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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7일 – 브리앙과 슈트레제만이 트와리서 손을 맞잡던 날, 경성은 신청사 완공 열나흘 전이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7898
🕙 오전판 · 1926년 9월 17일 금요일
1926년 9월 17일, 금요일. 경성은 초가을 문턱에 들어서 있었다. 경복궁 안 공사장에는 여전히 벽돌과 비계가 쌓여 있었고, 이날은 총독부 신청사 완공일—10월 1일—까지 꼭 열나흘이 남은 날이었다. 같은 날, 저 멀리 프랑스의 작은 마을 트와리에서는 두 나라의 외무장관이 마주 앉았다. 경성의 하루와 유럽의 하루가, 같은 지구 위에서 나란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의 경성

경복궁 자리에 올라가던 새 청사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10월 1일 낙성식까지 남은 날은 열나흘.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10월 1일, 종로 단성사에서는 전혀 다른 막이 오를 예정이었다. 나운규가 쓰고 찍고 몸소 연기까지 맡은 영화 《아리랑》이 바로 그날 첫선을 보이기로 되어 있었다. 총독부의 새 청사와, 3·1운동을 겪은 뒤 실성한 청년 최영진의 절규가 같은 날 경성 하늘 아래 나란히 걸리게 된 셈이었다—훗날 역사가 두고두고 곱씹게 될 우연이었다.

한편 이달 여성 독자를 위한 잡지 《신여성》 9월호(통권 30호)가 가판대에 올랐다. 여학생과 가정 부인을 함께 겨냥해온 이 잡지는, 그러나 다음 달이면 휴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신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온 지면 하나가 조용히 숨을 고르려 하고 있었던 셈이다.

법원 쪽도 조용하지 않았다. 지난 7월 검거된 강달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 관계자들에 대한 경성지방법원의 조사는 이 무렵에도 이어지고 있었고, 6·10만세운동으로 끌려간 학생들 역시 여전히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벽돌 쌓는 소리와 재판 서류 넘기는 소리가, 같은 경성 하늘 아래 나란히 울렸다.

경성과 한반도

경성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목포 제유공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파업 중이었다. 지난 1월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시작된 싸움은 여덟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회사 쪽의 회유와 경찰의 압박 속에서도 목포 노동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그 끈질김은 훗날 전국 노동운동의 한 본보기로 남는다.

전국 각지의 여성 단체들도 조용히 몸을 키우고 있었다. 경성의 여자청년회들은 그해 겨울 통합을 준비하고 있었고,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는 조선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여성 노래자랑 같은 행사를 이어가며 지지 기반을 넓히고 있었다. 아직 ‘근우회’라는 이름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씨앗은 이 가을 이미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이날 프랑스 트와리의 한 호텔에서는 프랑스 외무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과 독일 외무장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세 시간 넘게 마주 앉았다. 불과 여드레 전 슈트레제만이 제네바 연단에서 독일의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가입을 선언했던 바로 그 흐름의 연장선이었다. 두 사람은 자르 지방의 조기 반환과 라인란트 점령의 조기 종료, 프랑화 안정을 위한 독일의 지원까지 폭넓게 논의했다—훗날 학자들은 이 트와리 회담을 ‘로카르노 정책의 정점이자 종착점’으로 기록하게 된다.

한편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덮친 대형 허리케인이 이날 상륙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살 곳을 잃었다는 소식이, 외교의 언어로 가득한 트와리의 뉴스 곁에 나란히 놓였다.

경성 24시

이른 아침, 종로 뒷골목 장터에는 찬거리를 사러 나온 아낙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여학교로 향하는 단발머리 여학생들도 그 사이를 지나쳐 갔다—책보를 옆구리에 낀 걸음이 씩씩했다.

한낮엔 배화·정신 같은 여학교 교실에 산술과 습자 시간이 이어졌고, 선생들은 다음 달 시작될 가을 학기 준비로 분주했다. 살림을 꾸리던 여인들은 《신여성》 9월호를 사이에 두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해거름이 되자 정동의 교회들은 저녁 예배를 준비했고, 종로 어느 절에서는 저녁 종소리가 낮게 울렸다. 밤이 깊어질 무렵,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열나흘 뒤—10월 1일—로 향하고 있었다. 새 청사의 낙성식이든, 단성사에서 오를 새 영화든, 경성은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2025년
여성 대상 잡지 《신여성》 등 소수, 이 가을 휴간 예정 수백 종의 매체가 상시 발행
여학교 진학 극소수 여학생만 다니는 별세계 사실상 보편적 진학
여성 사회단체 YWCA 등 태동기, ‘근우회’는 아직 없음 전국 단위 여성단체 다수 상시 활동

백 년 전 여학생의 책보 하나가, 오늘의 교실 가득한 책가방들로 이어졌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1926년 9월 18일 토요일의 경성을 기록한다. 총독부 신청사까지는 이제 열사흘. 그리고 단성사 간판엔 어떤 이름이 걸리게 될지, 경성의 다음 하루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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