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7] 문 밖의 거문고
5월 · 세 번째 문 | 약 3분 읽기

단계(檀溪)를 건넌 적로(的盧)는 그대로 서남쪽 산길로 들어섰다.
유비(劉備)는 한참 동안 말의 등 위에서 숨만 고르고 있었다. 이마의 식은땀이 가을 바람에 식었다. 말고삐가 손에서 느슨해져, 적로가 제 걸음대로 한참을 걸었다. 산길이 구불구불 올라가더니, 어느 고개 너머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소리였다. 한 가락이 길게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밤의 산길에서 있을 수 없는 소리였다. 유비는 고삐를 다시 쥐었다. 적로가 고개를 들어,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산중턱의 작은 초당(草堂) 앞에 적로가 멈추어 섰다.
사립문이 열려 있었다. 문 너머의 마당 한가운데에 큰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대나무 아래에 한 사람이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흰 옷자락에 푸른 띠를 두른 노인이었다. 머리는 길게 묶었고, 얼굴은 맑았다. 나이는 예순쯤 되어 보였다.
유비가 말에서 내렸다. 한 걸음 다가가서,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
“길을 잃은 사람이, 하룻밤 신세를 청하옵니다.”
노인은 거문고의 마지막 현을 끝까지 퉁긴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이 유비의 얼굴을, 말의 이마를, 그리고 유비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차례로 훑었다.
“유황숙(劉皇叔)께서, 오늘 이 산에 길을 잃어 오실 자리가 아니지요.”
유비의 등이 굳었다. 노인은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꾸짖음이 없었다.
“사마휘(司馬徽)라고 하오. 사람들은 수경(水鏡) 선생이라고 부르지요.”
초당 안쪽의 작은 방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등잔불 하나가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사마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숙의 이마에는 먼지가 아직 조금 남아 있소. 그 먼지는 단계(檀溪)의 흙이지요. 오늘 밤 시내를 뛰어넘으셨을 게요. 이마의 흰 자락을 가진 말이, 주인을 살려 준 셈이로군.”
유비가 고개를 숙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숙, 내가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소.”
“예.”
“황숙께서 이제 마흔일곱이시지요. 그 동안 평원(平原)·서주(徐州)·소패(小沛)·여남(汝南)·신야(新野)까지, 본인의 자리를 여러 번 옮기셨소. 그러나 아직 어느 자리에서도, 황숙의 박자로 앉아 보신 적이 없소. 그 까닭이 무엇이라 보시오.”
유비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제 곁에 사람이 아직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

사마휘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조용히 내려왔다.
“아니오. 황숙의 곁에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있소. 이 두 사람이면 천하의 어떤 장수를 앞에 두고도 모자라지 않소. 다만 황숙께 꼭 한 사람이 아직 없소.”
“그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옵니까.”
“황숙의 머릿속을 하루에 두 번, 정리해 드릴 사람이오. 황숙의 박자를 대신 길게 들어 드릴 사람이오. 관우와 장비의 칼 앞에, 한 장의 지도를 먼저 펴 놓아 줄 수 있는 사람이오.”
유비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선생.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사옵니까.”
사마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소.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오. 형주(荊州) 어딘가에 와룡(臥龍)이 있소. 형주의 곁에 봉추(鳳雛)가 있소.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의 한 모서리를 바로잡을 수 있소.”
유비가 고개를 들었다.
“와룡과 봉추는 본 이름이 무엇이옵니까.”
사마휘는 그 물음 앞에 한 호흡 쉬었다. 그러고는 짧게 대답했다.
“오늘은, 두 별명까지만 황숙께 드리겠소. 그 이름은, 황숙께서 스스로 세 번 걸어가 물으셔야 들을 수 있는 이름이오.”
“세 번 걸어가다니요.”
“황숙께서는 아직 이 산을 모르시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사람의 문 앞을 걸어가셔야 하오. 그때, 황숙께서 비로소 그 이름을 들으실 수 있을 것이오.”
밤이 깊었다. 유비는 오늘 사마휘에게 이름 하나도 얻지 못했다. 다만 두 별명만 얻었다. 그러나 유비의 안쪽 어딘가에서는, 오늘 밤 이 작은 초당에서 받은 두 별명이 단계에서 살아 넘긴 그 자신의 한 조각과 같은 무게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사마휘가 거문고를 다시 퉁겼다. 짧은 한 가락이었다. 유비는 그 가락을 오래 들었다. 가락이 끝난 뒤, 사마휘가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은 지금 자기 초가 안쪽에서 두 가지 부채를 번갈아 만들고 계시오. 하나는 여름의 부채, 하나는 겨울의 부채. 그 부채가 황숙의 호흡을 조금씩 늘려 드릴 것이오.”
유비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랐다. 다만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을의 산공기가 유비의 안쪽 어딘가에서 오래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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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곁에 관우와 장비가 있으셔도, 아직 자기 박자를 한 박자씩 늘려 줄 한 사람이 부족한 저녁이 당신 곁에도 있으신지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자기 박자를 빠르게 해 주는 사람, 그리고 자기 박자를 늘려 주는 사람. 앞의 사람이 둘 있어도 뒤의 한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는 오래 앉지 못하는 자리이옵니다. 오늘 당신 곁에 뒤의 한 사람은 혹시 계신지요. 없으시다면, 오늘부터 세 번, 걸어가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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