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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정숙

[디지털치유론] 효과가 좋으면 다 쓰는 줄 알았습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4393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 협회 사무실 창밖으로 장마가 그친 뒤의 볕이 유난히 환했습니다. 상담 자원봉사로 오래 함께해온 한 회원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회장님, 요즘 나오는 그 불면증 앱들 말이에요. 연구에서 효과가 있다고 나오면, 그냥 병원 가서 받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대답 대신 잠시 창밖을 봤습니다. 이 질문 안에 아주 흔한, 그러나 아주 중요한 오해 하나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디지털치료제(DTx)를 두고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연구로 효과가 확인됐다면, 그 순간부터 세상에 널리 쓰이고 보험도 자연히 적용될 것”이라고요. 결과가 좋으면 확산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믿음입니다. 저 역시 협회를 통해 여러 디지털 도구를 접하기 전까지는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로 이름을 알린 에임메드의 ‘솜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솜즈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여러 대학병원에서 만성 불면을 겪는 분들을 대상으로 견고한 비교 연구를 거쳤고, 불면 심각도 지수가 대조군보다 뚜렷하게 더 크게 낮아지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정도 근거면 당연히 널리 쓰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솜즈의 건강보험 한시 등재 기간은 올해 5월로 이미 끝났고, 정식 등재로 갈지는 아직도 논의 중입니다. 좋은 결과와 널리 쓰이는 것 사이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은 간격이 있습니다.

숫자 하나가 알려주는 것

이 간격을 이해하려면 ‘NNT’라는 개념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몇 명에게 도구를 제공해야 그중 한 명이 추가로 좋아지는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미국에서 약물 의존 회복을 돕는 한 디지털 프로그램의 경우 이 값이 4~5명 선으로 계산됩니다. 흔히 쓰이는 니코틴 패치가 17명 선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촘촘한 결과입니다. 숫자만 보면 이런 도구는 곧바로 일상에 자리 잡아야 마땅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한 겹 더 있습니다. 좋은 숫자를 낸 연구는 대개 참여를 독려받고, 매주 점검받고, 무료로 도구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입니다. 집에서 혼자, 알아서 켜고 꾸준히 써야 하는 일상은 전혀 다른 조건입니다. 저희 협회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앱을 처음 받아 든 한 주는 열심히 기록하다가도 셋째 주쯤 되면 알림을 꺼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 역시 한동안 수면 기록 앱을 쓰다가 여름휴가를 보내며 흐지부지 손을 놓은 경험이 있어, 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좋은 결과를 낸 회사가 문을 닫은 이유

이 오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미국의 한 디지털치료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약물 의존, 아편류 의존, 불면까지 세 가지 영역에서 미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낸 선두 주자였습니다. 연구 결과도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2023년 봄, 이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연구 단계에서는 참여자의 여든 퍼센트가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쳤지만, 실제 현장에서 한 달을 넘겨 계속 쓰는 사람은 서른다섯 명 중 한 명꼴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의료진은 앱을 권하는 방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고, 보험 쪽에서도 비용을 지불하려는 움직임이 더뎠습니다. 결과가 좋다는 것과,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질문이라는 사실을 이 사례가 알려줍니다.

그래서 요즘 이 분야에서는 정해진 조건 아래에서의 결과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실제 일상에서 얼마나 오래 곁에 두고 쓰는지를 더 눈여겨보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제가 오래 다뤄온 자연치유학의 오랜 물음과 닮아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라도 삶의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숲길을 걷는 회원들, 호흡을 가다듬는 회원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여러 해 동안 확인해 왔습니다. 숫자로 증명된 도구와, 삶에 뿌리내린 습관 사이의 그 간격을 메우는 일. 그것이 결국 제가 이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화요일의 그 회원에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좋은 결과가 곧 좋은 습관은 아니에요. 그 사이를 채우는 건 결국 우리 몫이더라고요.” 커피는 이미 다 식어 있었지만, 대화는 그날 오후 내내 이어졌습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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