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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27일 – 총독부 신청사 낙성식 나흘 전, 경성 법정엔 여전히 공산당 사건과 필화가 남아 있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677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일로 돌아온 아침이었다. 거리엔 초가을 바람이 스쳤다. 🕙 시계가 열 시 십 분을 가리킬 무렵, 광화문 옆에 우뚝 선 총독부 신청사는 완공을 나흘 앞두고 있었다. 경성지방법원 법정에는 이날도 공산당 사건과 필화사건 재판이 오르내렸다.

그날의 경성

매일신보 1926년 9월 27일자는 “도시계획은 장래 조선 통치상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경비는 막대한 액수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총독부가 경성을 비롯한 조선 주요 도시의 도시계획을 앞으로의 핵심 정책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기사였다. 새 청사 완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온 보도라, 경성 사람들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읽혔을 것이다.

법정 쪽 사정은 달라진 게 없었다. 경성지방법원에서는 앞서 9월 13일 열린 제1·2차 조선공산당 사건 공판에 이어, 이날도 관련자들의 심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강달영을 비롯해 6·10 만세운동 준비 과정에서 검거된 이들 100여 명의 사건은 여전히 매듭짓지 못한 채였다. 필화사건 재판도 함께 걸려 있었다 — 정확히 누구의 어떤 글이 문제 된 사건인지는 이 자료만으로 특정되지 않는다. 앞서 9월 4일 보도에서는 “만세 부른 학생들”의 판결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완공을 앞둔 신청사의 위용과, 여태 끝나지 않은 법정의 사건들이 같은 신문 지면 위에 나란히 놓인 셈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이 무렵 조선공산당 재건 움직임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6월 순종 국장을 계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판단한 총독부는, 다이쇼 15년(1926년) 이후의 동향을 세세히 기록하며 예의주시했다. 강달영이 이끌던 제2차 조선공산당이 검거로 와해된 뒤에도, 9월 무렵엔 김철수를 중심으로 오희선·원우관 등이 다시 모여 당 집행부를 재정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훗날 제3차 조선공산당으로 불리는 흐름의 출발점이었다.

경성 법정의 사건들은 그래서 경성 한 곳의 일로 그치지 않았다. 총독부가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이 더욱 짙어지며 좌경적 사상과도 결합하고 있다”고 적어 둔 그대로, 전국 각지의 감시와 검거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날 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이 우창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9월 6일과 7일 한커우와 한양을 잇달아 점령한 뒤, 군벌 오패부의 마지막 거점인 우창성을 포위한 지 어느덧 스무날 남짓이었다. 성벽에 둘러싸인 이 도시가 실제로 함락되는 것은 열사흘 뒤인 10월 10일, 신해혁명 우창봉기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유럽에서는 지난 9월 8일 독일이 국제연맹에 가입하고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얻은 여파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로카르노 조약으로 다져진 화해 분위기가, 패전국이던 독일을 다시 강대국의 자리로 돌려놓은 셈이었다. 도쿄에서는 다이쇼 천황이 여전히 요양 중이었고, 1921년부터 이어진 히로히토 황태자의 섭정 체제도 그대로였다.

경성 24시

새벽녘, 광화문 옆 공사장에는 등불이 먼저 켜졌다. 낙성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총독부 신청사에서는 마지막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 비계를 오르내리는 목수와 미장이들, 자재를 나르는 인부들의 하루가 여느 때보다 바빴을 시기다. 아침나절 거리로 나온 신문팔이 소년들은 “도시계획” 기사가 실린 매일신보를 흔들며 골목을 누볐다.

한낮, 경성지방법원 앞 골목에는 공산당 사건 공판을 지켜보러 온 방청객들이 오갔다. 법정 안팎의 표정은 무거웠지만, 종로 쪽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 단성사 앞을 지나는 사람들, 서점가를 기웃대는 학생들. 해거름이 내리면 인력거꾼들이 종로와 본정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확인된 그날의 날씨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초가을 저녁 바람만은 여느 9월 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00년의 거울

공사장 인부의 하루와 오늘 건설 현장의 하루를 나란히 놓아본다.

비교 항목 1926년 경성 2025년 서울
공사 인부 하루 벌이 수십 전 안팎 (당시 일반적 노임 수준, 이날 특정 임금은 확인 안 됨) 건설 일용직 평균 약 15만~20만 원대
신문 값 1부 몇 전, 구독은 월 단위 계약 대부분 온라인 무료, 종이 구독은 월 2만 원대
대표 관공서 건물 10년 걸려 완공 앞둔 총독부 신청사 정부서울청사 등 상시 운영 관공서

100년 전 그날, 인부들이 밤낮으로 지어 올리던 건물은 며칠 뒤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문을 연다. 오늘 그 자리엔 다른 이름의 건물과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서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1926년 9월 28일 화요일. 낙성식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다. 경성 법정의 사건들도, 우창성 포위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내일 아침 열 시 십 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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