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감정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을 라디오 방송이라는 공간에 담은 단편영화다. 구나현 감독의 <훌>은 제13회 인천독립영화제 인천 섹션 1에서 관객과 만난 32분 분량의 극영화다. 영화는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이 오래된 인연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따라간다.

2025년 제작된 <훌>의 이야기는 연말 특집 방송을 준비하는 라디오 크루 단풀 소리에서 시작된다. 크루는 오랫동안 방송을 들어온 애청자 훌을 특별 게스트로 초대하려 한다. 그러나 훌은 DJ 풀에게 평범한 청취자가 아니다. 그녀의 존재는 풀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방송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풀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지고, 결국 그는 오랜 시간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공간이다.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훌>은 이런 라디오의 속성을 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한다. 프로그램북에 공개된 시놉시스만으로 영화의 모든 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래된 애청자의 등장이 DJ 풀의 지난 시간을 환기하고, 그 과정에서 묻혀 있던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작품의 구조는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
구나현 감독은 연출 의도에서 마음 한편에 존재하는 부끄러움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이야기했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또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보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무게를 둔다. <훌>이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에서 연말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눈에 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는 자연스럽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연말 특집 방송을 준비하는 DJ에게 과거와 연결된 인물이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은 작품의 정서와 맞물린다. [기사적 해석] 방송을 준비하는 일과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라디오 스튜디오는 단순한 직업 공간을 넘어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장소로 기능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훌>은 8월 27일 오후 7시 20분 영화공간주안 4관에서 열린 인천 섹션 1에 편성됐으며 GV도 함께 진행됐다. 프로그램북 상영시간표에도 같은 섹션과 작품이 확인된다. 제13회 인천독립영화제는 2026년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영화공간주안에서 개최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게시된 공식 공모 안내에 따르면 영화제는 사단법인 인천독립영화협회와 영화공간주안이 주최와 주관을 맡았다.
특히 인천 섹션은 지역과 창작자의 연결이라는 영화제의 성격을 보여준다. 영화진흥위원회 공모 규정에서는 감독, 프로듀서, 촬영감독, 주연배우 등 주요 제작진 가운데 1명 이상이 인천 연고자인 작품이 인천 섹션에 출품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는 단순히 지역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발굴하는 구조다.
구나현 감독은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사진과를 거쳐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했다. <훌>에서는 감독과 각본, 편집을 직접 맡았다. 출연진에는 김예지, 김예별, 이건휘가 이름을 올렸다. 프로듀서는 이다영과 한세하, 조감독은 김민선이다. 이정준이 촬영을, 정세영이 조명을 맡았으며 윤채완이 녹음, 이수빈이 음악을 담당했다.
제작진 구성에서는 이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다른 인천 섹션 작품들과 연결되는 이름도 확인된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구나현 감독은 인천 섹션 5의 <첫 문장을 쓰기 전>에도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해당 작품의 감독 이다영은 <훌>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서로 다른 작품에서 역할을 바꾸며 협업하는 독립영화 제작 현장의 모습을 프로그램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훌은 화려한 사건보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에 시선을 둔다. 오래된 애청자가 다시 찾아오고, 라디오 방송을 앞둔 DJ는 자신이 외면해 온 시간을 돌아본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처럼 보이는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일 수 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그 지점에 있다.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 언제나 화해나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나현 감독은 <훌>을 통해 적어도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 주목한다. 라디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온 DJ가 마침내 자신의 오래된 마음을 듣게 되는 과정이다. 제13회 인천독립영화제가 발굴한 <훌>은 기억과 부끄러움, 그리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용기를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섰다.
제13회 인천독립영화제의 개최 일정과 인천 섹션 출품 기준 등 공식 정보는 영화진흥위원회 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제13회 인천독립영화제 공식 공모 안내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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