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3] 허도의 첫 아침
2월 · 주인 없는 칼 | 약 3분 읽기

헌제의 어가가 허창에 도달한 다음 날 아침, 조정의 첫 조회(朝會)가 허도의 정전(正殿) 위에서 열렸다. 낙양의 잿더미를 뒤로 남기고 옮겨 온 천자의 어좌가, 허도의 새 기둥 사이에 놓여 있었다.
정전의 계단 아래에는 조조의 갑주가 가지런히 서 있었다. 조조가 대장군(大將軍)의 자리에 나아가 천자의 옆에 섰다. 좌우로는 순욱(荀彧)·정욱(程昱)·곽가(郭嘉)·순유(荀攸) 네 모사가 낮은 고개를 차례로 숙이고 있었다. 백관(百官)이 계단 아래에 좌우로 늘어섰다.
헌제가 옥좌 위에서 낮은 숨을 고르게 삼켰다. 한 해가 가까이 길 위에 떠다녔던 황제의 몸이, 정전의 고요 안쪽에 처음으로 놓이는 아침이었다. 시종의 손이 한 장의 조서를 받들어 어좌 앞에 올렸다. 조서의 인의 자리에 옥새가 눌려 있었다. 어젯밤 순욱이 적어 둔 첫 줄의 조서가, 새벽의 호흡 뒤에 천자의 손을 거쳐 내려지는 아침이었다.
“봉상 조 맹덕을 대장군(大將軍)으로 봉(封)하고, 무평후(武平侯)의 작(爵)을 내린다.” 조조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숙인 그의 등 뒤로 백관이 함께 낮게 허리를 굽혔다. 허도의 첫 조회의 첫 조서가, 그렇게 한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조서의 두 번째 줄이 이어졌다. “순욱을 시중(侍中)·상서령(尙書令)으로 삼는다.” 순욱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어젯밤 스스로의 붓이 적어 둔 첫 줄이, 오늘 아침 자기 몸 위에 제일 먼저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계책의 첫 줄을 적은 사람은, 그 계책의 첫 무게를 가장 먼저 스스로의 어깨에 받는다. 고요 속의 한 결의 깨달음이 순욱의 가슴 안쪽을 지나갔다.

조서가 계속 이어졌다. 조홍·조인·하후돈·하후연·악진·이전·우금·서황 여덟 장수가 각각 직의 이름을 받았다. 정욱이 동평상(東平相)으로, 곽가가 사공좨주(司空祭酒)로, 순유가 군사(軍師)로, 유엽이 사공연조(司空掾曹)로 올랐다. 동소(董昭)는 낙양령(洛陽令)으로, 만총(滿寵)은 허도령(許都令)으로 세워졌다. 한 명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 사람의 고개가 낮게 숙여졌다. 허도의 정전이 조조의 이름의 그늘 아래에 조용히 덮이고 있었다.
조회가 끝난 뒤, 조조가 순욱의 손을 잡았다. “문약. 어젯밤 자네가 적은 첫 줄이, 오늘 아침 이처럼 내려왔네. 이제부터의 조정의 긴 날들을, 자네가 앞에서 열어 가 주게.” 순욱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허도의 첫 아침의 모서리가,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안쪽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한편 허도의 성문 바깥쪽에서는, 낙양에서 어가를 호위해 왔던 동승(董承)의 칼이 말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공(功)이 조서의 어느 줄에도 불리지 않은 아침이었다. 어가의 바퀴를 팔백 리 굴렸던 스스로의 이름이, 허도의 첫 조회의 어느 자리에도 놓이지 않은 것이 동승의 가슴 안쪽에 조용히 자리했다. 동승의 호흡의 체증이, 먼 훗날 건네질 한 장의 옷자락의 첫 실이 되어 있었다.
Book 2의 쉰세 번째 아침이 허도의 정전 위에서 조용히 열려 가고 있었다. 許都朝(허도조, 허도의 첫 조회)의 세 글자가, 황제의 새 어좌와 대장군의 첫 절과 늙은 무장의 말없는 칼이 한 자리에 놓인 호흡의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Day 52의 奉令一의 첫 줄이 오늘 아침 옥새의 인의 자리 위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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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한 사람이 적어 둔 첫 줄이,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의 어깨 위에 가장 먼저 내려앉는 자리가 있지요. 조정의 조서의 첫 줄을 쓴 사람은, 그 조정의 첫 무게를 가장 먼저 스스로의 몸 위에 받는 사람이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어깨 위에도, 어젯밤 당신의 붓이 적은 첫 줄이 혹시 내려와 있지는 아니한지요. 그 내려앉음의 결을 한 번 더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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