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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살아있다 – 백제 편] 제25화: 백강 전투 – 동아시아 대해전

기사입력 기사번호 59546
百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25화: 백강 전투 – 동아시아 대해전

바다를 잃은 나라는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663년 가을, 백강 하구의 바다는 불타는 배의 연기로 붉게 물들었다.

660년 사비성이 무너진 뒤에도 백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복신과 도침, 그리고 왜국에 머물던 왕자 풍(豊)이 부흥의 깃발을 들었고, 왜국은 대규모 원군을 바다 건너 보냈다. 백강 전투는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승부이자, 한반도·중국·일본 세 세력이 한꺼번에 맞붙은 동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국제 해전이었다.

왜 연합군은 수적으로 우세했는데도 단 이틀 만에 무너졌을까? 그리고 이 한 번의 패배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 시대의 풍경

7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당 제국이 주도하는 질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당은 신라와 손잡고 660년 백제를 무너뜨렸고, 고구려를 압박하는 후속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백제 유민은 임존성과 주류성을 거점으로 200여 성을 회복하며 저항했고, 왜국은 오랜 동맹국 백제를 되살리는 것이 곧 자국의 안보라고 판단했다.

661년 사이메이(齊明) 천황이 구원군을 이끌고 규슈까지 나아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뒤를 이은 나카노오에(훗날 덴지 천황)가 전쟁을 이어갔다. 풍은 660년대 초 왜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해 왕위에 올랐으나, 663년 6월 부흥군 내부에서 복신이 풍에게 제거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지휘부는 이미 균열이 가 있었다. 나당 수군은 이 틈을 노려 부흥군의 중심 주류성을 향해 수륙 양면으로 진군했다.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백강 어귀에서 왜군을 만나 네 번 싸워 모두 이기고 그 배 400척을 불살랐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치솟고 바닷물이 모두 붉게 물들었다.” (대의 요약)

– 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3년(663)조의 전투 기사 요약 (당 측 기록 《구당서》 유인궤전에도 같은 취지의 서술이 전한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 고종 치세. 서돌궐·백제를 차례로 제압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663년 백강에서 해상 우위까지 입증했다.

🗿 유럽/중동

비잔틴은 콘스탄스 2세 시대로 이슬람 세력과 지중해 패권을 다투었다. 우마이야 칼리파조는 661년 출범했다.

🌏 기타 지역

왜국은 다이카 개신 이후 율령국가로 나아가던 중이었다. 패전은 국방과 국가 체제 정비를 앞당긴 계기가 되었다.

백강 전투 개념도 (663년 8월) 백제 부흥군 주류성 (위치는 논쟁 중) 육상 진군 (신라군) 왜·백제 선단 (대형 집결) 당 수군 (유인궤·두상) 좁은 하구 봉쇄 협공 · 화공 🔥 왜선 400척 소실 개념도: 지형과 병력 배치는 학설에 따라 다름

[이미지: 백강 전투 개념도 — 당 수군이 하구를 막고 왜·백제 선단을 포위했다]

⚔️ 그날의 현장

“새벽 안개가 걷히자 강어귀에 줄지은 당나라 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수군은 북소리와 함께 선단을 밀어 올렸다. 숫자는 분명 우리가 많다. 선두의 장수들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먼저 치면 저들은 스스로 물러난다!'”

“그러나 좁은 물길에 뒤엉킨 배들은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불화살이 돛을 스치자 불길이 이 배에서 저 배로 번졌다. 물에 뛰어든 병사들의 비명과 함께 바다는 붉게 끓었다. 기록은 이 장면을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덮고 바닷물이 모두 붉었다’고 전한다.”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전투는 음력 663년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이어졌다(양력으로는 10월 초). 당은 약 170척의 전선과 1만 명 남짓한 병력, 신라는 육상 병력으로 가담했고, 왜·백제 쪽은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수만 명의 병력과 대규모 선단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첫날 왜 수군은 질서 없이 돌격했다가 패퇴했고, 이튿날 다시 같은 방식으로 공격하다 당 수군의 협공과 화공에 섬멸되었다.

패인은 첫째로 지휘 체계의 분열이었다. 왜국 장수들은 여러 호족의 연합군을 이끌었기에 통일된 작전이 어려웠다. 둘째, 선박의 성능과 전술 차이였다. 당 수군은 큰 전선을 질서 있게 운용하며 하구를 봉쇄한 반면, 왜선은 상대적으로 작고 대오가 느슨했다. 셋째, 부흥군 내부의 권력 다툼이다. 복신 제거로 풍과 장수들의 신뢰는 무너졌고, 백강에서 패한 풍은 고구려로 달아났다. 주류성은 곧 함락되었고 임존성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지수신도 결국 떠났다.

패전의 충격은 왜국에 더 오래 남았다. 665년 대재부 북쪽에 오노성(大野城)과 기이성(基肄城)이 쌓였고, 수성(水城)이라 불린 거대한 제방형 방어시설이 만들어졌다. 대마도와 규슈, 야마토를 잇는 방어선이었으며, 상당수는 망명한 백제 기술자들의 지도로 축조되었다고 전한다. 667년에는 수도를 오미(近江)로 옮겼다. 백제의 몰락은 일본이 율령국가로 재편되는 속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시대

663년 8월(음력 27~28일)

핵심 인물

풍왕, 유인궤, 두상, 아베노 히라부

핵심 사건

왜선 400척 소실, 부흥운동 종결

영향

왜의 한반도 철수, 일본 국방 개편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백강(백촌강)은 금강 하구 일대로 보는 시각이 오래 이어졌고, 주류성은 충남 서천·홍성 등 금강 인근 산성 후보지가 꼽힌다.

대안적 견해

전북 부안의 동진강 하구설, 금강 이북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사료의 ‘웅진강구’ 해석이 쟁점이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백강 전투의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국제전은 동맹의 숫자보다 지휘의 통일이 승패를 가른다. 둘째, 해양은 곧 안보의 최전선이다. 바다를 장악한 쪽이 병력과 보급의 흐름을 쥔다. 셋째, 외세에 기댄 재건은 내부의 단결이 없으면 한 번의 패배로 끝난다.

오늘날 한국은 수출입 물동량 대부분을 바닷길에 의존하는 해양 국가다. 호르무즈, 말라카,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해상 교통로 안보 문제는 1,300여 년 전 백강의 문제와 본질이 닮았다. 해군력과 동맹, 그리고 정확한 정보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이다.

구분 백제 시대 현재
정치/안보 부흥군 내분과 이중 지휘, 외부 원군 의존 연합 작전의 지휘 일원화, 자주 국방 역량
군사/외교 수군 전술·협공 능력 격차, 왜와의 동맹 한미동맹과 해군 전력 현대화, 해상교통로 보호
문화/정신 끝까지 부흥을 꿈꾼 유민의 저항 정신 K-Defense, 조선·해양 기술 강국의 자신감

백강에서 오늘의 바닷길까지 663년 백강 전투 제해권 상실 665년 일본 방어선 구축 오노성·기이성 조선 시대 수군의 중요성 해양 방어 전략 오늘 해상교통로 안보 해군·동맹·정보 바다를 지키는 힘이 곧 나라를 지키는 힘

[이미지: 백제 정신과 현대 한국의 해양 안보]

📚 더 깊이 알아보기

  • 일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의 미즈키(水城)·오노성 유적은 백강 패전 뒤 만든 방어 시설로, 오늘날에도 답사할 수 있다.
  • 《일본서기》는 663년 왜 장수들이 “먼저 싸우면 저들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한다. 승패를 가른 것이 정보와 지휘였음을 말해 주는 일화다.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백강 전투’ 항목과 《삼국사기》 신라본기·백제본기를 함께 읽어 볼 것.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백강의 불길은 한 왕조의 마지막 희망을 꺼뜨렸지만, 바다와 연대, 그리고 하나 된 지휘가 국가의 생존을 가른다는 교훈은 지금도 꺼지지 않았다.

“물결은 사라져도 그날의 붉은 바다는 역사 속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백제 정신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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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백제 부흥운동 – 복신과 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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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백제 유민의 이동 – 디아스포라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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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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