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달 협회 워크숍에서 한 회원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행기만 생각해도 손바닥에 땀이 나요. 그런데 헤드셋을 쓰고 가상의 활주로에 서 있었더니, 신기하게도 그 순간엔 숨이 덜 막히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협회 활동을 하며 ‘불안’이라는 감정을 유난히 자주 마주합니다. 높은 곳이 두려운 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힘든 분, 특정 소리나 장면만 떠올려도 심장이 빨라지는 분들이 세미나마다 조용히 손을 듭니다. 이번에 다시 펼쳐본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 3장에서는 이런 불안의 뿌리를 ‘학습된 반응’으로 설명합니다.
공포 소거(Fear Extinction)는 조건 자극을 무조건 자극 없이 반복 제시하여 공포 반응을 약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중요한 점은, 소거가 원래 학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억제 학습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우리가 흔히 “그 기억을 잊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괜찮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나씩 덧대는 일이라는 뜻이니까요. 이건 통합치유 현장에서 제가 늘 강조하는 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없앨 수 없지만, 그 위에 새로운 하루를 쌓을 수는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 특히 VR이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역할을 합니다. 책에서는 높은 곳이 두려운 분이 2층 발코니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더 높은 가상 공간에 머무르며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실제로 산이나 옥상에 매번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헤드셋 안에서는 오늘 5분, 내일 10분씩 자기 속도에 맞춰 반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자기 돌봄의 리허설 공간’이라고 즐겨 부릅니다. 진짜 상황을 마주하기 전에,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먼저 연습해보는 것이죠.
물론 이런 프로그램은 전문가의 동반 없이 혼자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협회 회원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디지털 도구가 문턱을 낮춰준다는 실감을 자주 듣습니다. “직접 가는 건 엄두가 안 났는데, 화면 속에서라도 해보니 다음 걸음이 덜 무서워졌다”는 말씀들입니다. 책에도 비슷한 관찰이 담겨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VR 노출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율(3%)이 실제 상황 노출 거부율(27%)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로 가는 것은 못하겠지만 VR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우리 협회가 지향하는 ‘통합치유’의 방향과 겹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합치유는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을 정답으로 두지 않습니다. 명상, 호흡, 대화,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 도구까지 — 각자에게 맞는 문을 찾아주는 것이 협회장으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문턱이 낮은 문을 하나 더 만드는 것, VR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미나에서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두려운 상황을 몇 계단으로 나눠본 적이 있나요?” 책에 나오는 공포 계층처럼, 큰 두려움을 한 번에 마주하기보다 아주 작은 단계부터 쌓아가는 방식은 꼭 디지털 도구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 보기, 영상 한 편 보기, 그 장소 근처까지만 가보기 — 이런 작은 단계들이 모여 마음의 근육을 만든다는 걸, 저는 협회 활동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다만 세대에 따라 이 도구를 받아들이는 온도차는 분명 존재합니다. 젊은 세대는 헤드셋 사용에 익숙해 거부감이 적은 반면, 중장년층 회원분들은 “기계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안다는 거냐”며 낯설어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협회 워크숍에서 늘 기술보다 사람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도구는 거들 뿐, 결국 자기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의 통합치유 문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신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되,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의 속도와 존엄을 두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속에 몇 단계쯤 되는 ‘나만의 계단’을 갖고 계신가요? 오늘 하루, 아주 작은 한 걸음부터 다시 세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협회 활동을 하며 그 작은 계단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을 바꾼다는 걸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 Chapter 3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살펴봐 주세요. https://wiabook.com/books/digital-therapeutics-leve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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