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6] 두 번 헛걸음한 자
5월 · 세 번째 문 | 약 3분 읽기

첫 걸음의 서리가 녹은 지 넉 달이 지났다. 가을의 바람이 왔다 가고, 와룡강(臥龍崗) 사립문 위의 세 글자는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건안 13년(서기 208년) 늦가을의 어느 새벽, 유비(劉備)가 두 번째 걸음을 남쪽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눈이 내리지 아니하였다. 다만 와룡강 산중턱의 감나무 한 그루가 잎을 거의 다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붉은 감 몇 개가 가지 끝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세 필의 말이 마을 앞 개울 건너에 닿았을 때, 개울물이 어제보다 한 치 얕아져 있었다. 물가의 갈대가 누렇게 바래 있었다. 유비는 첫 걸음 때와 같은 자리에 말을 세웠다. 개울 건너편에서 마을의 어린아이가 두 어른 옆에 서서 손에 작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이 유비의 적로(的盧)의 이마 위 흰 획에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유비가 먼저 개울을 건넜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뒤를 따랐다. 개울 건너의 어른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 어른은 지난 초여름의 그 농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굴의 맑음은 비슷했다.
“황숙(皇叔). 오늘도 공명 선생을 찾아오셨습니까.”
유비가 웃었다. 웃음이 조금 쓸쓸했다.
“예. 두 번째 걸음이옵니다.”
“오늘 공명 선생은 집에 계시지 아니합니다. 다만 공명 선생의 동생 제갈균(諸葛均)이 초당에 계시옵니다.”
“아우 분이시군요.”
“예. 어제 오후 공명 선생이 형주의 남쪽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셨사옵니다. 언제 돌아오실지는 균 공자도 모르십니다.”
유비의 등이 가볍게 굳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풀렸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와룡강 언덕 위 초가(草家)의 사립문이 열려 있었다. 첫 걸음 때의 닫힌 문과 오늘의 열린 문, 그것이 달랐다. 유비는 문 앞에서 멈추었다. 안쪽의 마당이 넓지 아니하였다. 마당 가운데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대나무 아래의 돌 위에 한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수염은 아직 길지 않았으나, 얼굴이 단단했다. 공명의 동생 제갈균이었다.
균이 일어섰다. 유비 앞에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
“황숙. 오늘은 형님이 자리에 계시지 아니합니다. 저라도 차(茶) 한 잔을 올릴까요.”
“아우님. 그 청을 받아 두겠소. 오늘 공명 선생이 돌아오시지 아니하여도, 이 집의 차 한 잔은 제가 마시고 갈 자격이 있을 것이옵니다.”
균이 짧게 웃었다. 두 사람은 초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우와 장비는 사립문 앞에 그대로 섰다. 마당의 대나무가 가볍게 흔들렸다.

초당 안쪽의 방은 간결했다. 책상 하나, 붓 한 자루, 벼루 하나, 그리고 부채 두 자루가 나란히 책상 귀퉁이에 놓여 있었다. 하나는 대나무 잎 색깔의 여름 부채였다. 하나는 거친 흰 종이의 겨울 부채였다. 유비는 그 두 자루 위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거두었다. 수경(水鏡) 선생이 지난 가을 말씀하신 “여름의 부채와 겨울의 부채”가 눈앞에 있었다.
균이 차 한 잔을 올렸다. 맑은 차였다. 유비는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아우님. 공명 선생은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요.”
“형님은 요즘 주로 지도 한 장을 앞에 놓고 오래 앉아 계시옵니다. 형주와 강동과 서량과 허도의 경계가 한 장에 모여 있는 지도이옵니다. 때로는 그 지도를 오래 바라보시다가 한 줄의 글을 적어 두시고, 다시 지도를 바라보시곤 하옵니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더 하지 아니하였다. 아우의 대답이 오늘 형의 자리를 더 분명하게 그려 보여 주고 있었다.
차 한 잔이 끝난 뒤, 유비가 일어섰다. 균도 따라 일어섰다. 유비가 부탁을 꺼냈다.
“아우님. 저는 내일 아침 신야(新野)로 돌아갈 것이옵니다. 그 전에, 공명 선생께 남길 편지 한 장을 여기에 두고 가고 싶사옵니다.”
“그 편지는 제가 반드시 형님 손에 전해 드리겠사옵니다.”
유비는 붓을 들었다. 종이 한 장 위에 여섯 줄을 적었다. 앞의 네 줄은 지난 스무 해의 자기 걸음의 간단한 정리였다. 마지막 두 줄은 이러했다.
두 번 찾아와 두 번 헛걸음하였으나, 헛걸음이라 여기지 아니하옵니다. 와룡의 방 안쪽에 차 한 잔과, 부채 두 자루가 이미 그 자리에 있음을 뵈었사옵니다. 세 번째의 걸음은, 새 봄의 어느 아침에 다시 와 뵙겠사옵니다.
종이를 접어, 책상 귀퉁이의 부채 두 자루 사이에 끼워 두었다. 붓을 내려놓았다. 균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는 길의 개울가에서 장비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형님. 두 번 헛걸음이군요.”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웃음이 짧았으나 따뜻했다.
“익덕. 두 번 헛걸음한 자는 세 번째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는다. 오늘 공명의 방에서 부채 두 자루를 내가 본 것이, 방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보다 — 내게는 더 큰 만남이었다.”
장비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우가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세 사람의 세 필의 말이 와룡강에서 북쪽으로 다시 발자국을 남겼다. 서리가 아닌 누런 풀 위의 자국이었다. 자국은 첫 걸음의 서리 자국과 다른 색이었지만, 방향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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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두 번 헛걸음한 걸음이, 세 번째 걸음의 박자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자리에 — 오늘 당신께서도 서 본 적이 있으신지요. 두 번 문을 두드리고 돌아온 뒤에, 그 문 안쪽 풍경의 귀퉁이 하나를 오히려 더 또렷이 기억하시게 되는 일이 있사옵니다. 헛걸음의 결은 낭비가 아니라, 그 집의 안쪽을 당신이 미리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차 한 잔이옵니다. 오늘 당신의 헛걸음이, 혹시 그 차 한 잔을 이미 받아 드신 자리는 아니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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