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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아이가 되묻는 존재의 자격, 『카논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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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이름을 갖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세계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박선영 장편소설 『카논의 아이』는 이 질문 하나로 판타지 성장소설의 좌표를 새로 그린다. 표식 없는 몸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조차 허락받지 못한 소년 루의 서사는, 차별이 늘 결핍을 벌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장애를 결핍이 아니라 계급으로 설정하는 상상력은 최근 국내외 청소년 판타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다. 능력이나 혈통 대신 표식 없음을 차별의 근거로 삼은 설정은 독자에게 익숙한 차별 구조를 낯선 각도에서 되짚게 만든다. 세계관 소설이 흔히 강자와 약자를 능력치로 가르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아무 표식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배제의 이유로 세운다. 결핍이 아니라 결핍의 부재가 낙인이 되는 역설은, 현실의 차별이 종종 눈에 보이는 차이가 아니라 다르다고 규정하는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겹쳐 읽게 한다. 그 전복적 설정이 『카논의 아이』를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자격이 되는 사회를 묻는 이야기로 만든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소수자 서사가 판타지의 옷을 입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작품은 그 흐름에 구체적인 질문 하나를 보탠다.

저자 박선영은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을 오랫동안 작품에 담아왔다. 『카논의 아이』는 차별받는 존재가 자신의 이름과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공존의 의미를 전하려 한 작품이다. 교실에서 마주친 아이들의 얼굴이 루라는 인물 안에 겹쳐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이 관념이 아니라 현장의 관찰에서 출발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물을 다루는 손길에서 교육 현장 특유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소설은 아무 표식도 없다는 이유로 이름조차 등록되지 못한 소년 루를 중심에 놓는다. 미완의 이름으로 시작해 표식 없는 아이, 노을 앞의 루, 달빛이 숨긴 아이를 거쳐 다른 소리를 듣는 아이들, 오두막에서로 이어지는 아홉 개 장은 루가 자신을 부정하는 세계에서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는다. 후반부 나를 찾아나서다, 떨어져 내리는 바닥, 추락은 그 여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각 장의 제목만 훑어도 빛과 어둠, 소리와 침묵이 교차하는 구성이 드러나며, 인물 소개가 본문 앞에 별도로 배치된 점도 여러 인물의 시선이 교차하는 구조를 뒷받침한다.

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구성은 장애 인식과 다양성을 주제로 한 성장소설을 찾는 청소년 독자, 그리고 차별과 인권 문제를 다루는 감성 판타지를 선호하는 독자층에 맞춤한 서사다. 루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라는 장이 암시하듯,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어긋나 있는 인물들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미리보기가 던지는 질문,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이름조차 등록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물음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루는 세상이 정한 기준 밖에서 살아가지만 끝내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서술이 그 답을 예고하며, 이는 이 작품이 피해자의 서사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루가 세상이 정한 기준 밖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른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 서로를 통해 무엇을 배우는지는 본문에서 직접 확인할 대목이다. 노을 앞의 루와 달빛이 숨긴 아이 두 장이 빛의 이미지를 어떻게 대비시키는지, 그리고 9장 추락에서 루가 마주하는 선택이 이야기의 결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표식 없는 아이라는 장 제목이 오두막에서라는 은신의 장소를 지나 나를 찾아나서다로 이어지는 동선 역시, 루가 배제된 자리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궤적을 따라가게 한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면 이 소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카논의 아이』는 WIA Book에서 2026년 8월 1일 전자책으로 출간되며 EPUB2, EPUB3, PDF 형식으로 서비스된다. 판형은 A5, 정가는 6,000원이다.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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