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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21일 –

기사입력 기사번호 55594
1926년 8월 21일 토요일, 경성 거리에는 늦여름 볕이 따가웠다. 처서를 이틀 앞둔 이 무렵, 종로 축음기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두 주 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소프라노 윤심덕의 마지막 노래 ‘사의 찬미’가 가게마다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전라남도 광주형무소에는 자은도 소작쟁의를 이끌었던 농민 지도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날의 경성

닷새 전인 8월 16일, 광주지방법원은 자은도 소작쟁의를 이끈 농민 지도자들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자은도는 1924년 암태도에서 시작된 소작쟁의가 도초도, 지도 같은 이웃 섬으로 번져가던 와중에, 지주들이 다도농담회를 꾸려 소작료 5할을 다시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불붙은 곳이었다. 소작농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고, 몸싸움과 충돌 끝에 소요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판결로 옥에 갇힌 이들은, 다도해 섬사람들이 소작료 앞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몸으로 보여준 셈이었다.

한편 바다 건너 도쿄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자라고 있었다. 일월회 소속으로 활동하던 안광천, 하필원 등이 이달 레닌주의동맹에 이름을 올리면서, 조선 사회주의 운동 안에 ‘ML파’라 불릴 새로운 갈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내 신문에 이 소식이 정확히 며칠자로 실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사상단체 통합을 오래 요구해온 일월회의 움직임이 이 무렵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이 함께 가리키고 있다.

참고: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암태도 소작쟁의·ML파 항목)

경성과 한반도

자은도의 옥살이는 섬 하나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 전체 소작농 넷 중 셋이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살던 시절, 목포와 신안 앞바다 섬들에서 잇따라 터진 소작쟁의는 전라도를 넘어 전국 곳곳 소작농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젊은 지도자들이 이 싸움의 앞줄에 섰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같은 시각 경성지방법원 미결감에는 또 다른 이들이 갇혀 있었다. 지난 6월 10일 순종의 국장 행렬을 틈타 만세를 외쳤던 학생 11명이, 제령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채 석 달째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공판은 그해 11월에야 열리지만, 8월의 경성은 이미 그 여진 속에 있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저항은 도시에서도, 섬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가 죽음과 씨름하고 있었다. 맹장 수술을 받은 지 여드레째였던 이탈리아 출신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는, 바로 이날 왼쪽 폐에 급성 늑막염이 덮치면서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의사들은 그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당시 관행대로 환자 본인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이틀 뒤인 8월 23일, 서른한 살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된다.

중국 대륙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의 고삐를 죄고 있었다. 이달 들어 후난성 전역이 국민당 통제 아래 들어왔고, 군대는 징광철도를 따라 우창을 향해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8월과, 혁명의 중국·황혼의 할리우드가 같은 하늘 아래 흘러가고 있었다.

경성 24시

토요일 저녁 경성 거리는 다른 온도로 붐볐다. 종로 축음기 상점마다 ‘사의 찬미’를 틀어달라는 손님들이 줄을 섰다. 두 주 전 현해탄에서 사라진 윤심덕과 김우진의 마지막 순간을 둘러싼 소문은 가라앉기는커녕 갈수록 부풀어 올랐고, 그 노래는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리는 유행가가 되어 있었다.

극장가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인사동 조선극장은 이달 하순 들어 그동안 함께 운영해오던 하야가와가 손을 떼면서 새 주인을 찾는 처지에 놓였다. 단성사와 우미관, 원각사 같은 다른 극장들은 여전히 영화와 창극, 신파극으로 밤을 밝히고 있었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노래하고 웃고 우는 자리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던 셈이다.

100년의 거울

1926년 경성 사람들은 축음기 한 대를 여러 집이 돌려 들으며 노래 한 곡에 울고 웃었다. 2026년 서울 사람들은 손안의 화면으로 전 세계 음악을 실시간으로 듣는다. 100년 전 소작농은 수확의 절반 넘게 지주에게 내주고도 감옥에 갈 각오로 맞서야 했지만, 오늘의 농민은 법과 제도 안에서 권리를 주장할 길을 갖고 있다.

항목 1926년 2026년
음악 감상 축음기·유성기 음반 실시간 스트리밍
유행 콘텐츠 확산 레코드 상점·입소문 앱·SNS 알고리즘
소작농의 처지 수확 절반 이상 지주 몫, 저항 시 옥살이 법적 권리 보장, 분쟁은 제도로 조정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좋은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의 마음은 100년이 지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틀 뒤인 8월 23일, 뉴욕의 발렌티노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 경성 신문에 실리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릴 터였다. 자은도의 소작농들도, ML파의 젊은 사회주의자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음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또 다른 100년 전 오늘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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