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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고구려

[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15화: 안시성, 88일간 무너지지 않은 성

기사입력 기사번호 54103
高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고구려 편

제15화: 안시성 전투 – 88일간의 항전

이름조차 역사에 남기지 못한 한 성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한 황제의 친정군을 두 달 넘게 묶어두었다.

645년 여름, 당 태종 이세민은 스스로 갑옷을 입고 20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어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수나라가 세 번의 침공에서 실패한 그 길을, 이번에는 ‘천하를 통일한 명군’이 직접 걷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요동성을 비롯한 여러 성이 잇달아 무너지며 당군의 승세는 거침없어 보였다.

그러나 요동반도의 작은 성, 안시성 앞에서 그 진격은 멈춰 섰다. 이름조차 정사에 남기지 못한 성주 한 사람과
그를 따른 백성들은 무엇을 믿고 세계 최강의 군대 앞에서 성문을 걸어 잠갔을까.

◆ 시대의 풍경

618년 건국된 당은 태종 대에 이르러 돌궐을 굴복시키고 ‘천가한(天可汗)’으로 불릴 만큼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런 당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걸림돌이 요동의 고구려였다. 641년 당의 사신 진대덕이
국경을 정탐하고 돌아간 뒤, 642년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정변으로 실권을 장악하자 당은 이를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645년 4월, 당군은 육로 6만과 수군 4만여를 동원해 요동으로 진격했다.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이
차례로 함락되고 백암성마저 항복하면서 고구려의 방어선은 급속히 붕괴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6월,
당군은 요동반도 한복판의 안시성 앞에서 진격을 멈춰야 했다.

“그 성주는 가히 비범한 호걸이라 하겠다. 다만 사서에 그 성명조차 전하지를 않으니 심히 애석하도다.”

– 출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김부식의 사론(史論)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 태종의 ‘정관지치(貞觀之治)’가 정점에 달한 시기. 그러나 안시성 참패는 그의 통치 기간 중 유일한 대외 원정 실패로 기록된다.

🗿 유럽/중동

비잔틴 제국은 헤라클리우스 황제 사후 혼란기, 신흥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이집트를 잠식하던 격변의 시대였다.

🌏 기타 지역

일본은 645년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으로 고대 율령국가 체제를 정비하던 시기, 동아시아 전역이 재편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안시성 공방전 배치도 (645년) 安市城 고구려 수비군 (성주 지휘) 토산(土山) – 당군 축조 당 태종 본진 (20만) 고연수·고혜진 15만 지원군 ※ 축적·위치는 개념도이며 실측 지형과 다를 수 있음

[이미지: 안시성 포위전 배치 개념도 – 성벽, 토산, 당군 본진과 고구려 지원군의 위치]

⚔️ 그날의 현장

“성벽 위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당군은 두 달 넘게 성 동남쪽에 산더미 같은 토산을 쌓아 올렸다.
수십만 인력이 밤낮으로 흙을 져 나른 끝에 토산이 성벽보다 높아지던 그 순간, 거대한 흙더미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려 성벽을 덮쳤다.”

“그러나 무너진 것은 성이 아니라 당군의 승기였다. 고구려 병사들이 무너진 틈으로 쏟아져 나와 토산을
그대로 점령해버렸다. 태종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을 향해 성 위에서 화살이 겨눠졌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안시성 전투의 전개는 크게 세 국면으로 나뉜다. 먼저 645년 6월, 고구려는 북부 욕살 고연수와 남부 욕살
고혜진이 이끄는 15만 지원군을 파견했으나 당군의 유인 전술에 걸려 안시성 동남쪽 산 위에서 포위당하고
결국 항복했다. 지원군 붕괴는 안시성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그럼에도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두 번째 국면은 두 달간 이어진 정면 공방전이다. 당군은 충차와 포차, 운제(구름사다리) 등 당대 최고
수준의 공성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성벽은 뚫리지 않았다. 결국 태종은 마지막 승부수로 성보다 높은 인공
토산을 쌓기로 했다. 수십일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성 직전, 토산 일부가 무너지며 오히려 고구려군에게
점령당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항전으로 다져진 수비군의 순발력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세 번째 국면은 퇴각이다. 요동의 조기 혹한과 군량 고갈, 15만 지원군을 흡수하고도 넘지 못한 작은 성
앞에서의 소모전은 당군의 사기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9월 18일, 당 태종은 포위를 풀고 철군을 명령했다.
《구당서》·《신당서》는 이 원정을 “성공하지 못했다”고 짧게 기록할 뿐이지만, 그 침묵 자체가 당 조정이
이 패배를 얼마나 뼈아프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시대

645년 (보장왕 4년)

핵심 인물

안시성주(전승 속 양만춘), 당 태종 이세민

핵심 사건

88일 항전과 당군 철수

영향

고구려 존속 연장, 당의 대외팽창 좌절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양만춘’이라는 성주 이름은 조선 중기 이후 야사·소설에서 등장한 것으로, 당대 1차 사료인 《삼국사기》·《구당서》 어디에도 없다. 다수 연구자는 실명 미상의 성주를 그대로 인정하며,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도 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하이청(海城) 인근으로 추정할 뿐 확정하지 않는다.

대안적 견해

일부 연구는 20만이라는 당군 병력 수치가 정치적 과장이며 실제 동원 규모는 그보다 작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한 항전의 주역을 성주 개인의 영웅담보다 오랜 산성 방어 경험이 축적된 고구려 축성 체계와 백성 조직력의 산물로 보는 해석도 힘을 얻고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안시성 전투는 중앙의 대군만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왕도, 연개소문의
중앙군도 아닌 이름 없는 지역 성주와 그를 따른 주민들이 국가의 존망을 갈랐다. 이는 오늘날 재난이나
안보 위기 앞에서 지역 공동체의 자체 대응력과 현장 리더십이 왜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또한 압도적 전력 차이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시민적 저항 정신은 현대 한국인의 위기 대응 서사와
맞닿아 있다. 국난 앞에서 이름을 남기지 못한 다수가 함께 버텨낸 역사는, 특정 영웅 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결집이 결국 결과를 만든다는 교훈을 준다.

구분 고구려 시대 현재
정치/안보 중앙 왕권과 지역 성주의 자율적 방어 체계가 병행 중앙정부 대응과 지자체·현장 대응이 함께 작동하는 재난·안보 체계
군사/외교 산성 네트워크를 통한 지구전·소모전 전략 비대칭 억지력과 동맹 기반의 방위 전략
문화/정신 이름 없는 백성도 국가를 지킨다는 상무(尙武) 정신 시민 각자가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자발적 저항 정신

88일의 항전, 오늘의 리더십으로 645년 안시성 88일 오늘날 지역 리더십 “이름 없는 성주”에서 “이름 없는 시민”으로 지역 공동체의 자체 방어력 · 현장 리더십 · 공동체 결집

[이미지: 안시성의 저항 정신이 오늘날 지역 방위·시민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개념도]

📚 더 깊이 알아보기

  • 중국 랴오닝성 하이청 잉청쯔(營城子) 유적이 안시성 옛터로 유력하게 거론되며, 성벽 흔적과 방어 시설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 조선 후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실학자들의 기록에서 양만춘 설화가 민간에 뿌리내린 정황이 확인된다.
  • 이후 이야기는 영화 ‘안시성(2018)’ 등 대중 콘텐츠로도 재현되었으나, 실제 사료의 여백을 상상으로 채운 부분이 많아 사료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천하를 통일한 황제도 넘지 못한 성벽은, 화려한 장수의 검이 아니라 이름 없는 백성들의 88일이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역사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전 편

제14화: 영류왕과 연개소문 – 권력의 교체

다음 편

제16화: 당의 재침공 – 끝나지 않는 전쟁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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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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