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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은 있어도 사명엔 없다, 33년 군인이 덕풍골 새벽길에서 쓴 인생 3막

기사입력 기사번호 59990

인생에는 정년이 있어도 삶의 사명에는 정년이 없다. 박규섭의 『인생 3막, 봉사로 실천하는 삶』은 이 한 문장을 33년 군 생활과 15년 방위산업 경력, 그리고 지역 봉사 현장의 시간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부제는 ‘일신우일신‧유수불쟁선’이다. 저자는 성공담을 늘어놓지 않는다. 은퇴 이후의 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직접 걸어온 길로 답한다.

고령화로 은퇴 뒤에도 수십 년을 사는 시대가 됐다. 서점에는 시니어의 회고록과 에세이가 꾸준히 쌓인다. 다만 상당수는 지나온 영광을 정리하는 데 머문다. 이 책은 회고를 현재진행형으로 바꾼다. 저자는 과거의 직함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로 자신을 소개한다. 봉사와 사회공헌이 기업만의 과제로 논의되는 동안, 한 개인이 동네 단위에서 실천한 기록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준다.

[코리안투데이] 신간 《인생3막, 봉사로 실천하는 삶》 표지 © 코리안투데이 편집국

은퇴 이후의 사회참여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오래된 주제다. 은퇴자의 자원봉사를 활기찬 노년, 이른바 액티브 에이징의 한 축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논의는 대체로 제도와 수치에 쏠린다. 한 사람이 어떤 계기로 새벽에 일어나 어떤 땅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빈자리를 개인의 일상으로 채운다.

이 책의 차별점은 장소가 구체적이라는 데 있다. 덕풍골의 새벽길, 쓰레기가 쌓였던 땅, 상추와 금잔화를 심은 청시회농장이 책의 무대다. 군에서 익힌 책임감과 조직 운영 경험이 지역 단체 활동으로 옮겨 가는 과정도 따라간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일에서 물러났다고 쓸모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독자가 얻을 효용도 분명하다. 봉사단체를 꾸리거나 이끄는 사람은 버려진 땅을 농장으로 바꾼 사례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은퇴를 앞둔 사람은 군에서 방산업체로, 다시 봉사로 이어진 세 번의 전환을 참고할 수 있다. 시련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다룬 대목은 세대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읽힌다.

저자 박규섭은 육군 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장교로 임관했다. 최전방 DMZ 수색소대장으로 출발해 육군항공 조종사가 됐고, 대대장·항공단장·육군본부 헬기사업처장·항공학교 부교장을 지냈다.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방산업체 위다스와 타아스에서 전무로 일했다. 그에게 군 생활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책은 말한다.

현재 저자는 무공수훈자회 하남시 지회장, 청정하남시니어협회 회장, 하남호국봉사회 회장, 육군항공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하남복지협의회 부회장도 겸한다. 도시농업관리사, 사회복지사 2급, 장례지도사 자격도 취득했다. 자격 목록은 봉사를 열의로만 하지 않고 기술과 공부로 뒷받침하려는 태도를 보여 준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Part 1 ‘나의 뿌리와 사명’은 남해에서 태어나 군인의 길을 택하고 조종사와 지휘관을 거쳐 ‘33년 군 생활의 마지막 착륙’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Part 2 ‘인생 2막’은 전역 이후 방위산업 현장에서 겪은 성공과 시련을 담는다. 저자는 어려움이 없는 삶보다 다시 일어서는 힘이 중요하다고 정리한다.

핵심은 Part 3 ‘인생 3막–봉사의 길을 걷다’다. 무공수훈자회와 보훈, 청정하남시니어협회 ‘청시회’의 탄생, 하남호국봉사회, 영원한 육군항공인을 차례로 풀어낸다. 중심에는 청시회농장이 있다. 오랫동안 쓰레기가 버려졌던 땅을 회원들과 함께 일궜다. 상추를 길러 이웃과 나누고, 금잔화를 심어 시민과 아이들이 찾는 체험과 축제의 공간으로 바꿨다. 작은 실천이 공동체를 바꾼다는 주장을 장소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Part 4는 봉사가 주는 행복과 ‘내가 살아온 삶의 원칙’을 정리한다.

책의 두 좌우명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과 유수불쟁선(流水不爭先)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되 흐르는 물처럼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리보기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했고, 무엇을 나누었으며, 떠난 자리에 무엇을 남겼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휘관 출신이 계급 대신 관계를 기준으로 삼은 문장이다. 저자는 지금도 토요일 새벽이면 덕풍골로 향한다고 밝힌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한 그 길을 걷겠다고 적었다.

이 책은 은퇴를 앞둔 중장년, 이미 은퇴한 시니어, 지역 봉사단체를 꾸리는 사람에게 맞는다. 군 출신 독자라면 전역 뒤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참고할 수 있다. 독자가 확인할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쓰레기 더미 땅이 농장과 축제 공간이 되기까지 회원들이 어떤 역할을 나누는지다. 둘째, 방위산업 현장의 시련이 봉사 철학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이다. 셋째, 저자가 마지막 장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무엇을 적었는지다. 책의 마지막 질문은 독자에게 돌아온다. 나의 인생 3막은 무엇으로 채워질 것인가. 『인생 3막, 봉사로 실천하는 삶』은 박규섭 지음, WIA Book 출간으로 2026년 10월 14일 나왔다. 정가는 11,000원이며 EPUB3 형식의 전자책이다. 구매와 상세 정보는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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