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를 18년째 운영해 온 지승주 작가가 임상 현장의 경험을 어린이 그림책으로 옮겼다. ‘토리의 남산타워 나들이’는 난청 소년 토리가 소리요정 루루와 함께 남산의 밤 풍경 속 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진료실에서 만나 온 아이들의 얼굴이 그림책 한 권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장애 이해를 다루는 그림책은 최근 몇 년 새 국내외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다름을 설명하는 방식이 계몽에서 공감으로 옮겨가는 흐름 속에서, 이 책은 ‘들리지 않음’을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감각 경험으로 그린다. 소리요정이라는 장치를 통해 증폭과 연결이라는 보청기의 기능을 동화적으로 풀어낸 점이 눈에 띈다. 청각 재활 전문가가 직접 쓴 텍스트라는 점에서, 임상적 정확성과 동화적 상상력이 함께 실려 있다.

저자 지승주는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 대표로, 18년 이상 청각 재활 임상 경험을 쌓은 청각 재활 전문가이자 의료 칼럼니스트다. 위아 언론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코리안투데이 종로·중구·송파지부장,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한다.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 이사, 위아 평생교육원 전문교수, 한국AI작가협회 이사를 겸하고 있고,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인공지능융합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음 변별력이 낮은 난청인을 위한 연속 청능 재활 시스템(CSR, Continuous Speech Rehabilitation)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이력도 있다. ‘소리의 선물’, ‘마법같은 순간들’, ‘소리의 재발견’ 시리즈 등 청각을 주제로 한 저작과 AI 활용서를 다수 펴냈고, 이번 책은 그 연장선에서 나온 첫 어린이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남산의 야경에서 출발한다. 사랑의 자물쇠가 걸린 난간, 바람을 타고 오는 사람들의 대화, 도시 곳곳에서 울리는 크고 작은 소리들을 저자는 ‘세상의 음악’으로 바꿔 썼다. 루루는 남산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소리를 증폭해 토리에게 전달하는 매개로 그려진다. 토리가 루루의 도움으로 이 소리를 하나씩 만나는 과정은 보청기 적응기의 은유이자, 가족이 함께 통과하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사랑의 자물쇠 앞에서 소망을 비는 가족의 장면은 청각 재활이 아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구성은 ‘설레는 출발, 소리 여행의 시작’부터 ‘자연 속에서 찾은 맑은 노래’, ‘하늘을 날아 우주 속으로’, ‘용기로 열어낸 신비로운 세상’, ‘반짝이는 밤하늘, 우리들의 소망’까지 다섯 장으로 이어진다. 앞뒤로 작가 소개와 등장인물 소개, 작가의 말을 배치해 독자가 이야기 밖 맥락도 함께 읽도록 했다. 수채화풍 삽화는 JIAN이 그렸으며, 남산의 밤 풍경을 포근한 색감으로 담아냈다.
미리보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토리, 루루랑 같이 신기한 소리 들을 준비 다 되었니? 엄마 손 잡고 출발하자!’ 가족이 건네는 이 한마디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압축한다. 뒤이어 토리가 ‘강물이 철썩철썩, 찰방찰방하면서 노래를 해요! 루루가 아주 선명하게 들려줬어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루루가 증폭해 전하는 소리의 질감을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큰 소리도 다 들리게 해준다는 루루의 약속과, 씩씩하게 다녀오겠다는 토리의 대답 사이에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아이의 용기가 담겨 있다.
청각장애나 보청기 착용에 익숙하지 않은 유아·초등 저학년과 그 가족이 우선 대상이다. 특수교육이나 장애이해교육 현장에서 보조 교재로 활용할 여지도 있고, 보청기를 새로 착용한 아이가 적응기를 지나는 가정에서는 공감의 매개로 읽힐 수 있다. 청각 재활 전문가가 임상에서 쌓은 관찰을 그대로 텍스트에 녹였다는 점은, 비슷한 상황의 가족에게 실질적인 위로로 다가갈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그림책이 남기는 질문은 하나다. 다르게 듣는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소리로 다가오는가. 다음 관전 포인트는 저자가 예고한 ‘소리의 재발견’ 시리즈와 이 그림책이 앞으로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CSR 재활 시스템을 개발해 온 저자가 임상 현장의 언어를 어린이 서사로 옮기는 다음 작업을 어디까지 확장할지다. ‘토리의 남산타워 나들이’는 정가 15,000원, EPUB3·PDF 전자책으로 2026년 7월 12일 WIA Book에서 나왔으며,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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