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5] 신야의 호송 (Session D1의 마지막 편)
4월 · 다 버린 밤 | 약 3분 읽기

박망파(博望坡)의 불이 하후돈(夏侯惇)의 십만을 흩뜨린 그 해 뒤, 조조(曹操)가 스스로 오십만 대군을 이끌고 형주(荊州) 쪽으로 내려왔다.
유표(劉表)가 그 해 가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둘째 아들 유종(劉琮)이 채모(蔡瑁)의 결 아래에서 형주목(荊州牧)을 이었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降)의 서(書)를 건네었다. 형주 전역이 조조의 결 아래로 들어갔다.
유비(劉備)가 신야(新野)의 성루 위에서 그 소식을 받았다. 그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공명. 오늘 신야의 작은 성도 조조의 오십만 앞에서는 지켜낼 수 없사옵니다. 남쪽의 강릉(江陵) 쪽으로 내려가야 하옵니다.”
제갈량(諸葛亮)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군. 옳은 결이옵니다. 다만 한 결이 남아 있사옵니다. 신야의 백성이 함께 걸음을 같이하기를 청하여 오고 있사옵니다.”

유비가 깊은 한숨을 삼켰다.
“공명. 신야의 오천 호(五千戶)가 우리와 함께 걸음을 같이하고자 하는가.”
제갈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군. 오천 호가 오늘 아침 성문 앞에 함께 모여 있사옵니다.”
유비가 성루 아래로 내려왔다. 성문 앞에, 오천 호의 백성이, 수레와 등짐 아래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한 늙은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와 낮은 한 마디를 흘렸다.
“유 사군. 신야의 한 결이 사군의 결 아래에서 오래 따뜻하였사옵니다. 오늘 사군의 걸음을 함께 옮기고자 하옵니다.”
유비의 두 눈이 얕게 젖었다.
“어르신. 오늘 신야의 오천 호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겠나이다.”
늙은 할아버지가 깊은 고개를 숙였다.
신야 오천 호가 유비·관우(關羽)·장비(張飛)·제갈량 네 이름과 함께 남쪽 강릉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수레의 바퀴가 흙길 위에 한 자국을 남겼다. 오천 호의 발자국이 그 자국 위에 함께 놓였다.
Session D1의 마지막 편이 신야 오천 호의 발자국 위에서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新野送(신야송, 신야의 호송)의 세 글자가, 유표의 떠남과 유종의 항복의 서와 오천 호의 수레와 늙은 할아버지의 고개의 숙임이 한 자리에 놓인 한 호흡의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Day 104의 博望火의 재가, 오늘 아침 오천 호의 발자국 위에 닿아 있었다.
Session D1의 Day 1 황건도원의 결의부터, 오늘 Day 105의 신야의 호송까지, 백다섯 편의 한자 창작과 백다섯 개의 밤이 오늘 아침 오천 호의 발자국 위에 함께 놓여 있었다. 내일 Day 106부터는 Session A의 결 아래로 이야기의 결이 이어져 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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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한 사람의 걸음이 작은 성을 떠나는 아침이 있지요. 그 떠남의 걸음이, 오천 호의 발자국과 함께 남쪽으로 옮겨 가는 자리이옵니다. 오늘 당신의 아침에도, 함께 옮겨 가는 발자국들이 혹시 놓여 있지는 아니한지요. 그 함께의 결을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Session D1의 백다섯 번째 아침이 오늘 신야 호송의 발자국 위에서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Day 1의 도원의 결의부터, Day 105의 신야의 호송까지, 백다섯 편의 한자 창작이 오늘 아침 함께의 발자국 위에 놓여 있었음을, 조용히 거두어 주시옵소서. Day 106부터는 Session A의 결이 이 이야기를 이어 가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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