사자가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 섰다. 손책이 낮게 말하였다. “공근. 오늘 네 군의 이름이 우리 쪽에 걸렸네. 남은 두 군은 조금 뒤의 일이 되겠지. 강동 여섯 군의 첫 지도가 오늘 한 폭에 담겨 있네.”
주유가 낮게 웃었다. “형님. 이 지도 위에 오늘 담긴 네 이름의 옆에, 언젠가 더 큰 이름이 걸릴 것이옵니다. 형주(荊州)·양자강(揚子江)의 북쪽·허도(許都)의 그늘까지, 이 지도의 끝선이 옮겨 가겠지요.” 손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청년의 웃음 아래에 강동의 여섯 군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저녁 오군의 성문 아래에서 한 늙은 어부가 자루 그물을 지고 들어왔다. 그물 안쪽에 큰 잉어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손책이 그 잉어를 어부에게 되돌려 주고 동전 한 자루를 올려 놓았다. 어부가 낮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손 장군의 이름이 강동의 작은 문 안쪽까지 걸리게 될 것이옵니다.” 손책이 웃으며 어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Book 2의 쉰일곱 번째 밤이 강동 네 군의 문 위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江東六(강동륙, 강동 여섯 군)의 세 글자가, 네 군의 이름과 두 군의 그림자와 어부의 낮은 인사가 한 자리에 놓인 한 호흡의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Day 56의 霸王袍의 자락이 오늘 밤 네 군의 문 위에 처음으로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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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젊은 손이 여섯 군(六郡)의 문을 차례로 지나가는 계절이 있지요. 네 군의 문 위에 한 이름이 걸리고, 두 군의 그림자가 조금 뒤로 밀려 두어지는 자리이옵니다. 오늘 당신의 계절의 지도 위에도, 걸린 네 이름과 뒤로 밀린 두 이름이 혹시 함께 놓여 있지는 아니한지요. 그 놓임의 결을 한 결 더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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