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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정숙

[디지털치유론] 가짜 절벽 앞에서 진짜 떨림을 배우다, VR과 통합치유

기사입력 기사번호 53859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오늘은 협회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가짜 절벽 앞에 서는 게, 정말 마음에 도움이 될까요?” 지난달 KIHA 자가돌봄 워크숍에서 한 회원분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명확한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질문 자체가 우리 시대가 통합치유를 어떻게 다시 배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그날 워크숍에는 높은 곳에 서면 유독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엘리베이터 유리창 너머 풍경조차 피하게 된다고 하셨죠. 저는 그분께 실제 높은 곳에 함께 가자는 말 대신, 우선 가상의 공간에서 아주 조금씩 시선을 두는 연습부터 해보자고 권했습니다. 이 접근의 배경이 되는 원리를 책에는 이렇게 정리해두었습니다.

전통적인 노출 접근은 함께하는 이가 당사자와 직접 공포 상황에 가야 했습니다. 비행이 두려운 분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이 두려운 분과 함께 건물에 올라야 했습니다. VR은 이 모든 과정을 조용한 방 안에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도구가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의료 행위의 대체물이 아니라, 일상의 균형을 조금씩 되찾는 자가돌봄의 확장판이라고 설명드립니다. 헤드셋 하나로 가상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보고, 가상의 버스 정류장에 서보는 연습은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딜 만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아주 소박한 질문에 답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KIHA 회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대한 변화보다 이런 작은 반복이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데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통합치유의 관점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임장감’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단순히 화면이 선명하고 움직임이 부드럽다고 해서 그 공간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책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짚습니다.

디지털치유론 보조 이미지

몰입은 시야각과 해상도, 지연시간처럼 측정 가능한 기술적 특성입니다. 반면 임장감은 “지금 내가 그 공간 안에 있다”는 주관적 느낌으로, 임장감이 있어야 두려움이 유발되지만 임장감만으로 마음이 다스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협회 활동 중 만난 여러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도구를 손에 쥐여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그 옆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주는 손길이 있는지가 결과를 가릅니다. KIHA에서 저희가 늘 강조하는 것도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감싸는 관계와 태도입니다. 가상의 공간이라 해도 그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이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작은 용기가 자라나는 것을 여러 차례 지켜봤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신경과학자 리바(Riva)가 말한 “가상의 세계도 뇌가 몸을 예측하는 방식과 같은 원리로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을 협회 강의에서 자주 인용합니다. 우리 뇌는 다음 순간의 감각을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과 실제가 맞아떨어질 때 그 공간을 현실처럼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기술과 마음이 만나는 가장 인간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가상현실도 우리 몸과 마음이 세상을 이해해온 오래된 방식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겸손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도구에 대한 격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헤드셋 가격이 예전보다 크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러운 물건입니다. 저는 협회 활동을 하며 세대에 따라 이 도구를 대하는 온도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젊은 세대는 게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어르신들께는 헤드셋을 쓰는 것 자체가 큰 심리적 문턱입니다. K-치유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는 이 문턱을 낮추는 일, 즉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다가가는 자세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마음이 자꾸 움츠러드는 상황이 있다면, 그 상황을 아주 작게 쪼개어 안전한 공간에서부터 다시 만나보는 연습을 시작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 사진 속 풍경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 Chapter 3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임장감과 몰입의 구분부터, 가상현실이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다독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자세한 목차를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https://wiabook.com/books/digital-therapeutics-leve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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