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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9일 – 독일이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된 날, 목포 노동자들은 여덟 달째 파업 중이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7219

독일이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된 날, 목포 노동자들은 여덟 달째 파업 중이었다

1926년 9월 9일 목요일, 경성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사흘 전 남쪽을 훑고 간 비바람의 흔적이 거리에 아직 남아 있었고, 광화문 자리에 올라가던 총독부 새 청사 공사장에는 벽돌을 진 인부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어제 경성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신문사 필화사건의 논고가 있었고, 멀리 목포 부두에서는 노동자들이 여덟 달째 공장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 시계가 열 시 십 분을 가리키는 지금, 100년 전 그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날의 경성

바로 전날인 9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는 동아일보 필화사건의 논고공판이 열렸다. 지난달 22일자 칼럼 ‘횡설수설’이 문제가 되어, 이 글을 쓴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검사는 최원순에게 징역 8개월을, 김철중에게는 금고 6개월을 구형했다(우리역사넷 사법처분 기록). 정간에서 풀려나 다시 신문을 찍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경성의 언론계는 또 한 번 숨을 죽였다. 최원순의 최종 판결은 두 달 가까이 더 미뤄져, 10월 4일에야 징역 6월이 나온다.

같은 날, 광화문 자리에서는 조선총독부 새 청사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미 1926년 1월 4일 건물을 넘겨받아 업무는 시작한 터였지만, 낙성식은 시정기념일인 10월 1일로 잡혀 있었다. 완공을 채 한 달도 안 남긴 그 공사장에서는 여전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부들의 손으로 벽돌이 쌓이고 있었다.

경성과 한반도

경성 법정과 총독부 공사장 너머, 한반도 곳곳도 조용하지 않았다. 남쪽 목포에서는 제유공장(기름 짜는 공장) 노동자들이 1월 18일 파업에 들어간 뒤 여덟 달째 공장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노사가 임금 10~15% 인상에 합의하며 파업을 끝맺는 건 이달 30일의 일이었으니, 9월 9일 그날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의 한복판이었다(목포문화원·「지방사와 지방문화」 연구). 1926년 한 해 동안 서울·평양·부산 등 큰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진 노동쟁의만 81건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사흘 전 남부지방을 훑고 간 태풍 뒷정리도 이어졌다. 을축년 대홍수(1925)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한 번 큰비가 내렸던 터라, 이재민을 돕는 손길과 제방을 다시 쌓는 손길이 함께 움직였다.

그날의 세계

바다 건너에서는 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9월 8일, 제네바에 모인 국제연맹 총회는 만장일치로 독일의 가입을 받아들였고, 독일은 곧바로 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얻었다.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가 불과 8년 만에 승전국들과 나란히 앉게 된 것이다. 외무장관 슈트레제만의 연설은 이틀 뒤인 10일로 예정돼 있었다.

같은 무렵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정반대의 소식이 들려왔다. 8월 22일 콘딜리스 장군이 팡갈로스를 몰아낸 뒤, 9일에는 공화국수비대가 해산 명령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났다고 외신은 전했다. 강대국은 회의장에서 자리를 넓혀가고, 작은 나라는 거리에서 총성이 오갔다.

경성 24시

해가 뜨면 광화문 공사장으로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지게에 벽돌을 지고 나르는 삯일꾼들의 하루 벌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0년대 조선인 노동자의 하루 평균 임금은 대략 1원 안팎(100전)이었다는 통계가 남아 있다(우리역사넷). 점심때가 되면 공사장 그늘에 삯일꾼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눴고, 오후 늦게까지 자재를 나르는 손길이 이어지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일손을 놓았다. 저녁, 경성지방법원 앞을 지나던 이들 사이에서는 어제 논고공판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고, 목포에서 올라온 파업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이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100년의 거울

목요일의 주제인 노동과 경제로 오늘과 100년 전을 나란히 놓아본다.

항목 1926년 2025년
노동자 하루 평균 임금 약 1원(100전) 안팎 확인 안 됨
목포 제유공장 파업 지속 기간 약 8개월(1~9월) –
연간 노동쟁의 건수(조선 전체) 81건(1926년) 확인 안 됨
빈민·걸인 인구 비율 약 11%(1926년) 확인 안 됨

숫자만 보면 1926년의 하루 임금을 지금 화폐가치로 단순 환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덟 달을 버틴 목포 노동자들의 싸움이 결국 임금 10~15% 인상이라는 작은 승리로 끝났다는 사실은, 오늘의 임금 협상 뉴스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내일을 기다리며

광화문 공사장의 벽돌은 내일도 쌓일 것이고, 목포의 파업은 아직 3주를 더 남겨두고 있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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