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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송정숙

[디지털치유론] 카페 문 앞에서 멈춰 선 사람, 헤드셋을 썼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4835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아침 여덟 시, 협회 상담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볕이 아직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를 찾아온 회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고가도로를 건너는 것도 힘들어 몇 년째 출퇴근길을 돌아 다닌다는 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높은 곳 자체가 무섭다기보다, 무서워질까 봐 미리 겁이 나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책상 위에 펼쳐 두었던 교재의 한 대목을 떠올렸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대학에서 고소공포증을 겪는 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였습니다. 실제 높은 곳에 서는 대신, 헤드셋 속 가상의 다리와 옥상에서 단계적으로 높이를 마주하게 했더니 대기자 명단 상태로 지낸 이들보다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고, 그 변화는 이후 실제 높이 앞에서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그 회원께 “무서운 상황을 통째로 마주하기 전에, 안전하게 조절된 상태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방법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낮, 숫자가 말해주는 것

점심 무렵에는 협회 세미나실에서 실무자 몇 분과 자료를 다시 훑어보았습니다. 눈에 들어온 숫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존 방식의 노출 훈련은 거부하는 비율이 27%에 이르지만, 가상 환경을 먼저 거치는 경우엔 그 비율이 3%까지 낮아진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어느 연구자는 거미를 극도로 무서워하던 참가자가 단 한 번, 두 시간 남짓의 세션만으로도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무섭다는 이유로 시작조차 못 하던 문턱이 조금 낮아진 셈입니다.

저녁, 커피를 주문할 수 있을까

해가 기울 무렵엔 조현병으로 인한 광장공포 때문에 몇 년째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는 어느 사례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영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만든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는 가상의 카페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가상 코치가 “여기서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고, 몇 주 뒤 그는 실제 카페에 혼자 걸어 들어갔습니다. 2년 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시 세상으로 나설 자리를 마련해 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밤이 되어 협회 문을 잠그기 전, 최근 발표된 자료 하나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방식의 연구가 2015년 한 해 76건이던 것이 지난해 281건으로 늘었다는 집계였습니다. 그만큼 이 접근에 대한 근거가 쌓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학교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각각 트라우마와 사회적 상황 훈련을 위한 한국형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성 통증을 겪는 이들이 하루 6분씩, 8주에 걸쳐 집에서 스스로 호흡과 이완을 연습하도록 설계된 미국의 한 프로그램도 떠올랐습니다.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 밤 시간에도, 조용히 자기 돌봄을 이어갈 방법이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협회 문을 나서며 오늘 만난 회원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다음 주 상담실에 올 때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저는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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