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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6일 – 목포의 파업이 여덟 달을 넘던 날, 경성엔 사흘 전 공산당 재판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7797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6일 – 목포의 파업이 여덟 달을 넘던 날


10:10
일제강점기 16년차 • 1926년 • 오전판
1926년 9월 16일 목요일

100년 전 오늘

🕙
10시 10분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1926년 9월 16일 목요일.
목포에서는 기름 짜는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써 여덟 달을 넘기고 있었고, 경성에서는 사흘 전 열린 공산당 사건 공판의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초가을로 접어든 조선 반도. 이날의 날씨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자료는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다 — 다만 9월 중순이라는 계절감만 붙잡아 둔다.

같은 시각 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이 한양과 한커우를 점령한 지 열흘째, 우창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지방검사가 유명 전도사를 포함한 다섯 명에 대한 체포를 명령했다.

📰 그날의 경성

사흘 전의 여진 — 공산당 사건 공판

9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1차·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 공판이 열렸다. 1925년 11월 신의주에서 발각된 이래 조선 사회를 흔들어 온 이 사건은, 9월 16일 이 시점까지도 경성 거리의 화제였다.
이번 조사로 9월 16일자 개별 신문 기사 원문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다만 재판이 열렸다는 사실과 그 무게만큼은 여러 후대 연구가 공통으로 짚고 있다.
출처: 경성지방법원 공판 기록(9월 13일) 관련 후속 연구 종합

🏛️ 총독부 관보

이날 관보의 구체적 고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 무렵 총독부는 광화문 앞 신청사 낙성을 한 달여 앞두고 마무리 공사에 행정력을 모으고 있었다.

✊ 기록된 저항 — 목포 기름공장의 여덟 달

목포제유직공노조는 그해 1월 15일 임시총회를 열어 하루 열두 시간이던 노동시간을 열 시간으로 줄여 달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파업 직공을 잘랐고, 다른 공장에도 이들을 쓰지 말라 알렸다.
목포자유노조, 인쇄직공 친목회, 목공조합까지 나서 힘을 보탰지만, 경찰과 자본 쪽의 강경한 대응 속에 싸움은 봄을 넘기고 여름을 지나 9월 중순, 여덟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출처: 목포제유노조 파업 관련 연구(지방사와 지방문화) 및 노동운동사 정리 종합

💰 신문 광고로 본 물가

이날짜 물가 광고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정 가격은 싣지 않는다.

🗾 경성과 한반도

목포의 소식은 경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라도 항구 도시에서 시작된 싸움은 전국 노동 단체들의 관심사로 번져 있었고, 신간회 결성을 앞둔 민족 진영 안에서도 노동 문제는 무겁게 다뤄지던 화두였다.

한편 공산당 사건으로 잡혀간 이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과 동지들은 경성뿐 아니라 신의주, 평양에도 흩어져 있었다. 만주와 상해의 한인 사회 역시 이 재판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후속 연구가 공통으로 전한다.

• 지역 소식: 목포(파업), 신의주(사건 발각지), 평양·경성(공판 여진)
• 해외 한인사회: 만주·상해의 촉각
• 노동운동 동향: 목포를 중심으로 한 전국 연대 움직임

🌍 그날의 세계

🇨🇳 중국 – 북벌의 진군

국민혁명군이 9월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한양과 한커우를 잇달아 점령했다. 9월 16일 이 시점, 군대는 우한 삼진의 마지막 축인 우창을 향해 계속 진격하고 있었다(우창 함락은 10월 10일).

🇮🇹 이탈리아·루마니아

이날 이탈리아와 루마니아가 우호조약을 맺었다. 이탈리아의 차관 제공과 석유 등 자원 이권이 맞물린 조약이었다.

🇺🇸 미국 –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 에이사 키스가 전도사 에이미 셈플 맥퍼슨을 포함한 다섯 명에 대해 ‘공중도덕 문란 공모’ 혐의로 체포를 명령했다.

🏮 경성 24시 – 일상의 기록

🌅 아침 풍경

종로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하루가 열리고,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좌판을 폈다. 신문팔이 소년들의 외침 속에 공산당 재판 소식이 섞여 돌았다.

🏭 공장의 하루

목요일, 이 도시 곳곳의 공장에서는 열 시간이 넘는 노동이 이어졌다. 목포의 소식은 경성의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낮은 목소리로 오갔다.

🌙 밤의 경성

명동 카페거리에 불이 켜지고, 조선극장에서는 변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총독부 신청사 공사장은 어둠 속에서도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 공장의 하루 — 목포에서 온 편지

여덟 달째 이어진 파업은 이제 경성의 노동 단체에도 편지와 격문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짧게 끊어 쓴 그 문장들은 굳이 꾸밀 필요가 없었다 —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 100년의 거울

구분 1926년 2026년
노동시간 하루 12시간이 흔했고, 목포 노동자들은 10시간을 요구하며 여덟 달을 버텼다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 연장근로에도 상한선이 있다
파업의 권리 파업은 곧 해고와 검거로 이어질 수 있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헌법으로 보장된다
사상의 자유 공산당 사건처럼 특정 사상 자체가 재판대에 오를 수 있었다 사상·양심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된다

💡 역사의 교훈

여덟 달을 버틴 노동자들과, 사흘 전 재판정에 섰던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당장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버티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 버팀이 쌓여 오늘의 권리가 되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이 시간, 10시 10분
1926년 9월 17일을 만납니다.

“내일도 1926년의 하루를, 목포에서 경성까지 함께 걷겠습니다”

어제의 이야기

1926년 9월 15일

🕙

10:10

내일의 이야기

1926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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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10시 10분, 100년 전 오늘을 전합니다

코리안투데이 “100년 전 오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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