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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밥은 멈추지 않았다”…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남대문 ‘윤영밥상’까지

1935년생 김금례 여사, 1978년부터 18년간 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외국 바이어들의 한식 밥상 책임져
한 번에 10명 이내의 외국인 바이어 2~3일 머물며 한식 경험…나물·볶음·김치 등 밑반찬 손맛 지금도 이어져
IMF 외환위기의 한복판, 어머니는 딸에게 말했다 “식당이라도 해라, 그러면 아이들과 먹고 산다”…1998년 윤영밥상 출발
최은숙 대표 “엄마에게 손맛 배웠다”…식당 시작 후에도 어머니가 약 20년 동안 곁에서 함께해
‘윤영’은 최 대표의 딸 김윤영 씨 이름…김금례·최은숙·김윤영 세 세대를 잇는 남대문 한식 밥상
윤영밥상의 역사판 코리안투데이 지승주 기자

기사입력 기사번호 56030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인근의 ‘윤영밥상’은 갈치조림과 청국장, 생선구이 등을 내는 한식당이다. 그러나 이 식당의 이야기를 1998년부터만 시작하면 중요한 한 사람이 빠진다. 1935년생 김금례 여사다. 김 여사는 1978년부터 약 18년간 장항제련소에서 외국인 바이어들이 머물던 ‘영빈관’의 책임자로 일하며 한 번에 10명 이내의 외국 손님들이 2~3일씩 머무는 동안 주로 한식을 차렸다. 나물과 볶음, 김치 등 당시 익힌 한식 밑반찬의 경험은 훗날 딸 최은숙 대표에게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 무렵 어려움을 겪던 딸에게 김 여사가 “식당이라도 해라. 그러면 아이들과 먹고 산다”고 권한 것이 1998년 윤영밥상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식당 이름에는 다시 최 대표의 딸 김윤영 씨의 이름이 담겼다. 장항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진 세 모녀의 밥 이야기다.

 [코리안투데이]  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한식을 차렸던 김금례 여사(왼쪽)와 딸 최은숙 윤영밥상 대표. 김 여사의 음식 경험과 손맛은 딸에게 이어졌고, 1998년 시작된 윤영밥상의 밑반찬과 한식에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승주 기자

윤영밥상의 시작을 1998년이라고만 하면 절반의 이야기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수많은 상점과 식당이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맞는 곳이다. 관광객에게는 쇼핑과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대표 시장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남대문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의 현장이다. 그 골목 한편에 ‘윤영밥상’이 있다. 갈치조림과 청국장, 생선구이와 여러 한식 메뉴를 내는 식당이다. 최은숙 대표가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2026년 현재로 보면 29년째다. 29년이라는 시간만으로도 한 식당의 역사를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윤영밥상의 뿌리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시계를 더 뒤로 돌려야 한다. 1978년.

그리고 장소도 서울 남대문이 아니라 충남 서천 장항으로 옮겨야 한다. 그곳에 최은숙 대표의 어머니, 1935년생 김금례 여사가 있었다. 윤영밥상의 밥은 사실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1978년 장항제련소 영빈관, 외국 바이어들에게 한식을 차리던 사람

김금례 여사는 충남 서천군 장항읍 원수동 출신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장항제련소를 찾은 외국 바이어들에게 김금례 여사는 한국 음식을 차렸다. 가족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장항제련소에는 업무를 위해 해외에서 찾아오는 외국 바이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장항제련소를 방문하면 머물 수 있는 별도의 숙소가 있었고, 가족들은 그곳을 ‘영빈관’이라고 기억한다. 일반 직원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와는 성격이 달랐다. 외국에서 온 거래처 관계자와 바이어들을 맞는 숙소였다. 한 번에 찾아오는 외국바이어들은 대체로 10명 이내이었다.

짧게 들렀다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 2~3일 정도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머무르는 동안 숙박공간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책임졌던 사람이 김금례 여사였다.

호텔처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받는 대형 숙박시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가족 몇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아니었다. 외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장항에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아침과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자리였다. 한두 번의 행사가 아니라 그것을 18년 가까이 반복했다.

김금례 여사에게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특별한 날에 한번 솜씨를 뽐내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오면 밥을 준비하고, 다음 날 다시 밥을 준비하는 생활이었다.

외국 손님들이 찾았지만 밥상에는 ‘한식’이 올랐다

당시 외국 바이어들에게 어떤 음식을 준비했을까. 처음에는 외국인들이니 서양식 음식을 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 김금례 여사에게 다시 확인한 답은 달랐다.

주로 한식이었다. 최은숙 대표는 어머니에게 당시 음식을 직접 물은 뒤 이렇게 전했다.

 “거의 한식이었대요. 외국 사람들이 오면 한식을 좋아했대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장항제련소를 찾은 외국 바이어들에게 김금례 여사는 한국 음식을 차렸다. 특정 메뉴 하나를 ‘대표 음식’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하지만 나물과 볶음, 김치 등 여러 한식 밑반찬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가족 인터뷰를 통해 확인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비법 하나가 아니다. 한식은 밥과 국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상에 몇 가지 반찬이 함께 올라간다.

나물을 무치고, 재료를 볶고, 김치를 준비하고, 때에 따라 다른 반찬을 만들며, 손님의 식사 속도와 양을 살펴야 한다. 외국 바이어들이 2~3일씩 머무는 동안 김 여사는 한식과 여러 밑반찬을 준비했다.

김금례 여사는 그렇게 한 끼 한 끼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세월이 지나 사라지지 않았다.

장항 영빈관의 밑반찬, 지금도 윤영밥상에 남아 있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1978년 장항에서 시작된 음식 경험이 현재 윤영밥상의 밑반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은숙 대표는 자신의 음식 솜씨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말했다.

 “엄마한테 배운 거지.”

어머니가 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만들던 음식 가운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은 특히 나물과 볶음, 김치 등 한식의 기본이 되는 밑반찬이다. 이를 두고 특정 갈치조림 양념이나 청국장 레시피가 1978년부터 그대로 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여러 사람에게 밥을 차리면서 몸에 밴 나물과 볶음, 김치 등 한식 밑반찬을 만들던 어머니의 경험과 손맛이 딸에게 이어졌다는 사실은 인터뷰를 통해 확인됐다. 최은숙 대표에게 조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답은 간단했다.

“간이지, 간.”

오랜 시간 음식을 만들어온 사람에게 맛은 복잡한 설명보다 결국 간에서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재료가 가진 맛을 죽이지 않으면서 밥과 먹었을 때 어울리게. 수치로 적어놓은 레시피보다 사람의 손과 혀가 먼저 기억하는 영역이다. 어머니의 음식 경험은 그렇게 딸에게 전해졌다.

IMF가 닥쳤고, 어머니는 딸에게 말했다

“식당이라도 해라. 그러면 애들하고 먹고 산다”

시간은 1998년으로 흘렀다.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의 충격을 겪던 시기였다. 최은숙 대표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당시 상황을 최 대표는 꾸미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내가 폭삭 망해 가지고 할 게 없으니까 우리 엄마가 ‘식당이라도 해라. 그러면 애들하고 먹고 산다’ 이렇게 해 가지고 식당을 하게 된 거예요.”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어머니 김금례 여사 자신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주며 오랫동안 일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조언이었다. 누구보다 밥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밥 한 끼가 사람의 생활을 지탱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움에 빠진 딸에게 다시 일어설 방법으로 ‘식당’을 권했다. 그 한마디가 윤영밥상의 출발점이 됐다.

최은숙 대표에게 외식업 경험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윤영밥상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현재 위치가 아니라 조금 앞쪽의 커피가게가 있던 자리에서 시작했고 이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한 끼 한 끼 밥을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1997년이었다.

말로만 “식당 해라” 하지 않았다…어머니는 약 20년 동안 함께했다

김금례 여사의 역할은 식당을 권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은숙 대표가 식당을 시작하자 어머니가 직접 곁으로 왔다. 그리고 딸의 식당을 오랫동안 도왔다. 최 대표의 표현으로는 약 20년이다.

“엄마가 많이 도와주시면서…엄마가 한 20년 도와줬지.”

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약 18년. 딸의 식당에서 다시 약 20년. 숫자만 단순히 더할 필요는 없지만, 김금례 여사의 삶에서 사람에게 음식을 차려주는 일이 얼마나 긴 시간을 차지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장항에서는 외국 바이어를 위해 한식을 준비했다. 남대문에서는 딸과 함께 시장 상인과 직장인, 방문객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장소도 달라졌고 손님도 달라졌다. 그러나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내는 일은 계속됐다. 그래서 윤영밥상의 29년을 최은숙 대표 한 사람의 시간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뒤에는 먼저 밥을 해본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경험이 있었고,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고, 어머니의 손맛이 있었으며,식당 문을 연 뒤에도 어머니의 손이 함께했다.

‘윤영’은 최은숙 대표가 아니다

 식당 이름에도 또 한 세대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윤영밥상’. 처음 오는 손님은 윤영이라는 사람이 이 식당의 대표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윤영’은 최은숙 대표의 딸 김윤영 씨의 이름이다. 최 대표 자신도 한때 주변에서 ‘윤영이 엄마’로 불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윤영이네 식당’이라는 표현이 생겼고, 식당 이름에도 딸의 이름이 들어갔다. 여기까지 오면 윤영밥상의 가족 이야기는 세 세대로 이어진다.

김금례 여사.  최은숙 대표.  김윤영 씨.

어머니의 음식 경험을 딸이 이어받았고, 그 딸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다시 손녀의 이름이 걸렸다. 누군가 계획해서 만든 ‘가족 브랜드 스토리’가 아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군산과 목포에서 오는 식재료, 장항과 이어지는 생활권

현재 윤영밥상의 음식에는 또 하나의 지역적 연결고리가 있다. 식재료다. 최은숙 대표에 따르면 생선과 제철 식재료는 대부분 군산에서 공급받고 일부는 목포에서 들여온다. 갈치뿐 아니라 갑오징어, 홍어, 낙지, 장대 등 여러 제철 식재료가 대화에서 언급됐다. 다만 고등어는 노르웨이산을 사용한다고 최 대표가 직접 밝혔다. 이는 모든 수산물이 군산·목포산인 것처럼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한 사실이다. 윤영밥상은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군산에서 오는 것은 군산에서 온다고 하고, 목포에서 오는 것은 목포에서 온다고 하며,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노르웨이산이라고 말한다. 김금례 여사의 고향 장항은 군산과 금강하구를 사이에 둔 가까운 생활권이다. 어머니가 살고 일했던 서해안 지역과 지금 윤영밥상이 식재료를 받아오는 지역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직접 띄운 청국장이라는 말도 정확하게 바로잡았다. 오래된 맛집을 소개하는 온라인 글에는 이야기가 조금씩 보태지기도 한다. 윤영밥상 청국장을 두고도 ‘직접 띄운다’는 식의 소개가 있었다. 최 대표에게 직접 물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지만, 현재는 시골에서 청국장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준다고 설명했다. 그날도 택배가 온다고 했다. 이런 작은 차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된 가게라고 해서 이야기를 더 오래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비법을 만들어낼 이유도 없다.윤영밥상이 가진 실제 이야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

28년 넘게 한 식당을 지켜오다 보면 수많은 손님을 만나게 된다. 가장 오래된 단골이 얼마나 됐느냐고 묻자 최은숙 대표는 말했다. “한 20년 넘은 사람들 많아요.” 특정 손님의 이름을 하나씩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20년 이상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 식당의 신뢰는 광고문구로 증명하기 어렵다. 오래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장 단순한 답일 수 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이 많이 찾는 음식으로는 갈치조림과 청국장, 생선구이, 박대와 고등어 등이 언급됐다. 1998년 작은 식당으로 출발한 윤영밥상은 이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약 50평, 60석 규모의 식당이 됐다.

“잘 먹었다”…최은숙 대표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앞으로 윤영밥상이 어떤 식당으로 남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오래된 식당의 대표라면 많은 답을 할 수도 있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 대를 이어가고 싶다. 매출을 더 늘리고 싶다. 전국적인 맛집이 되고 싶다.

하지만 최 대표의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냥 드시고 가시면 ‘잘 먹었다’고 하면서…나는 항상 그 말이 너무 고맙더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또 온다고, 꼭 또 오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어쩌면 29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고 난 뒤 남은 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밥을 먹은 사람이 “잘 먹었습니다.” 하고 나가는 것.

 그리고 다음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48년 가까운 시간이 있다

이번 기사에 음식사진을 여러 장 싣지 않는 이유가 있다. 김금례 여사와 최은숙 대표가 함께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이 이야기를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1935년생 어머니가 앉아 있다. 그 옆에는 19987년부터 윤영밥상을 운영해온 딸이 있다. 사진 뒤로는 손님들이 이용하는 윤영밥상의 내부가 보인다. 그 사진만 보면 평범한 모녀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걸어온 이야기를 알고 나면 사진은 달라 보인다.1978년 장항제련소 영빈관에서 외국 손님들의 밥을 준비하던 여성이 있다. 그 딸이 IMF 외환위기 때 어려움에 처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식당이라도 해라. 그러면 애들하고 먹고 산다.”

딸은 그 말을 들었다. 식당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다시 와서 약 20년을 도왔다. 그리고 그 밥집은 29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식당 이름에는 다시 손녀의 이름이 들어갔다. 그 모든 시간이 사진 한 장 뒤에 있다.

윤영밥상은 1998년에 문을 열었지만, 그 밥은 1978년부터 익어가고 있었다

한 식당의 역사는 사업자등록증의 개업일로 시작된다. 그 기준으로 윤영밥상의 시작은 1998년이다.

그러나 음식의 역사는 반드시 사업자등록증과 같은 날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윤영밥상의 밥을 만든 경험의 뿌리를 따라가면 1978년 장항제련소 영빈관을 만난다. 외국에서 찾아온 바이어들에게 한식을 차렸던 김금례 여사. 10명 이내의 외국바이어들이 며칠씩 머무르면 하루하루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나물을 만들고, 재료를 볶고, 김치를 준비하고, 한 상을 차렸다. 그 경험을 약 18년 이어갔다. 세월이 지나 딸에게 식당을 권했다. 딸은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웠다. 어머니는 다시 딸의 주방에서 함께했다. 그 시절 익힌 밑반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윤영밥상의 밥상에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윤영밥상에서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갈치조림 한 접시와 청국장 한 그릇을 먹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장항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음식 경험, IMF를 지나 다시 일어서려 했던 한 딸의 삶,

그리고 그 가족의 이름이 함께 놓여 있는 밥상을 만나는 일이다. 김금례 여사에서 최은숙 대표로, 그리고 김윤영이라는 이름까지. 세대가 바뀌어도 밥은 이어졌다. 장소는 장항에서 서울 남대문으로 바뀌었다.

손님은 외국인 바이어에서 시장 상인과 직장인, 가족과 관광객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사람을 앉히고,

따뜻한 밥을 내고, 식사를 마친 사람에게서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1978년 시작된 그 밥의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밥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도 남대문 윤영밥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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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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